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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둘 Jan 31. 2024

아빠의 두 번째 그녀3

인생이란 치과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있는 것이다.

                           빅터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호칭에 대해서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난 새엄마를 '엄마'라고 불렀다

삼 남매 중 나만 유일하게 그랬던 것 같다. 그걸 두고 언제가 오빠가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넌 엄마라는 말이 잘도 나오는구나."

그 말은 나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가 된 것 같은 기분을 안겼다. 

'그게 왜?'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오빠와 동생을 이해 못 했던 건 아니다.

두 사람은 엄마를 부를 일이 별로 없었다.

따로 살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두 사람이 엄마라고 느낄 만큼 새엄마와 감정적으로 교류를 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후 나도 드디어 혼자 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만 집에서 편하게 산다는 일종의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오빠와 동생이 엄마를 거부한 것과 상관없이 그동안 엄마가 나에게만큼은 진심이었다고 느꼈다. 


따로 살기 시작하자 엄마는 내게 부쩍 살가워졌다. 김치와 반찬을 만들어서 수시로 날 찾아왔다. 그건 영락없이 사이좋은 친모녀의 관계 그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아빠와 심하게 다투고 날 찾아왔다. 

아빠와 이혼할 거라고 했다. 난 참으시라고 했다.

난 엄마의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빠의 흉을 보는 엄마의 모습은 그야말로 투정을 부리는 아이의 모습 같았다.

         

그날 밤 우리는 나란히 누워 마음 속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엄마에게 진연민을 느꼈다.

처음에 시집와서 엄마도 잘하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너무 어렸었고 방법을 몰랐다고 했다. 똑같은 행동에도 세상 사람들은 계모라서 그렇다는 잣대를 들이댔고 그런 게 두려워 우리 삼 남매에게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가령 똑같이 매를 들어도 친모에게는 사랑의 매(물론 지금은 사랑의 매라는 말도 틀렸지만)라고 용서가 되는 일이 계모에게는 '그러니 계모지'라는 세상의 눈이 차가웠다고 했다. 

엄마가 계모의 위치에서 우리를 기른다는 건 친모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난 아빠 곁에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나는 울며 웃으며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두 분의 다정한 모습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빠는 내가 좋아하는 장로님의 모습이 아닌 다시 예전의 술과 담배에 절어 살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툭하면 다투는 일이 많아졌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엄마는 날 찾아왔다.

아빠는 내게 전화를 걸어 엄마가 왔느냐고 물었고 엄마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손을 내저었다.

"안 왔다고 해!"

난 엄마의 눈치를 살피다가 아빠에게 말했다.

"안 오셨는데 왜 그러세요? 다투셨어요?"

"아니다. 전화 끊자."

그런 날들이 자꾸 이어지던 어느 날 늦은 밤 아빠가 내게 전화를 했다.

"너 지금 ㅇㅇ병원으로 좀 올 수 있냐?"

"병원은 왜요?"

"네 엄마가 약을 먹었어."

난 심장이 툭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네?"

"놀랄 건 없어. 엄마는 괜찮으니까."

"아빠도 괜찮으세요?"

아빠의 침묵이 이어졌다.

"아빠!"

"나 네 엄마랑 이혼할 거다."

아빠의 목소리는 그 지난밤 엄마가 했던 이혼선언과는 무게가 달랐다. 아빠는 진심이었다.

두 분이 왜 그렇게 사이가 나빠진 건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다만 알게 된 사실은 엄마가 죽겠다고 약을 먹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사실과 그런 행동들은 단지 아빠를 협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빠는 많이 지쳐 보였다.

결국 또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난 엄마의 자살소동 이후 두 사람은 이혼했다.

그렇게 아빠는 두 번째 여자와도 이별했다.


아빠와 상관없이 나와는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던 엄마는 내가 결혼을 하고 살던 어느 날 날 찾아왔다. 

그런데 그날 날 찾아온 건 엄마 혼자가 아니었다. 한 낯선 아저씨와 함께였다. 아빠보다는 많이 젊어 보이는 그야말로 낯선 아저씨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 아저씨를 보자 기분이 안 좋아졌다.

내가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자 엄마가 말했다.

"인사해! 나랑 결혼할 남자야."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얼굴은 사랑에 빠진 사춘기 여자아이 같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난 아빠와 헤어진 새엄마가 남처럼 느껴졌고 그 새엄마가 데리고 온 낯선 남자는 낯선 것을 지나 왠지 무섭게까지 느껴졌다. 굳이 나한테 인사 안 시켜줘도 괜찮은데.....

왜 그날 엄마가 오랜만에 연락해서 내게 그 아저씨를 인사시켰는지는 모르겠다. 

난 그날 이후로 새엄마에게 갖고 있던 정을 모두 잊기로 했다. 

이제 행복하게 잘 사시길 바랄 뿐이다.

그 후로 난 새엄마의 연락을 더 이상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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