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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아이 환 Nov 08. 2021

정이현, 서랍 속의 집을 읽고

편안한 집을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던 읽기 기록 하나를 발행해 봅니다. #정이현


  2017년 새해에는 현대문학상 수상집으로 읽기를 시작했다. 새해맞이 여행을 떠나며, 가방에 넣을 책을 고심했다. 결론은 단편 소설이다. 단편 소설 한 편을 읽는 데 필요한 시간은 길어야 3-40분. 비행기를 탔다가 기내식이 나오기 전까지. 섬으로 이동하는 배를 타곤, 바다 풍경을 즐기다 이제는 그만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부터 섬에 도착할 때까지. 수영하러 간 아이들이 잠깐 엄마의 손 없이 잘 노는 시간에... 그 시간에 깔끔하게 읽기 좋은 게 내겐 단편 소설이다.

  새해에는 단편 소설을 좀 더 열심히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복직을 하니, 출근을 조금 일찍 한다면, 어쩌면 하루 30분쯤 읽은 것에 대해 기록할 수 있는 시간이 꾸준히 생길 수도 있겠다. 그럼 더 좋을 테다. 국어 선생이 매일 소설을 읽고 글을 쓴다는데, 그걸 직장에서 한다고 직무 유기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게 그 첫 글이 되려나? 이젠 좀 살았다고 지키지 못할 약속은 새해에 확언하지 않는 능구렁이가 되었다.

  2017 현대문학상 수상작은 김금희의 '체스의 모든 것'이다. 김금희 작가의 작품을 요즘 한 권의 소설집이 아니라, 이런저런 수상 소설집에서 읽고 있다. 그런데 꽤 많이 읽었지 싶다. 요즘 말로 하면 핫한 작가다. 그리고 수상 소설집 뒤편엔 역대 수상 작가의 최근작들이 소개되어 있다. 김채원, 박성원, 윤대녕, 정이현.

  그중 정이현 작가는 내게 소설을 이렇게도   있구나, 라는 충격을 느끼게   작가  하나다.  오래전 친한 친구랑 전화 통화를 하는데, 회사 도서관에서 <<낭만적 사회사랑>>이라는 소설집을 빌려 읽었다고 했다. 충격적이니까  읽어 보라며.  친구가 느낀 충격은 내게도 고스란히 옮겨 왔다. 이제까진 쓰이지 못했던 것들, 하지만 소주   따라 놓고 오랜 친구들과 수다를   충분히 등장하고도 남았을 법한, 어쩌면 야하다고  수도 있을 이야기가 멋지게  버무려진 소설. 지금   낳은 아줌마가 돼서 생각해 보니,  정도의 소설을 읽고 야하다며 야단법석을 떨었으니  순진했다 싶기도.    

  여하튼 정이현 작가는 그 이후 꼭 챙겨 읽는 작가가 되었다. 지난 연말, 정이현 작가의 소설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를 읽었다. 소설집 제목은 내가 요즘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것들을 콕 집어 말해 주고 있었다. 얼른 집어 읽지 않을 수 없었던 그 소설집의 뒤에서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 현대문학상 수상집에 실린 '서랍 속의 집'이다.

  엄마가 된 이후, '집'은 나의 거의 모든 것이다. 결혼 전엔 내가 쉬는 곳, 이 다 였던 이 곳이 사랑하는 내 아이들이 자는 곳, 먹는 곳, 쉬는 곳, 노는 곳, 공부하는 곳이 되었다. 또한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남자가 쉬는 곳이며, 그가 나와 함께 하는 곳이기도 하다. 얼마 전 어디선가 북유럽 사람들의 높은 행복감은 따스한 집안 분위기에서 온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어쩌면 북유럽 스타일의 인테리어 광고를 하는 글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북유럽 스타일이 여기 동방의 나라에서 인기가 높은 것도 그 디자인의 탁월함이 행복감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좋아 뵈는 건 다 비싼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사람들은 그냥 좋아 보이기만 하는 것엔 비용을 쉽게 지불하진 않는다. 행복을 느끼게 해 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어야 사람들은 지갑을 연다. 인테리어 감각은 별로 없는 나이지만, 집안에 어떤 투자를 하면, 좀 더 편안한 일상을 꾸릴 수 있을지 일 년에 몇 번쯤은 고민한다.    

  우리 부부는 결혼을 하고 서울 근교에 있는 신도시에 위치한 자그마한 오피스텔에서 반 전세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거기서 반년도 못 살았는데, 첫 아이가 생겼다. 꽉 막힌 오피스텔은 입덧이 심한 임신부가 살고, 곧 태어날 아이가 살기엔 용이하지 않은 곳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부랴부랴 근처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할 계획을 세우고, 집을 구했다. 이미 오피스텔에 살면서 매월 몇십 만원씩 월세를 내 본 경험이 있는 우리는, 그냥 은행빚을 왕창 내서 집을 사기로 했다. 월세 대신 이자를 낸다 치고, 우리 명의로 된 집을 갖기로 말이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자주 이사하는 번거로움을 겪지 않아도 될 터였다. 그리고 이자로 낸 돈이 미래에 집값이 상승된 만큼을 넘어 서기 전에 은행빚을 갚아 버린다, 가 우리의 계획이었다. 그 계획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하드코어 라이프를 선사하는 계획이었다는 걸 파악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고, 은행빚과 싸우며 우린 이제 결혼 9년 차가 되었다. 전세살이를 했다면 4번을 이미 갱신하고, 한 번 더 살고 있을 시간. '서랍 속의 집'은 그런 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랍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전세계약서나 매매계약서는 '집'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전세 자금 대출의 이자, 신용카드 대금, 고만고만한 적금 몇 개, 보험료, 아이의 보육료, 각종 공과금과 아파트 관리비를 전달에 외상으로 쓰고 다음 달에 갚아가는 이 소설의 유원과 진과 같은 사람들의 집.

  집값을 올려 달라고 문자메시지로 전달하는 집주인과, 역시 메시지로 전세금 반환을 요구하는 세입자. 스마트폰 앱으로 띵똥, 메시지 한 번이면 어쩌면 어마어마 하달 돈이 타인에게 옮겨 가는 전세 계약의 참으로 가볍고도 무거운 순간.

  이렇게 내가 이사를 가려면 누군가는 어디론가 이사를 나가야 하는.

  

그 여자의 태연한 설명을 듣다 보니 이것은 커다란 도미노 게임이며, 자신들은 멋모르고 중간에 끼어 서 있는 도미노 칩이 된 것 같았다. 종내는 모두 함께, 뒷사람의 어깨에 밀려 앞사람의 어깨를 짚고 넘어질 것이다. 스스로 포개지며 쓰러질 것이다. (본문 중)


그리고 결국은 스스로 포개지며 쓰러진 누군가를 응시하며, 이 소설은 끝이 난다.


나는 멋모르고 중간에 끼어 나도 모르게 누군가가 넘어지도록 밀고 있다. 이게 편안하고 행복한 나의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멋모르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슬픈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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