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태어나던 날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내 동생이 태어나던 날의 기억이다. 동생과 내가 정확히 2년 6개월의 터울이 지니까 난 2년 6개월을 살고 있던 당시의 기억을 아직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날 엄마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동생을 낳았다. 난 문 밖에 서서 방에서 흘러나오는 엄마의 비명소리에 잔뜩 겁을 먹었었다.
엄마가 그렇게 울부짖으며 괴로워하던 일은 처음이었으니 어린 내게 적잖이 충격이었을게다. 어쩌면 저렇게 소리를 지르다가 엄마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놀라서 울고 있는 내게 누군가 엄마가 지금 동생을 낳고 있다고 했다. 엄마의 진통이 얼마나 길었었는지 또 동생이 태어나던 순간은 어떠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죽을 만큼 울부짖던 엄마의 비명을 문밖에서 울며 지키던 그 순간만큼은 기억이 또렷하다.
누구든 크게 충격을 받거나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마주했을 때, 또는 주체할 수 없는 큰 기쁨이 찾아오던 그 순간만큼은 오래도록 기억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 큰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는 기억들은 장기기억으로 전환되어 대뇌피질에 저장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난 그 소중한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한 번씩 다시 그날의 장면을 그려본다. 어느 부분은 희미해지고 어느 부분은 더 선명해진다. 어쩌면 조금씩 기억이 왜곡됐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날의 기억이 한 장의 사진처럼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내 나이 고작 2년 6개월 때 말이다.
그렇게 태어난 동생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던 날, 난 외국에 출장 중인 제부를 대신해 분만실에 함께 들어갔었다.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산통에 힘들어하는 동생을 보면서도 난 지난날의 엄마의 산통은 헤아리지 못했다.
그저 고통스러워하는 동생이 안쓰러웠고 빨리 나오지 않는 조카가 야속했다. 그렇게 태어난 조카는 또 자라서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다.
세월의 빠름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이 기억이 언제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이미 각색되고 변형되어 전혀 엉뚱한 장면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소중한 만큼 오랫동안 나와 함께 내 기억에 머무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