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이다. 미안하다.
오늘도 집에 일찍 가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적는 시간 10시 1분. 이 글을 얼마의 시간동안 쓰냐에 따라 내가 집으로 언제 출발할지가 결정된다. 나는 과연 짧게 쓸 것인가 아니면 길게 쓸 것인가.
"나도 모르겠다."
오늘 고양이를 만났다. 학교에는 고양이들이 꽤 많이 살고 있는데, 특정한 누군가가 키워서 산다기 보다는 어쩌다 보니 학교에 살게 된 느낌이다. 그래도 학교 고양이들은 번듯한 집도 있고, 비워지면 누군가 채워주는 밥그릇과 물그릇도 있다. 그리고 학생들이 지나다니며 귀여워도 해주어서 길고양이도 아니고 집고양이도 아닌, 말 그대로 학교 고양이처럼 다닌다.
그래서 고양이가 귀여웠습니다.
하고 끝내면 내가 아니지. 고양이가 언덕을 살며시 내려오는 걸 발견하고 고양이 사진을 찍긴 했지만 고양이가 떠난 뒤 잠시 멍해졌다. 고양이가 내려온 언덕길. 고양이에게는 꽤나 익숙한 길인 듯 했다. 왜냐하면 사람이 만든 것으로는 결코 보이지 않는, 다시 말해 고양이가 만든 것이 분명한 길이 보였기 때문이다. 등산을 가면 인위적으로 만든 등산로가 있고, 사람들이 많이 다녀 자연스럽게 생긴 등산로가 있지 않은가. 그것처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고양이 길. 그것이 내 눈에 보였다. 아, 고양이도 길을 만드는구나. 자기가 익숙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동안 있으면 사람에게도, 개미에게도, 나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의미가 있을 길을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불어 반성도 좀 했고요.
고양이로부터의 반성은 여기까지 입니다. 그리고 고양이는 귀여웠습니다.
그리고 요즘 계속 졸려서 정말 미칠 지경인데, 잠을 꺠려고 별 짓을 다해도 잠이 계속 옵니다. 금방 생각이 난건데 이것도 일종의 금단현상의 하나일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몸에 니코틴이랑 타르가 빠져 나가니 각성 효과를 일으키는 성분들이 사라지고.. 나는 잠이 온다.. 뭐 이런 결론. 정말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 참고로 금연은 이제 3주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아주 성공적인 수순이라고 할 수 있죠. 축하와 격려 부탁드립니다. (누구한테 하는 이야기냐)
그래서, 졸려서, 그래서 오늘도 공부는 하지 않고 책을 읽었습니다.
"클라라와 태양"이라는 책이고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였습니다. 책이 정말 재밌었으면 이렇게 오래동안 읽지는 않았을 것 같긴 합니다만 한 2주 정도 시간 날 때마다 읽었습니다. 전 사실 책을 빠르게 읽는 편인데 2주 동안 읽었다는 건.. 흠흠.
여튼 오늘 책을 다 읽었습니다만, 제가 처음 내린 평가는 '애매하다' 였습니다. 좋은 책인지 나쁜 책인지 구분하기 애매하고 특히 제가 느끼는 어떤 독서 후의 감정들이 애매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애매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딱히 좋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네. 전 딱히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이 책에 대한 반응들을 살펴보면 막 '좋았다', '인생책이다', '역시 가즈오!' 등등의 반응들이 많았습니다만, 솔직히 전 이런 반응들을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을 만약, 가즈오가 적은 책이 아니라 신인 작가가 적었다고 읽어보라고 했으면 혹평의 만찬을 맛봤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 물론 제 기준에선 그렇습니다.
책 리뷰를 할 생각은 없으니 이만 마무리 하기 전에, 하나만 더 언급하고 가겠습니다.
책에는 '띠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책에 필요한 물건은 전혀 아닌데 일종의 책에 붙는 홍보 배너 같은 개념입니다. '클라라와 태양'의 띠지의 뒷면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대가의 경지에 도달한 장인" - 마거릿 애트우드 (소설가)
"이 책의 출간은 의심할 바 없이 2021년 세계 문학 출판계의 가장 큰 소식이다." - 북셀러
그나저나 북셀러는 뭘까요. 아, 마거릿 애트우드는 살아있는 작가라는 것도 사실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이 두 추천사 혹은 추천평의 출처보다 전 저 두 문장이 묘하게 다가왔습니다. 둘 모두 책 내용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작가는 대가가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의 출간은 뉴스거리가 된다. 쉽게 말해 '이 책 내용 캡숑짱이니까 꼭 한 번 읽어보세요' 라고 말한 글이 없다는 말입니다. 출판사에서는 내용에 관한 추천 혹은 언급을 찾지 못했던 걸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없지 않았겠죠. 명과 색이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새 책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사에 작가에 대한 내용과 책 출간에 대한 내용만을 넣었다는 건,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출판사도 나름의 확신을 갖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를 왜 할까요.
요즘 세상은 본질보다 껍질, 핵심보다 민심이 중요해진 세상이 된 듯 합니다. 이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좋은 물건은 홍보하지 않아도 알아서 팔리는 시대가 아닙니다. 마케팅이든 영업이든 각자의 역할들이 있는 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에 대한 접근을 해야할 시점에 그렇지 못한 사례들을 만나면 아쉽습니다. '결국 다 돈벌려고 하는 일들인가.' 하는 배금회의주의에 빠지게 되죠. 이번에도 좀 그랬습니다.
도대체 책 내용이 어떻길래 이렇게 적는거야, 궁금해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읽어보시면 압니다.
좋은 책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마음에 드시는 분들도 있겠죠. 전 좀 더 본질이 더 좋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서 말씀드렸습니다.
아. 10시 21분이네요.
이제 정말 집에 가야겠습니다. 위의 글을 적는데 20분이 걸렸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었습니다. 20분이면 저 정도 분량의 글을 적기엔 긴 시간인가요, 짧은 시간인가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해놓고, 제 글은 본질적으로 좋은 글인지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