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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보지기 May 18. 2018

나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인다는 것

마음챙김 명상이 내게 가르쳐준 것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그때로서는 최신 시술이었던 라식 수술을 받았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자동적으로 이뻐질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꼈던 둥그런 안경은 대학생이 되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그대로인 내 얼굴에 그대로 있었고 오히려 어설픈 화장법으로 얼굴덜룩해진 눈 위에서 촌스러움만 배가시키고 있었다. 중요한 날 렌즈라도 끼면 안구 건조증인 눈이 못 버티고 충혈되기 일쑤였다. 이런 내가 안쓰러워 보이셨던지 어머니께서 그때로는 정말 거금을 들여 큰 맘먹고 라식 수술을 시켜주신다고 하셨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라식 수술로 인해 촌스러운 안경을 벗어던지고, 고등학교 때부터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던 미모를 바야흐로 폭발시킬 참이었다.


    이런 기대는 라식 수술을 막 마치고 돌아오는 그 날, 동생과 함께(동생도 함께 수술을 했었다.)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에 가면서 앞 차 번호판이 똑똑히 보이는 순간 그 정점을 찍었다. 안경 없이도 세상을 이렇게 잘 볼 수 있다니!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다니!


    하지만 나의 기쁨이 약간의 실망감으로 바뀐 것은 바로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눈 수술을 마치고 집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 나는 마침 방학이라 친구들과 함께 서해안 근교의 섬에서 1박 2일의 여행을 하기로 계획했었다. 친구들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아무도 내 눈이나, 내 미모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라식 수술을 하고 와서 안경을 끼고 있지 않다는 것도 내가 말을 해줘야 겨우 인지할 정도였다.


    그리고 며칠 후 눈이 다 가라앉고 라식 수술받은 내 눈의 시력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나는 아침마다 깨서 화장실에 갈 때마다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너무 예뻐져서가 아니라 너무 못 생겨서 말이다. 옛날에 화장실에서 씻기 위해 안경을 벗고 보던 내 얼굴은 흐릿했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마다 나의 얼굴을 이렇게 자세히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라식 수술 덕분에 아침에 깨자마자, 그리고 샤워할 때 거울 속에 비친 내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눌린 얼굴, 잡티들, 어린 나이라 주름살은 없었지만 그래도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보이는 내 얼굴의 수많은 결점들.


내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얼마 전 문득 마음챙김 명상을 시작하고 나서 내가 겪었던 과정들이 내가 라식 수술을 하고 나서 겪은 과정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마음챙김 명상을 시작하고 나서 나는 마치 매트릭스라는 영화의 네오가 빨간 약을 먹었을 때처럼 온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경험을 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이 내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바꿀 것이라고 기대도 했었다. 내가 정말 놀라운 경험을 했으니 난 달라질 것이고,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다들 나를 그렇게 알아봐 줄 것이라 생각했다. 마음챙김 명상을 시작하고 나서의 내 삶은 라식 수술 이후의 내 삶처럼 세상을 더욱 분명하고 명료하게 보도록 해주었다. 지금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명료하게...... 


자,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내 결점, 나의 못난 면들 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의 결점, 못난 면들도 더 뚜렷이 생생히 보게 되었다. 마치 아침에 깨서 바로 보는 거울 속 내 얼굴처럼 이쁘게 단장하거나 꾸미지 못한 날 것 그대로의 면들이 그대로 내 눈에 들어왔다. 당혹스러웠다.


    다른 사람의 결점도 마찬가지였다. 명상을 하면 포용력이 넓어지고 자비로워진다는데 나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결점이 너무 눈에 잘 들어오니 오히려 더 괴로웠다. 저 사람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데 그 의도가 안 좋은 것이 있는 그대로 느껴진다면(예를 들어 잘난 체, 우월감) 옛날에는 모르고 넘어갈 것들도 이제는 느껴졌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니 어쩜 나는 그 사람의 의도에 민감해져 지레짐작 부정적으로 해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마음챙김 명상을 시작하고 처음의 기쁨과 환희는 곧 사라지고 나는 전보다 더 까칠하고 우울하고 염세적이 되어 버렸다. 그 시기가 나에게 분명히 있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 결점들에 익숙해져 갔다. 마치 라식 수술 후에 안경도 쓰지 않고 맨 눈으로 처음 본 내 모공과 점들에 익숙해졌듯 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 결점을 받아들이자 다른 사람의 결점에도 더 여유로워졌다는 점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결점에 익숙해지자 내 결점에도 익숙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깨달은 것은 잡지 광고나 TV 화면으로 보는 여배우들의 흠 없는 피부가 사실 수많은 보정의 결과이듯, 인격적, 도덕적으로 흠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내가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잭 콘필드 님이 늘 말씀하시는 것처럼, 결국 우리는 인간일 뿐이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존재로 태어났으므로 우리의 인간적인 면들을 부정하는 것은 우리를 부정하는 일이다. 인간으로서의 삶은 참 늘 한결같이 불완전하다. 점 없는 피부, 모공 없는 피부는 없다. 왜냐면 피부는 원래 그런 것이니까. 


    나는 오늘도 나의 온갖 찌질한 모습들, 성마름, 질투심, 짜증, 우월감, 분별심을 마음챙김하며 마주한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내가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겪는 고통을 이제는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스승이라는 것을 말이다.


4년 전 글이지만, 브런치 첫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열어보다....... 

2018년 5월 18일 마음챙김 명상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1편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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