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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둘 May 01. 2024

극 오른손잡이

"척추가 한쪽으로 휘었습니다. 치료부터 받으시죠."

모니터에 떠 있는 내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며 의사가 한 말이다.

어깨만 아프던 게 허리도 아프기 시작하자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똑바로 섰을 때 오른쪽 어깨가 더 솟은 거 보이죠?"

의사는 거울 속 내 모습을 가리키며 말했지만 내 눈에는 그 차이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전문가가 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그날부터 난 내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날 유심히 관찰하며 알게 됐다. 

정확히 내 어깨는 오른쪽이 살짝 솟고 상대적으로 왼쪽이 기울어졌다. 

옷을 입으면 항상 목부분이 왼쪽 어깨로 흘러내리고 목걸이의 펜던트는 늘 왼쪽으로 살짝 치우쳐있다.

가방이나 무거운 장바구니를 어깨에 멜 때도 항상 오른쪽 어깨에 메는 버릇이 있다.

무거운 가방을 멜 때면 흘러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들어 올린다.

오랜 습관이 그렇게 쌓이니 가방 없이 그냥 서있을 때도 내 어깨는 오른쪽이 살짝 솟아있다.

수십 년을 습관적으로 그렇게 살았으니 내 체형이 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싶다.

거금을 들여 도수치료를 받으며 다짐했다.

수십 년을 그렇게 편한 대로 습관대로 살았으니 앞으로는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살아야겠다고.


난 가방이나 장바구니를 왼쪽 어깨에 메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울어진 어깨에 메려니 가방이 자꾸 흘러내렸다.

난 흘러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 왼쪽 어깨를 들어 올렸다. 불편하긴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신기한 건 분명 나갈 때는 왼쪽에 멨던 가방이 집에 들어올 때는 나도 모르게 오른쪽에 걸려있다는 사실이다. 습관이란 무섭다는 걸 새삼 느낀다.

요즘은 의자에 앉을 때도 편하게 꼬던 오른쪽 다리가 아니라 불편하게 왼쪽 다리를 꼬려고 의식한다. 물론 꼬지 않는 게 좋다고 하지만 정 불편할 때는 왼쪽으로 꼰다.

한쪽으로 치우쳤던 습관을 반대쪽으로 바꾼다는 건 지루하고 긴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예전에 지인이 아들의 이름을 개명했다. 스님이 이름을 바꾸라고 해서였다는데 그 스님은 아이가 지금까지 들었던 예전 이름의 횟수만큼 바뀐 이름으로 불러줘야 한다고 했단다. 

그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으니 십 수년을 불렸던 횟수만큼 바뀐 이름으로 불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게다.

그래서 지인이 선택한 방법은 바뀐 이름을 녹음해서 하루종일 아이의 방에 틀어놓았다고 한다. 


그 아이가 자면서도 들었을 녹음된 새 이름의 횟수만큼 나도 습관을 바꿔 지나온 시간만큼 지난다면 틀어진 내 척추도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가면 습관들이 몸에 쌓여서 티가 나기 마련이다. 나의 시아버지는 60년 세탁소 일로 어깨가 작업대를 향해 구부정하게 말려들어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아버님을 생각하면 그 말린 어깨가 먼저 떠오른 곤 한다.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저축하듯 차곡차곡 몸에 쌓인다. 그렇게 몸에 밴 습관을 바꾸려면 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좋은 습관은 몸에 좋은 결과를 줄 것이고 나쁜 습관은 몸에 나쁜 결과를 줄 것이다.

이왕이면 좋은 습관으로 하루하루 쌓아간다면 좋겠다.

그러니 아직 젊은 사람들일수록 지금부터라도 좋은 습관만을 몸에 쌓으면 좋겠다. 

20대인 딸에게 말했더니

"괜찮아, 어차피 나이 들면 다 똑같아." 란다.

늘 느끼지만 내 딸은 내 말을 정말 안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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