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같으면 명절 당일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전날부터 모여 숙식하며 여자들은 음식 준비, 남자들은 화투 및 음주로 밤을 새웠습니다. 명절 차례가 끝난 뒤에도 자고 가라는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하루를 더 자고 다음날 피곤하게 일어나곤 했죠.
하지만 이번 명절에도 설 당일만 교통정체가 심했습니다. 다들 당일에 인사만 드리고 식사 정도 같이 하고 귀경/귀가하는 분위기가 됐기 때문입니다.
가족 간 결속력도 전 같지 않고 가족의 결속력을 다지는 행사 문화도 다양해졌습니다. 제 주변에도 명절 연휴에 해외여행을 떠난 집들이 꽤 많습니다. 그리고 '뼈대 있는 가문'이 되기 위해 엄한 규율을 강제하시던 어르신들이 이제 세상을 떠나신 지 오래되었거나 힘없는 고령이 되신 탓도 클 것입니다. 또한 딸들의 지위가 올라가고 성평등 의식이 높아진 것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달라진 명절 분위기가 오기까지 무척 괴로운 시간을 겪어야 했던 많은 기독교인들의 고통이 있었습니다.
2.
조상 제사에 대한 입장을 바꾼 천주교와 달리 개신교는 '제사=우상숭배'라는 보수적인 기준을 강력히 고수했습니다.
제사가 조상을 모시는 의식이 아니라 조상을 가장한 귀신을 숭배한다는 성경 해석이 그 신앙적 이유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천국이든 지옥이든 다음 생으로 넘어간 뒤 이생으로 다시 넘나들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조상님이 오셔서 제사상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 자리에 귀신이 조상을 가장해 그 자리에서 제사상을 받는다는 거죠.
조상 제사 드리는 의식 중에 조상귀신이 잘 들어오실 수 있도록 창문을 열어 놓는다든지 숟가락 젓가락을 올려놓은 제사상의 밥이 삭아 있다든지 하는 경험들은 조상 제사를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조상님이 귀신 형태로 존재한다는 확신을, 개신교인들에게는 악한 마귀의 존재를 확신하는 증거로 인식됩니다.
'음복(飮福)'이라는 개념도 제사파와 개신교파 양측에 논란거리입니다.
제사를 강조하는 측에서는 조상신이 드시고 난 영험한 술과 음식을 자녀손들이 나눠 먹을 때 조상신의 알 수 없는 신비한 능력이 음식을 통해 전달된다 주장합니다. 개신교에서는 조상신이 아니라 조상을 가장한 귀신이 그 자리에 함께 하며 술과 음식을 더럽혔으므로 귀신에게 바쳐진 우상 제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3.
조상신을 믿는가? 개신교 신앙을 갖는가? 를 떠나 객관적인 사실만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조상 제사를 강조하는 분들과 진지한 대화를 해보았습니다. 완고한 입장을 고수하는 이면을 들어보면 대개 제사 의식 자체를 중시한다기보다 제사 과정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기대치가 있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제사를 지내며 흩어졌던 가족들이 제사를 계기로 모두 모이는 즐거움, 평상시 먹을 수 없었던 진귀한 음식을 먹으며 기뻐하고 설렜던 기억, 팍팍한 세상살이 중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피붙이 간 끈끈함...세상 천지 어디에서도 그런 모임이 없기 때문에 제사 의식을 통해 이 모든 것을 다시 소환하고 재현하려는 속마음이 그 중심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개신교인들이 이런 속마음을 세심하고 부드럽게 헤아리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교회 열심히 다니는 이들이 덮어놓고 '조상신이 아니라 귀신이야!'라고 주장하며 제사 음식 만드는 것을 거부하고 제사 의식을 보이콧하는 것은 가족의 결속을 대놓고 깨뜨릴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가치관을 노골적으로 공격하고 흠집 내고 열등하게 만드는 도발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개신교인들과 그리도 격하게 대립한 것입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런 표현도 불사했던 거죠.
개신교인들은 역사적으로 신문물을 빨리 받아들이는 성향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현 체제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었죠.
과거 청소년 문화라는 것이 마땅히 없었던 시절, 중고등학교 6년은 죽었다고 생각하라는 가르침에 반발하는 이들이 교회에 가서 성가대도 하고 문학의 밤도 열고 교회 내 문집도 만들고 사랑도 했습니다. 공부 기계라는 정체성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인간 공동체가 교회에서 경험될 수 있었습니다.
밥 하는 기계, 집안의 하녀 취급에 불과했던 가부장 질서를 벗어나 여성의 자율적 존재감을 인정해 주는 건전한(?) 종교로서 동네마다 있는 교회는 답답한 집안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였습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여성들과 수다도 마음껏,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며 냅다 소리를 지르고 몸을 격렬히 움직일 수도 있고 구역모임, 선교회 모임을 통해 공동체 경험과 때마다 나들이도 계획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교회의 가르침은 나를 살게 해 준 새로운 신념체계로 자리 잡게 되고 이곳에서 가르치는 교훈은 나를 억누르는 과거의 질서를 깨뜨릴 수 있는 대안으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
왜 여자만 제사 음식을 하는가? 왜 제사를 이유로 가족 내 여성 서열을 매겨 음식 노동 짬을 때리는가? 왜 남자들은 명절 내내 놀고먹기만 하는가? 왜 처가에는 함부로 하는가? 불만과 분노와 의아함으로 가득찬 마음은 '조상 제사=우상 숭배/귀신 숭배' 라는 교회의 가르침 덕에 속 시원하게 풀어질 수 있었습니다.
'조상 제사는 무지몽매한 악습일 뿐이고 귀신의 장난에 놀아나는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과감히 싸워서 깨뜨려 버려야 할 과거의 폐단이요 신앙의 걸림돌입니다!' 이들은 확신을 갖고 외칩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보기 시작하면 제사를 드리는 모든 사람은 열등한 존재, 귀신에게 종노릇하는 우상숭배자로 일반화될 뿐 그 속마음이 무엇인지는 간단히 무시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4.
이제 양쪽이 화해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제사를 중시하는 분들은 험한 세상살이 중에 가족들이 연휴에 모여 식사 한 끼 맛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얼굴들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이번엔 우리가 음식을 준비하겠다고, 이번엔 외식을 하자고, 부담 없는 선에서 가족 모임을 제안하면 어떨까요?
열심 있는 개신교인들도 전투적인 태도, 가르치려는 딱딱함 대신 가족들의 만남과 식탁의 교제를 축복하고, 사랑과 웃음과 유익함이 가득한 자리가 되도록 기도하며, 교회 모임에 가는 것만큼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는 적극성을 가지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