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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Lu Feb 09. 2019

박씨네 똥개의 역사 #4

"토미를 닮았다고요?"



"네? 토미를 닮았다고요?"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은 아빠가 재차 물으셨다. 아주 오랜만에 아빠 입에서 나온 '토미' 소리에 옆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던 언니와 나는 동작을 멈추고 아빠를 동시에 쳐다보았다. 


'토미를 찾았나?'


몇 달 전, 사라진 토미의 소식이 이렇게 들려오는 건가 싶었던 순간.


"네네. 금방 넘어 갈게요."


아빠는 전화를 끊고는 어디론가 나갈 채비를 하셨다. '아빠 뭔데 뭔데 토미야? 토미를 찾았어?' 옷장에서 외투를 꺼내는 아빠의 팔다리에 매달린 우리 자매는 아빠에게 연신 물었지만 아빠는 살짝 미소만 보이시며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집으로 돌아온 아빠 품에는 무언가가 수건에 감싸 있었다. 아빠의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무언가가 수건 속에서 부스럭대며 고개를 내민 순간, 우리는 소리를 질렀다.


"토미다!!!"


사실 토미는 아니었다.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온통 숯검댕이를 뒤집어쓴 것 마냥, 까맣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새끼 강아지였다. 몇 달 전, 토미를 잃어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의 어느 암컷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었고 아빠는 혹시 모르는 마음으로 토미 새끼인 것 같으면 알려달라고 언질을 하셨는데, 제법 엄마 젖을 먹으며 살이 오르고 나니 온 몸이 검정 털에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딱 토미 새끼다 싶었던 이웃집 아저씨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고 가라고 하신 것이었다. 


"고 녀석 참 까맣네."

"깜깜한 밤 같아."

"그래, 깜깜한 밤 같네."

"깜깜이 어때??"

"좋다, 깜깜이!"


엄마젖을 갓 떼고 낯선 집으로 온 검은색 새끼 강아지는 그렇게 우리 집 2호 똥개, 깜깜이가 되었다. 


깜깜이는 정말 토미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는지, 토미처럼 다리가 짧고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아주 까만 털을 갖고 있었으며, 거기에 까만 눈동자를 지닌 강아지였다. 토미와 다른 점이 있다면, 깜깜이는 자라면 자랄수록 귀가 쫑긋 서서 셰퍼드처럼 제 얼굴만 한 귀가 위로 바짝 선 모양이었고, 반면 토미는 귀가 반으로 접혀서  깜깜이보다는 더 귀염상이 있는 얼굴이었다. 


외국에서는 '블랙독 신드롬'이라는 것이 있다고 전해 들었다. 단지, 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검은색 유기견 입양을 기피하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검은 유기견들은 다른 유기견에 비해 입양률이 낮아 안락사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 점으로 보았을 때, 연달아 올블랙 똥개를 입양한 우리 가족을 보면 참 편견이란 것이 없었던 것 같다. 까맣든 하얗든 얼룩이든 갈색이든 그저 인연이 닿아 가족이 되면 가족이 되는 것일 뿐이었다. 그때, 그 시절에는 꼬박꼬박 병원에 데려가 예방접종을 맞추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품종과 색깔로 가족을 결정하지는 않았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고 깜깜이는 토미와 아주 다른 강아지라는 것을 우리 가족은 깨닫게 되었다. 토미는 다정다감한 성격이었다면, 갓 사춘기를 지나던 깜깜이는 토미보다는 공격성이 있었고 고집도 센 편이었다. 토미처럼 우리 자매와 하루 종일 잘 놀아주고, 함께 해주는 든든한 친구였지만 집에 찾아오는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아주 강했고, 온 동네가 떠나가라 짖어대다 아빠에게 한 대씩 쥐어박히기를 밥 먹듯 했다. 그때는 깜깜이가 공격적인 성향의 개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여러 동물 프로그램을 보며 느낀 것은 깜깜이가 공격적이었다기보다는, 아주 겁이 많은 개였고 가족을 자기가 보호해야 한다는 충성심이 아주 강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그러한 깜깜이의 깊은 속내를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언니 모두 학교를 가고 엄마와 깜깜이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소포요~"


늦은 아침,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우리 집 계단을 올랐던 그 순간. 계단 안쪽에서 웅크리고 잠을 자던 깜깜이가 그 소리에 깜짝 놀랐는지 갑작스레 으르렁대며 우편배달부 아저씨에게 달려들었다. 깜깜이는 아저씨의 발목을 콱 물었고, 아저씨는 놀람과 고통에 소리를 지르셨다. 방 안에서, 바느질을 하며 소일거리를 하고 있던 엄마는 깜깜이의 공격적인 소리와 아저씨의 비명에 깜짝 놀라 집 밖으로 나오셨다. 우편배달부 아저씨는 깜깜이에게 여전히 발목을 물린 채 바닥에 누워서 '아이 고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깜깜이는 계속 응실 거리며 마치 영화 속 경찰견이 훈련을 하면서 발목을 물고 흔들어대는 모습처럼 우편배달부 아저씨의 발목을 제 입으로 흔들어대고 있었다.


엄마는 아주 놀라, 얼른 깜깜이의 몸을 들어버렸다고 한다. 그제야 발목에서 입을 빼낸 깜깜이는 여전히 성이 안 풀렸는지 계속 응실거렸고, 성질난 개를 그대로 내려놓을 수 없었던 엄마는 깜깜이를 집 안으로 던져버리고 얼른 문을 닫아버렸다. 


다행히도 우편배달부 아저씨의 발목은 상처가 심하지 않았었다. 그래 봤자 4kg 정도 나가는 작은 똥개였던 깜깜이였고, 이빨도 큰 개들처럼 사납게 날카로운 편도 아니었으며, 아저씨 역시 두꺼운 양말을 발목 위로 길게 올려 입으셨었기에 상처는 살짝 피가 난 정도였다고 했다. 


"이짓하면서 뭐 한두 번 겪었을 일도 아니고, 괜찮아요~"


너무 놀라 죄송한 마음에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 사죄하는 엄마에게 우편배달부 아저씨는 대답하였다. 약이라도 발라드리겠다며,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하였지만 우편배달부 아저씨는 엉덩이에 묻은 흙을 툭툭 터시더니


"고놈, 성깔 하고는~"


하시더니 껄껄 웃으며 가방을 챙겨 들고 계단을 내려가셨다. 아저씨가 사람 좋은 분이었고 '개니까 그럴 수 있다'하시며 이해해주셨으니 망정이지, 정말 큰 일로 이어질뻔한 일이었다고 엄마는 기억했다. 그날 밤, 엄마에게 사건을 전해 들은 아빠에게 깜깜이는 무섭게 혼쭐이 났지만 이미 몇 시간이 지난 상황이었기에 정작 깜깜이는 무엇 때문에 자기가 혼나는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집에서는 또다시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게 되었다. 이번에는 8살 어린 사내아이의 울음소리였다. 


"엄마 아아아 아!!!!"


방에서 후다닥 뛰어나온 엄마의 눈 앞에는, 깜깜이에게 발목이 물린 채 바닥에 뒹굴며 엉엉 울고 있는 사내아이와, 그 옆에서 눈물 콧물 흘리며 엄마를 불러대는 내가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옆동네에 살고 있던 같은 반 남자아이와 내가 우리 집으로 함께 놀러 왔다가 생긴 봉변이었다. 사내아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없지만 어쨌든 무언가 위험하다고 느꼈던 깜깜이는 선제공격으로 그 아이의 발목을 또 물었고, 처음 보는 깜깜이의 공격적인 모습에 놀란 나는 그저 울면서 엄마를 부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엄마는 깜깜이를 얼른 떼어내 방 안으로 던져버리셨다. 세상이 떠나가랴, 대성통곡하고 있는 사내아이의 바지를 얼른 걷어보니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피가 나긴 했다. 너무 놀라 비명을 지르며 우는 사내아이를 얼른 가슴에 품고 달래주며, 나에게 약상자를 가져오라 시켰고 나는 밴드와 빨간약이 들어있는 약상자를 얼른 가져와 엄마 앞에 내려놓았다. 


"아가, 집이 어디니? 함께 가자."


겨우 울음이 그쳤지만 연신 코를 훌쩍이는 사내아이에게 엄마가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 엄마를 보자마자 다시 눈물보가 터진 사내아이의 울음소리에, 엄마는 사과의 말이 전해지지 않을까 봐 더욱 깊이 허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크게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네요. 괜찮아요. 개가 그럴 수 있죠."


그때는 아이가 어디서 얻어맞고 와도 '네가 맞을 짓을 했겠지'하며 한대 더 맞던 시절이었다. 지금 같아서야, 개한테 물렸다고 하면 경찰서까지 가는 경우가 많고 사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는 시대이지만 그때는 이웃의 사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는 그때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 아이의 엄마는 우리를 용서했지만, 엄마는 깜깜이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예부터 피를 본 개는 계속 피를 본다고 하였었다. 사람을 무는 개는 사람의 집에 살 수 없는 법이라 생각이 드셨다고 했다. 


집으로 도착한 엄마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시더니 나를 옆집에 맡기시고는 나갈 채비를 하셨다. 나는 아직 뭘 모를 나이였기에 금방 잊을 때였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을 다니고 있던 언니는 우리 집에서도 깜깜이와 가장 관계가 단단한 때였다. 엄마는 언니가 집에 오기 전, 깜깜이를 데리고 나서야 했다. 그리고 언니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언니를 반기며 꼬리를 흔들며 뛰어나가던 깜깜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깜깜이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손으로 집에서 내보낸 개였다."


얼마 전, 깜깜이의 마지막을 묻자 들려준 엄마의 말이었다. 우편배달부 아저씨의 발목까지는 실수였겠지 싶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어린아이까지 무는 개는 더 이상 집에서 키울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요즘 TV 프로그램에 나오듯, 깜깜이를 훈련할 수 있었다면 조금 더 우리와 오래 함께 살 수도 있었을까?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미리 주의를 주고, 겁 많은 개가 놀라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 역시 노력했다면 엄마가 직접 깜깜이를 어디론가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그랬을 수도 있고 그러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선택은 그 당시로써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이해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보다 개가 먼저일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저 깜깜이의 성격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었던 것이 가슴이 아플 뿐이다. 먼 훗날, 무지개다리 건너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깜깜이를 만난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아주 미안했다고, 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너무나 미안했다고. 오래 기다려서 고맙다고. 이번에는 내가 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하고 싶다. 


(언니와 깜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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