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신앙, 거짓말
하나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11
1.
숨기고 싶은 비밀이 없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숨기고자 하는 비밀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비밀을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도 커져서 다른 일까지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평상시처럼 친구들과 시끄럽게 떠들고 까불면서 한 친구집에 놀러 갔습니다. 다들 늘 하던 대로 부모님들이 일하러 나가신 뒤의 어중간한 오후 빈 집에서 저마다 자리를 잡고 쉬거나 놀았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우리를 초대한 친구가 재밌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작은 책을 들고 나왔는데 친구들이 먼저 잔뜩 몰려가서 그 책을 한참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책'을 보던 친구들은 탁자 너머에 몰려 있었고 저는 탁자 아래쪽 창가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기억은 정확히 나지 않지만 전 그 집 테이블에 놓여 있던 잡지책을 혼자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짓궂은 친구 한 명이 제가 보고 있던 잡지책 위로 그 '책'을 펼친 상태로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제 반응을 살펴보았습니다.
뭐야? 라고 무심코 반응하고 본 그 책은 제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포르노 책이었습니다. 이전까지 이처럼 노골적인 포르노에 노출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제 첫 반응은 이게 뭐지? 하는 의아함과 당황스러움이었습니다. 성인 남녀가 사진을 찍었는데 옷을 전혀 입고 있지 않다는 것도 이상했고 함께 하고 있는 행동도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친구들 분위기가 다 재밌고 시끄럽게 떠드는 분위기였기에 놀라고 당황스러움을 표현하는 대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으로 그 순간을 모면했고 나중에 들은 얘기였지만 이 친구 외에도 다른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집 엄마 아빠가 숨겨두었다던 포르노 책이나 비디오를 같이 보고 왔다는 아이들의 무용담이 여기저기서 들려왔습니다. 포르노를 처음 친구들에게 보여준 아이들은 의외로 얌전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었고 둘 중 하나는 여자 아이였습니다. 다 교회를 다니는 아이들이었습니다.
2.
인생에서 두 번째로 당황스러웠던 포르노는 훌륭하게 생각하던 목사님 노트북에 있던 포르노였습니다.
가깝게 지냈던 젊은 목사님 가정의 신혼 집들이였습니다.
꽤나 유명한 목사님 집안에서 대를 이어 목사가 되신 분이기도 하고 지금도 여전히 기독교 미디어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목사님입니다. 노트북도 귀한 시절이었고 인터넷접속도 지금처럼 원활하지 않던 때였습니다. 집들이 도중 급히 이메일 확인을 해야 할 일이 생겨 노트북을 잠깐 써도 되는지 목사님께 양해를 구하니 '얼마든지 써~' 노트북 자리에 선뜻 앉으라고 하시고 금세 다른 집들이 손님들 응대를 위해 응접실 쪽으로 가셨습니다.
인터넷 접속이 지금처럼 초고속이 아니었던 때라 페이지가 넘어가길 기다리다가 무심코 바탕화면에 있는 아이콘들을 몇 개 눌렀는데 모두 포르노 파일이었습니다. 너무 놀라서 황급히 닫았습니다. 저 자신도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포르노에 노출된 상태였지만 막상 존경하고 유능하게 느꼈던 젊은 목사님, 그것도 이제 결혼하신 지 얼마 안 되는 신랑 목사님의 혼수품 노트북에서 포르노를 발견하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그분의 은혜로웠던 설교는 모두 거짓말로 들렸고 내 기독교 신앙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인간 전반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떨어지는 사건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폭로하지도 않았습니다. 익명으로나마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곳이 바로 이곳인데, 그동안 침묵했던 이유는 나 또한 포르노에 노출되어 있었던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주변 신앙인들 중에도 포르노를 즐기거나 포르노를 끊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에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겠나?' 하는 생각이 컸습니다. 목사님이라고 해도 똑같은 사람인데 그다지 도덕적 신앙적으로 우월하지도 못한 내 경솔함 때문에 가십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그 노트북은 개인의 노트북이었고 내가 그 노트북을 사용하고자 했던 목적 외에 다른 파일을 허락없이 임의로 눌러본 것은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했습니다.
3.
모세 율법에 자세히 열거되는 성적인 금기들이나 성경 인물들 간에 생긴 성적인 일탈들, 신약성경에도 등장하는 교회 내 성적인 범죄들과 범죄 단계까지 실행되진 않았으나 마음과 눈에 자동 추적장치가 달린 듯 관음 하는 욕망들을 접하며 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 특정 신체부위만 사랑하거나 성적 매력만으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신앙을 갖고 사랑을 이야기한다면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인간 본성 가운데 성적 욕망도 창조하신 하나님 섭리를 간단히 부정하거나 인위적으로 억압해서도 안 되겠지만, 성적 욕망을 오직 자극을 목적으로 극도로 과장하고 특수한 성행위를 반복시키는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소홀히 여기는 나쁜 포르노에 기독교인들은 반대해야 합니다.
일상적으로 당연히 존재하는 욕망, 정상적이고 상호존중하는 욕망, 하나님 지으신 인간의 존엄성을 더욱 활기 있게 하고 풍성하게 하는 욕망은 허용하되, 상대방을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여 파편적으로 이용하려는 모든 포르노적인 욕망은 차단해야 합니다.
죄책감을 강하게 유발하는 포르노의 찜찜한 쾌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영혼과 육체가 전인적으로 충만하게 되는 사랑, 도리어 너무 충족되어 욕망이 소멸되는 사랑에 실패하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