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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준 Feb 25. 2024

스타트업과 사과나무

봄이 오기 직전에 가장 춥다.

2월 말에도 폭설이 오듯이 스타트업 씬의 추운 겨울도 아직 이어지고 있다. 스타트업레시피에서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총 투자금액은 5조 8,110.9억 원. 총 투자 건수는 965건으로 나타났다. 산술적으로 기업 당 60억 원 정도를 투자 받은 셈이지만 투자금은 일부 기업이 수백억에서 수천 억씩 몰아서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평균의 의미는 없다.



2022년 대비 비교해 보면 투자금은 51%, 투자 건수는 34% 하락한 수치이다. 스타트업 씬에 안 계신 사람들이 볼 때에는 투자 금액이나 투자 건수 등의 감소폭에 대해 크게 공감대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꾸준히 증가하던 어떤 지표가 10% 이상 감소했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큰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50% 내외의 감소는 시장 자체가 거의 폭파 수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바꿔 생각해 보자. 매일 100명 정도의 손님이 오던 식당에 어느 날 갑자기 50명 정도만 오는 것이다. 식당은 100명에 맞춰 식자재와 직원, 공간 등을 모두 마련하여 비용은 많이 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매출이 50% 정도 줄어든 것이다. 이런 경우 식당의 사장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창고에 있던 식자재는 상해서 버려야 할 수도 있고, 직원을 줄이거나 좀 더 임대료가 저렴한 곳으로 옮겨야 할 수도 있다. 스타트업도 결국 식당의 메커니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손님이 많이 오고 자금이 잘 돌아가면 유지할 수 있고 성장하는 것이고 아니면 망하는 것이다.



세 번째 책을 집필하기 위해 나름 성공하신 스타트업 대표님들 많이 만나면서 알게 된 점이 하나 있다. 스타트업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수많은 요소에서 스타트업 경영진의 똑똑함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강의, 멘토링, 집필 등을 위해 수백 명의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났는데 대부분 평균 이상으로 똑똑했다. 소위 말하는 수재형 인간들이 많았다. 심지어 일부는 천재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 중 90% 이상은 망한다. 똑똑해서 공부라는 게임은 잘했을 수 있지만, 사업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게임이다. 공부는 본인 혼자만 열심히 하면 되지만 사업은 혼자만 잘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똑똑한 사람 천지인 스타트업 씬에서 왜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하게 될까?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지구력이다. 그런데 그냥 버티기 식의 지구력이 아니라 남들이 안 하려고 하는 힘들고, 어렵고, 짜치고, 더럽고, 치사하고, 맨땅에 헤딩하는 일들을 최소 5년에서 10년 정도 참고 해내는 지구력이다.  



품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과나무를 심어 과일이 열리기까지 평균 5년 ~ 7년이 걸린다고 한다. 가장 흔하고 저렴한 과일 중의 하나인 사과가 이 정도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반성했다. 흔하디흔한 사과 한 알을 얻으려고 해도 7년이 걸리는데 나는 너무 빠른 시간에 많은 것을 얻고자 했다. 욕심이었다.




미디어에서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필요하기 때문에 스타트업의 엑싯 금액이나 기간 등에 집중하게 된다. 당연한 일이다. 배달의민족이 딜리버리히어로에 4조 원에 매각된 것도 큰 뉴스지만 호갱노노가 창업한지 2년도 안되어 직방에 300억 정도에 매각이 된 것도 큰 화제가 되었다.



많은 스타트업 대표들이 둘 중의 하나의 모델을 꿈꾸며 창업을 한다. 상장을 목표로 하는 사람도 있고 몇 년 빡세게 해서 회사를 매각하여 수백억 원을 벌 수 있기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지겨울 만큼 오랜 기간을 참고 노력하고 버텨야 사과 한 알 얻을까 말까 한 게 현재 스타트업의 현실이다.



흔한 말이지만, 해뜨기 전, 여명의 순간이 가장 어둡다. 2024년의 봄이 오기 직전 2월 말에 폭설이 오듯이 가장 춥고 스타트업 씬에 봄이 오기 직전인 지금이 가장 추울 것이다. 날짜상의 봄이 아니라 실제로 따듯한 봄이 오기까지는 더욱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자.


살아남아야 봄이 왔을 때 꽃구경을 하러 갈 수 있다.



강의 및 멘토링 연락처: junsm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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