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동쪽
이 글은 Waro의 에디터 '지윤'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첫 장면이다.
처음엔 아직 공사가 덜 된 곳이겠거니 했는데, 실제로 나중에 이용하는 사람을 봤다. 밤이었고, 그 분이 취기가 좀 오르셔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첫날 머무를 곳으로 '소낭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하는 게 참 어려움이 많았다. 네이버에 '제주도 게스트하우스'만 검색하면 수도 없는 결과들이 나왔고, 난 마치 영화 '허트로커'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마트에서 수십가지 종류의 시리얼을 보고 멍해있는 군인과 같은 기분이었다. 이럴 때 결국 찾게 되는 것은 '지인찬스'
주변에 제주도 다녀온 사람들에게 카톡을 날렸다. 대략 7개 정도 추천을 받았는데, 그것도 동,서,남 각각의 지역으로 나뉘었다. 바닷가 전망이 좋은 곳도 있고, 조용하고 인테리어가 맘에 드는 곳도 있고, 놀자판인 곳도 있었고. '소낭'은 놀자판에 속했다. (실상 '놀자판'이라고 할 만큼은 아니었다.) 어쨌든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첫날은 사람들과 얘기도 나누고 놀아보자고 마음 먹고 '소낭'을 택했다. 나름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는 큰 형님 격이라고 한다.
급하게 오후 1시30분 비행기를 탔었기에 제주공항에 내려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을 땐 3~4시쯤 되었다. 비도 조금씩 내리고. 소낭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머리를 거의 스님수준으로 짧게 깎으신 남자분께서 맞아주셨다. 아 맞아주셨다기 보다는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고 물어보고 나서야 응대를 해주셨다. 오른쪽의 마루에서는 어떤 여성분이 '널부러져' 주무시고 계셨다.
"아 이게 제주도인가."
어쨌든. 간단히 체크인을하고, 짐을 거의 12인실은 되는 듯한 남성 도미토리에 던져두고 가볍게 길을 나섰다.저녁 7시 30분 부터는 바베큐 파티가 있을거라고 했다.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참석이 필수다. 가까운 곳에 볼거리가 뭐가 있냐고 짧은 머리의 남자분께 여쭸더니, 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월정리 해변이 있고, 근처에 카페들이 즐비하다고 했다.
조금씩 흩날리는 비를 무심하게 맞으며 걸어내려갔다. '괜찮아 이 정도는 영쿡에서는 그냥 맞고 다녔으니까 훗' 이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허세를 한적한 제주도 월정리 근처 마을의 길 위에서 부리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웃겨서 또 웃었다. 길을 걷다보면 어디나 보이는 돌담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빈틈 투성이지만 거센 바닷바람도 막아주고, 정겹고, 그리 높지도 않아서 정이 느껴진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유채꽃, 파, 무, 당근 등 갖가지 작은 정원 혹은 밭이 있다.
월정리 해변에 도착했다. 사진에서도 보이지만 날씨가 흐리고 비도 조금씩 흩날리는 상태였기에 머리속에 그려왔던 제주도 풍경에 적합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운치가 있었다. 하늘은 푸르지 않았지만 바다색은 여전히 제주도 그대로였다. 푸르고, 맑고, 청량하고, 다채롭고. 사진으로만 보며 꿈꾸던 풍경이 앞에 있으니 참 신기하면서도 이걸 누군가와 얘기하는 게 아니라 혼자 감상하며 조용히 걷고, 사진만 찍으니 이럴땐 혼자 여행왔다는 게 실감이 난다. 곳곳에서 커플들이 자연스럽게 타이머로 사진을 찍고, 셀카봉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바다도 웬만큼 즐기고, 해변도 걸을만큼 걸었으니 이쯤 되면 역시 배를 채울 때가 찾아온다. 해변 바로 뒷쪽에는 해안도로와 함께 카페들이 쭉 늘어서 있다. 나중에 제주도에 몇개월째 살고 있었던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월정리가 제일 핫하다고 한다. '핫'하다기엔 그렇게 많은 가게들이 보이진 않았지만 제주도 기준에서는 분명히 핫한 지역이 맞는 듯 했다. 그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면 그렇다.
카페들 속에서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조그만 타코 가게 '타코 마씸(Taco Massim)'. 제주도 오기 얼마 전에 만났던 친구가 갑자기 '타고 배달사업'을 얘기 했던 게 기억에 남았나, 타코가 끌렸다. 그리고, 이런 해변엔 역시 맥주지. 커피라니, 말도 안된다. 여행은 맥주. 대낮에도 맥주. 밥 먹을땐 반주. 저녁엔 음주가무.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저도 바다 보면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좋았습니다..
메뉴판, 간단해서 좋았다. 흑돼지 타코가 메인메뉴인듯 하다. 7천원이면 그렇게 싼 가격은 아니지만. 재료인 흑돼지가 비싸서 그런가 ? 그리고 오른쪽의 음료 메뉴가 눈에 띈다. 샹그리아, 와인, 칵테일, 맥주 등이 있는데, 이름이 모두 독특해서 한 번 먹어보고 싶게 만들더라.
일단 가볍게 생맥주를 한 잔 시키고 마시면서 흑돼지타코가 오길 기다렸다. 가게 곳곳의 인테리어를 보는 재미도 있었는데, 역시나 쟁반 하나도 평범하지 않았다. 직접 만든건가 ? 타코맛은, 음.. 평소에 타코를 즐겨먹진 않는다. 간식으로 먹으면 먹었지 식사로는 먹었던적이 없다. 암튼 맛은, 좋았다. 하지만 음식의 양은 가격에 비해 그렇게 만족스럽진 않았다. 그래도 제주도의 월정리 해변이 보이는 이 곳에서 맥주 한 잔에 타코를 먹으면서 시간을 잘 보냈지 않았는가. 실제로 위의 잘 이해도 안가는 책을 유심히 보며 시간을 꽤 보냈다.
갑자기 제주도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살아가는 동생이 생각나서 연락했는데, 맥주 한 잔 하자고 해서 알았다고 따라갔더니 다시 타코마씸에 들어와버렸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도. 이곳이 꽤 좋았나보다. 그리고 편했나보다. 나도, 그 동생도.
양이 좀 아쉬웠지만, 아쉽지 않았던 맛과 오히려 떠나기 아쉬웠던 타코마씸에서의 시간이 가끔 생각난다.
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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