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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마레 May 07. 2024

너도 자식새끼 낳아 길러봐라   

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씬으로 읽는 단편영화

<유타나시아>


'너도 자식새끼 낳아 길러봐라.

엄마 말 이해할 거다.'


엄마의 단골 레퍼토리.

거짓말 조금 보태

100만 번 들었을 말. 


엄마의 잔소리.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알 것 같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그나마 아주 조금.


대본리딩
단편영화 <유타나시아> 중에서

이 영화는

누구나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이별에 관한 이야기다.



유타나시아.

euthanasia

그리스어인 이 말의 뜻은

아름다운 죽음


곧,

'안락사'를 의미한다.


이 영화에는

불치병에 걸린 아내를 살리기 위해

안락사를 집도하는 의사와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이야기가

주요한 줄거리다.


여기에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한

치매를 앓는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가

또 다른 한 축.


이 영화의 시대배경은,

안락사가 합법화된 가까운 미래의 대한민국.



아내를, 자식을, 스스로를

존엄하게 살게 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치매, 죽음, 부양, 존엄한 삶,

이 모든 걸 담아낸 유타나시아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은 무게감이다.


내가 맡은 역은

 아들과 딸 몰래 안락사를 준비하는

초기 치매환자였다.



S#11. 주원의 집, 주방


주원과 함께 저녁을 먹는 주원모,

집 안에는 주원모의 치매 흔적들이 보인다.


주원모

얼마 만에 아들이랑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 건지,

넌 뭐가 그렇게 매일 바쁘니?


주원

회사 일 말고도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있어서 그래, 이제 매일 같이 저녁 먹자.


밥술을 뜨는 주원을 지그시 바라보는 주원모


주원모

너 일 보는 거 있으면 일 봐.

서운한 건 서운한 거고 너나 선영이한테

엄마 짐 되는 건 싫다.


주원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엄마가 왜 짐이야.

이상한 소리 하고 있어 진짜.


주원모

너도 자식새끼 낳아서 길러봐라.

엄마 말 이해할 거다.


숟가락을 내려놓는 주원.


주원모

성질머리 하고는, 밥 먹어 얼른.

찌개 식는다.


함께 밥을 먹는 주원과 주원모.





'밥 먹어 얼른, 찌게 식는다'


씬 11, 이 장면은

정작 아들은 모르지만

아들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자 했던

엄마의 만찬씬.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봐

안락사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

그저 에둘러 이렇게 말할 뿐.


"밥 먹어, 얼른"



유타나시아를 찍으면서

유독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매번 전화해서는

왜 그렇게 밥 먹었냐는 말을

많이 하셨는지.


매번 끼니때마다.

밥 먹으라는 이 말을 달고 사셨는지

그때는 몰랐다.


그 말이

너 지금 괜찮지?라는 마음이라는 걸.


제대 끼니를 챙겨 먹는다는 거야말로

그날 하루가 괜찮았다는 것 아니겠는가?


엄마의 그 말, 그 마음을 생각하니

주원엄마를 준비하는 마음이 짠했다.

주원역을 맡은 한동주배우님과 현장 리허설















'밥 먹어 얼른'


아들을 위한  마지막 저녁식사라면,

뭘 해주고 싶으세요. 마레 배우님!


찌개거리를 사러 스텝들이 달려갈 때도

연신 질문을 주셨던 감독님,


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굳이 연기하려 애쓰지 않아도 돼요.

그냥 그대로의 엄마를 보여주면 됩니다.'


아직도 채울 게 많은 나에게

그대로도 충분하다고,

요즘도 '엄마'라고 불러주시며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시는

큰아들 같은 감독님


이 현장은 그래서 더더욱

가족 같았다.


짧고 길고 굵고 가는

배우님들 각자의 연기인생들이

엮어낸 색색의 매듭.


촬영한 지 2년.

그리운 이름들, 그리운 얼굴들, 팀유타나시아.

오랜만에 꺼내 본 서랍 속 앨범 같다.

배우와 스텝들만 모인, 상영회에서 팀유타나시아



유타나시아

Fiction/Color/ 21'

각본/연출: 주시현

출연: 김도하, 한동주, 임한나, 장마레, 신명은, 강채린, 차종호, 홍지수



삶에 대한 섬세한 고찰,

세대 간 갖가지 스토리로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할

주시현 감독의

영화로운 시절을 응원합니다.




배우가 찍고 쓰는 단편영화이야기

'100명의 마레가 산다'

장마레의 브런치북은 수요일 밤 0시.


이번 주만, 개인적인 일정으로

반나절 당겨 화요일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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