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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몽이 Nov 19. 2022

기도가 아무 소용없이 느껴질 때

하나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3

1.

어린 시절 좋아했던 장난감을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전후 사정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두 가지가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하나는 장난감 잃어버린 것을 엄마가 아시는 날에 크게 혼날 것이라는 두려움이 기억나고(평상시 자주 화를 내셨기 때문에...), 또 하나 엄마가 이 사실을 아시기 전 어떻게든 내 힘으로 장난감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장난감을 찾을 수 없었고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낙담한 모습으로 장난감 모아두는 장소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교회 부설 유치원 출신답게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 장난감을 찾게 해 주세요! 제발 제발 제발요!"라고 기도했습니다. 며칠 뒤 장난감 모아둔 자리에 힘없이 가본 순간 정말 깜짝 놀라고 몇 초 동안 정지화면처럼 얼어붙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장난감이 원래 있던 자리에 거짓말처럼 있었기 때문입니다. '와!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엄마가 혹시 들으실까 숨죽여 기뻐하면서 장난감을 들고 춤을 췄던 기억이 납니다.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 어려운 상황이 있을 때마다 기도의 효과를 다시 보고자 했지만 기도가 간절하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기도가 잘못된 기도여서였는지 모르지만 기도대로 되는 일이 없어 실망을 거듭했습니다. 기도가 뜻대로 되지 않는 사이 중학생이 되고 난 뒤로는 기도를 거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또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기도를 아주 안 한 건 아닙니다. 시험 보기 전 벼락 치듯 급하게 하나님 찾는 일이 있었지만 기도라기보다 요행수를 바라는 부끄러운 주문에 가까웠고 성적은 언제나 예외 없이 공부한 분량에 비례해 정직했습니다.


2.

강제 의무였던 교회가 나의 자발적 선택이 되고 난 뒤 기도에 대한 설교자들의 가르침과 실제 적용 사례를 많이 접하게 됐습니다.


교회에서 주로 들리는 기도 격언은 "입을 크게 벌려라 크게 벌릴수록 많이 채워주신다" "간절히 기도해라! 그만큼 강하게 부르짖어라!" "될 때까지 기도해라" "산기도를 다녀라! 나무뿌리를 뽑아라" "무릎 꿇고 기도해라" "금식하면서 기도해라" "정성스러운 헌금을 드리며 기도해라"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 응답을 못 받는 것은 마치 성적이 모자라 낙방하는 것처럼 헌금 액수나 횟수로 표현되는 정성의 크기, 기도 횟수나 기도 양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로 몰아가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기도 응답이 잘 된다는 특별기도회나 기도원 집회에 참석해보면 다들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 있는 힘껏 소리치고 입을 크게 벌리고 눈물 콧물 땀을 쏟고 온 몸을 격렬하게 흔들고 매시간 헌금을 바치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열기로 후끈했습니다. 앞에서 이끌어 가는 전도사 목사의 안수기도라는 것도 자주 있었습니다. 안수기도 방식도 제 각각이었는데 기도 응답이 잘 된다는 '능력의 종'일수록 안수 기도도 강력해서 진짜 때리고 맞는 수준이었습니다.


예언 기도라는 것도 많았는데 쪽찝게 예언일수록 반말투이거나 무당인지 기독교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 위협적이고 권위적인 눈빛, 알 수 없는 뭔가에 빙의되어 낯설게 인격화한 섬뜩한 분위기가 불편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내 말을 하느라 시끄러운' 한국 개신교 기도가 반쪽 짜리 기도에 불과하다며 '하나님 음성을 잘 듣는' 묵상기도 관상기도 침묵기도 피정 수도원 전통을 되살려내야 한다고 조용한 기도 운동을 하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큰 소리가 나는 화끈한 기도 운동보다 대중적 인기는 얻지 못했지만 나름 배웠다는 지식인, 원래 성격이 조용조용한 사람들에게 기독교와 기도의 조화를 시도하는 흐름으로 보였습니다.


3.

어떤 방법이든 기도 응답을 받고 싶었습니다.


당시 여러 모로 개인 상황이 절박했던 만큼 이렇게 여러 기도의 흐름들을 접하는 동안 비판의 날을 세우기보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가급적 받아들이고 따라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기도 비법을 따라 해 보아도 간혹 소원이 성취되는 기도가 있긴 했지만 대개 기도의 영향력은 미미하거나 별다른 소용이 없게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조용하든 큰 소리를 내든 기도하는 것보다 차라리 사람을 찾아다니고 전화라도 한 통 더 해보고 뭔가 직접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 훨씬 나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철야 산 기도를 해야 기도 응답이 강력하다 하여 어느 산 정상에 1시간 걸려서 올라갔을 때였습니다. 기독교 기도자들 뿐만 아니라 무당을 비롯해 여러 신들을 모시는 타 종교 기도자들도 밤새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기도가 교회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기독교에서 기도 능력이 나타나는 유력한 증거로 내세우는 방언 기도가 타 종교 수행자들에게도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대체 기독교의 기도가 차별성이 있기나 한가 의구심까지 들게 되었습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혼란과 방황을 거듭하다 교회 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여러 주장들 대신 성경을 펼쳐서 '성경이 말하는 기도'에 대해 전면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4.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성경 구절은 예수님의 기도를 기록한 부분이었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태복음 26:39)


'아! 기독교의 기도는 내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로구나!' 이것은 굉장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기도는, 내가 원하는 바는 다 털어놓되 그 결과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맡기는 것이 예수님 보여주신 기도라는 기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조용한 기도이든 큰 소리의 기도이든 기도를 할 때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에 집중하면 기도를 잘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2:9-12)


②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 성령을 받아야 알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건 다 몰라도 하나님 원하시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아야 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해졌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데로부터 온 영을 받거나 하나님 영이 없는 상태에서는 기독교의 기도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기도의 시작이 잘못됐으니 당연히 기도 응답도 제대로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는다는 것이 신비하고 특별난 일인 것 같지만 성령을 받았는지 다른 영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을 예수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바로 '열매로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누가복음 6:43-45)

그렇다면 사람들이 '나는 언제 어떻게 성령을 받았다'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성령 받은 상태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본인 주장이 기준이 될 수 없고 자신이 맺은 열매에 의해서 객관적으로 판단되는 것이 성령의 일이라는 말씀인데 그럼 성령의 열매는 과연 무엇일까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라디아서 5:22-26)


③성령의 객관적 열매가 총 9가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해를 좀 더 잘해보고자 영어 성경도 찾아봤습니다.


사랑 love, 희락 joy, 화평 peace, 오래 참음 patience, 자비 kindness, 양선 goodness, 충성 faithfulness, 온유 gentleness, 절제 self-control.


성령, 하나님의 영이라고 해서 굉장히 어렵고 신비한 무언가라고 그동안 착각하고 주눅 들었던 것이 좀 속상할 정도로 성령의 열매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기도를 잘한다는 사람들이 '성령 받았냐?'라고 추궁하며 내세우던 것들은 자신에겐 있고 너한텐 없다는 식의 우월감을 나타내기 위한 완장 같은 것들이었습니다.(입신-기절한 상태로 환상의 세계에 다녀온다든지, 방언-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외계어 반복 또는 아주 드물지만 배운 적이 없는 짧은 외국어, 영서-영적인 글씨라 해서 뜻을 알 수 없는 외계 문자 쓰기)


하지만 사랑 love, 친절함(자비) kindness, 부드러움(온유) gentleness 같은 성품이 신비한 무언가는 아닙니다. 아무리 어리석다 해도 저 사람이 사랑이 많은 사람인지 사랑하는 척하는 것인지 시간이 지나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친절함(자비)이라는 것도 그냥 아기들도 대번에 알 수 있는 성품입니다. 점잖고 멋진 성품 gentleness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열매라고 한 것입니다. 사과인지 복숭아인지 열매는 혼동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그 열매가 맺힌 나무도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분명해집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고 계신데 성령은 이미 우리들이 알고 있는 객관적인 인격으로 경험된 것들입니다. 기도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인지, 친절함과 관련된 것인지, 선함을 추구하는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것인지, 기쁘고 평화로운 것인지 헷갈릴 수가 없고 도리어 너무 분명해서 모를 수가 없습니다.


5.

진작에 직접 성경을 읽을 걸...


신앙생활하면서 선배님들 존중, 목회자들 권위 인정해드리느라 당연히 나보다 많이 알고 경험도 많고 잘 알겠지 내가 무슨 건방지게 혼자 잘난 척하겠나 겸손하게 배우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좀 후회스러웠습니다.


성경에 너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들을 괜히 고민했다 싶습니다.


기독교의 기도는 간단히 말해 자기 수련이 전제되지 않고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기도입니다.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기도를 하려면 성령의 열매가 없으니 하나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없기에 내게 사랑 없음을 먼저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으로 기도해야 성령의 기도인데 아무리 나를 힘들게 해도 그 사람이 망하라고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 말씀드린 어린 시절 기도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엄마가 자주 화를 내시기는 했지만 내가 어디선가 잃어버린 장난감을 청소하다 우연히 발견하셔서 장난감이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유치원생 꼬마가 기도하는 모습이 순수하고 귀여워 보였을 것 같고 혹시라도 엄마가 몰래 보셨다면 너무 사랑스러워 잃어버린 그 장난감을 꼭 찾아주시거나 새것이라도 사다 제자리로 돌려주고 싶으셨을 것 같습니다. 꼬마의 간절한 기도가 평생토록 정말 계속 응답되기를 바라며 비밀에 부치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


진정한 기도 응답은 엄마의 사랑 속에, 어린 시절 순수함 속에, 우연의 일치 속에, 사랑에서 출발한 의지 속에, 성경대로라면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훈련하고 하나님 깊은 마음을 깨닫게 되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최종 결론은 성경 말씀대로만 기도한다면 반드시 기도는 소용 있다! 응답된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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