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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둘 Jan 22. 2024

아빠의 첫 번째 그녀

그리운 나의 엄마

"여자가 셋이야!"

"네?"

"사주에 여자가 셋이 있어."

"말도 안 돼! 그럼 어떻게 합니까?"

"뭘 어떻게 해! 그냥 순리대로 살아!"


아주 오래전 점쟁이가 아빠한테 했다던 말이다. 난 이 이야기를 엄마가 돌아가신 후 이모에게서 들었다. 


이모와 엄마는 자매지간임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극명하게 달랐다. 순하디 순했던 엄마와 달리 이모는 그야말로 '센캐'였다. 집에서는 들어볼 수 없었던 찰진 욕을 이모는 나에게 조기교육 시키듯 귀에 때려 넣어 주곤 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이모는 가치관이 형성되기도 전의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말했었다.

"네 아빠한테 여자가 셋 있다고 했어."

"여자가 셋이라는 게 무슨 뜻이야?"

"으이구, 멍청아! 무슨 뜻은 무슨 뜻이야. 네 아빠가 엄마 말고 앞으로 두 여자랑 더 살 팔자라는 거지."

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잊고 살다가 아빠가 기어이 세 번째 여자와 살림을 합치고 난 후 그 말이 떠올랐다.


운명이었는지 우연이었는지 엄마는 마흔하나라는 젊은 나이에 젊은 아빠를 두고 돌아가셨다. 

벚꽃이 하늘을 하얗게 가리던 따스한 봄날 엄마는 동네 친구들과 속리산으로 여행을 갔었다. 평소에 본인의 혈압이 높은지 낮은지에 관심도 없었던 엄마는 등산 중에 저혈압으로 쓰러졌다. 급하게 병원으로 옮겼지만 우리 삼 남매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엄마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너무나 따뜻한 봄날이었고 너무나 아까운 젊은 나이였다.


사실 지금 내게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미안할 정도로 많이 남아있지 않다. 영원히 잊지 않을 거라던 다짐과는 달리 세월과 함께 희석됐고 휘발됐다. 그나마 남아있는 기억 중 하나는 엄마와 시장을 갔던 일이다.


난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가는 걸 유난히 좋아했다. 그 이유는 장보기가 끝나면 시장 초입에 있는 만두 가게에서 왕만두를 얻어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이 뿌옇게 올라오는 만두집에 잊지 않고 들러서 엄마는 내손에 커다란 왕만두를 쥐어주곤 하셨다. 지금은 그저 그런 만두가 그때는 왜 그렇게 맛있었던지.....


문제의 여행을 떠나기 전날에도 엄마는 날 데리고 시장엘 갔었다.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이것저것 샀는데 그중에 하얀 운동화가 지금도 기억난다. 엄마가 그 운동화를 사고 유난히 좋아했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며칠 후 그 하얀 운동화는 엄마의 부고와 함께 주인 없이 혼자 쓸쓸히 집으로 돌아왔다. 주인을 잃은 물건은 생각보다 많이 쓸쓸해 보인다. 옷이나 모자, 그런 물건보다 왜인지 주인 잃은 신발은 유난히 슬프고 아프다. 홀로 돌아왔던 하얀 운동화의 모습이 아직 내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 당시에 내가 많이 울었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안 슬펐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신 엄마의  물건을 찾아서 냄새를 맡아댔던 게 기억난다. 엄마가 만지던 거, 엄마가 입었던 거, 그리고 엄마가 입술에 찍어 발랐던 거, 난 닥치는 대로 엄마의 냄새를 찾았었다. 하지만 막상 거기에서 엄마의 냄새가 났었는지는 또 기억에 없다. 


아빠와 엄마는 내 기억에서는 그렇게 다정한 부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주 싸웠던 것 같지는 않은데 언젠가 두 분이 싸우며 아빠가 한 번 밥상을 엎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오들오들 떠는 모습이 너무 슬펐고 화를 내는 아빠가 많이 미웠다. 왜인지 그 당시에는 좀 과장되게 말하면 한집 건너 한집에서 저녁이면 밥상이 날아가곤 했던 것 같다.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대충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애틋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미워하지도 않았던 엄마와 아빠는 결국 결혼 15년 만에 이별을 하고 말았다. 그 옛날 점쟁이가 아빠에게 말했던 세 여자 중 첫 번째 여자가 아빠의 곁을 떠난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아빠의 세 여자 중 내게는 가장 소중한 첫 번째 여자였다.


아쉬운 건 엄마가 돌아가신 후 왜인지 아빠가 엄마의 사진을 모두 태웠다는 것이다.  아빠는 엄마의 옷가지며 물건들을 태우면서 사진까지 몽땅 태워버렸다. 굳이 사진까지 모두 태웠어야 했나 하는 원망이 일었다. 다행히 오빠가 몰래 가지고 있던 사진이 한 장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단체사진이라서 엄마의 얼굴은 콩알만 하게 보일 뿐이었다.


지금은 솔직히 엄마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만약에 오빠가 몰래 숨겨뒀던 그 사진이 단체 사진이 아니라 엄마의 독사진이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난 엄마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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