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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황 Nov 21. 2018

종합 격투기 시합을 하다.


  

  싸움을 해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 사람들에게 있어서 싸움이란 혈기 넘치는 10대나 20대 초반에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하나의 사고 같은 것일 것이다. 나 역시 학창시절 이후 십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누군가와 주먹을 섞는다는 것은 술자리 안줏거리 같은 옛날 추억 속 이야기일 뿐이었다.


  

  스물아홉 살, 종합 격투기를 시작하고 올해로 서른 셋.  

그동안 두 번의 시합에서는 운 좋게 모두 이겼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주먹을 섞는 일이 제법 익숙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시합을 앞두고 느끼는 감정은 불안감과 두려움이다.


시합을 위해 직장에는 휴가를 내고 하루 전날  대전으로 내려가는 기차표를 끊으러 갔다.

자리가 없다. 낭패였다.  

입석으로 기차에 쭈그리고 앉아서 약 두 시간, 다시 대전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30분.

대전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침대에 널브러졌다.

평소였으면 약간 피곤한 정도였겠지만 난 79킬로에서 70킬로까지 살을 빼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안되겠다 싶어서 가지고 있던 바나나 두 개를 급히 까먹자 조금이나마 기력이 돌아왔다. 기력이 돌아오자 불안해져서 급히 체중을 달아보았다.  

  70.8kg

한계체중인 71.5까지 조금 여유가 있다. 다행이었다. 지난 몇칠간 먹고 바로 체중계 위로 올라가는 일을 하루에 몇번이고 지긋지긋할 정도로 반복하고 있다. 사실 이렇게 안 하면 불안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긴장이 풀리자 나는 그대로 잠을 한숨 청했다.


자고 일어나자 다시 불안함이 찾아들었다.

몸의 피로가 좀 풀리면 마음의 불안함이 찾아오는 지긋지긋한 순환. 나는 이 불안함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영화나 한편 보자.'


  마침 숙소 바로 근처에 영화관이 있었다.

   어떤 영화를 볼까 고르다 보니 바울이라는 영화가 있는 것이 아닌가.

난 개인적으로 기독교인이며 인간은 종교가 꼭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인데 이럴 때마다 그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진다.


  


  '무신론자도 두려움 앞에서는 신을 찾게 된다.'


  이미 볼 영화를 다 본 것도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바울 이란 영화를 보았다.


  영화 자체는 재미없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요즈음 내 삶에 결핍되어있는 한 가지를 느낄수 있었다.

  바로 감사였다.


  지난 몇 개월간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만 보고 정작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는 감사할 줄 모르는 삶을 살고 있었다. 시합을 준비하면서 녹초가 되서 일어나기도 힘들 정도로 운동하고 바나나와 계란으로 매 끼니를 때우면서 고통스럽다고 생각만 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동안 내가 평범하게 보냈던 일상들은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가.

  이제 힘든 순간은 하루 남았다. 결과야 어찌 되었건 내일이면 끝이다.

 감사한 일이었다.


  이기던 지던 감사하자.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시합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불안감은 잦아들었다. 나는 숙소로 돌아와 감사함의 여운을 느끼면서 편히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계체를 여유 있게 통과했다.  

 장비를 착용하고 케이지 앞에 섰을 때 나는 더 이상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예전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돌이킬 수가 없으면 인간은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모양이다. 케이지 안에 들어갔고 심판이 내게 준비되었냐고 물어본다.


내가 지금 싸우러 나오기는 한 건가?

기묘한 평온함을 느끼며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FIGHT!


싸움의 순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 나는 모든 것을 끝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다.   

결과는 어찌 되었냐고? 이번 시합은 운이 좋게도 승리할 수 있었다.

이겨서 이렇게 기분 좋게 글을 쓰고 있는 것 일수도 있다. 그게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이겨서 기분 좋은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은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기던 지던 내 일상은 전혀 달라지는 것이 없을 테니까.


이번 시합에서 진정 내가 얻은 것은 승리가 아니라.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이번 시합이 단순히 이겨서 기분 좋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체욱관 동생과 동반 승리후 기분 좋게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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