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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스 Apr 01. 2024

다리 꼬는 것 하나도 못 고치면서

나나 잘하자.

  나의 나이는, 아직 어른 대열에 서기에는 좀 부끄럽지만 더 이상 어리다고 봐주는 사람은 하나 없는 그 언저리에 서있다. 그래도 수십 년 간의 실험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서는 꽤 파악을 해뒀다. 1월의 꿈은 원대했으나 12월의 결과물은 미천한, 뻔하디 뻔한 그 레퍼토리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새해가 밝더라도 요란법석을 떨며 거창한 새해 목표 따위는 세우지 않는다. 목표라기보다는 현상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 정도라고나 할까?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제발 운전 좀 시작하기. (이건 우연한 기회에 어쩌다 달성해 버림.)

옷장 정리하기.

플랭크 3분 하기. (아직 1분 30초밖에 못한다. 그것도 컨디션 좋은 날 기준)

다리 꼬는 습관 고치기.

기타 등등.


  그런데 진정한 실망은 최소한이라고 여겼던 기준들에도 못 미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온다. 왜냐하면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당차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으니까. 정말 인간 고쳐 쓰는 거 아니라더니 거의 십몇 년째 이 습관 하나를 못 고치고 있다. 코어 근육이 무너지고 어깨가 둥그스름하게 굽고 목이 거북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튀어나와도, 나의 두 다리는 실타래처럼 베베 꼬여 있다. 아주 대애애애단하십니다 그려.


  이런 내가 엄마랍시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가끔 위선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애들한테는 과자 안 주면서 남편이랑 짜고 방에서 몰래 까까 먹고 나올 때(은어까지 사용한다. 여보 얼음보숭이 고고), 초코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있는 나에게 딸아이가 "엄마 뭐 먹어요?"라고 묻자 "어어 이거 쓴 거. 한약"이라고 눈 하나 깜짝 않고 거짓말할 때, 애들한테는 떼쓰는 거 아니라고 세상 엄한 표정으로 꾸짖어놓고 정작 나 자신은 진상처럼 짜증을 부릴 때, 나는 나잇값을 못한다고 느낀다.


  다리를 또 꼰 죄로 오늘은 반성을 좀 해본다. 다리 꼬는 것 하나 못 고치는 주제에 잔소리 좀 작작 하자. 나나 잘하자. 나만 잘하면 애들은 자연스레 보고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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