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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황 Nov 11. 2018

여유를 향한 짝사랑

 


  나는 여유를 사랑한다. 

아침에 적당히 자고 일어나서 적당히 운동을 해서 땀을 흘리고 씻고 아침을 간단히 먹으며 글을 쓰는 이 시간이 내 마음을 충만하게 한다. 

  

 

  항상 머릿속에 갖는 의문이 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현대문명의 발전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여유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 발전한 것이 아니었던가.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갈 것이라면 현대문명의 발전이 다 무슨 소용인가. 


  

 여유란 인간에게 허용된 특권이다. 

  

 여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다시 돌이켜볼 수 있고 옳고 그름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감정을 음미하고 몸과 마음을 회복할 시간을 벌 수가 있다.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동물이 아니라 비로소 인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문명의 발전이란 것은 삶의 여유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욕심 많은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발전했던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옆 마을에 소식을 전달하는 직업을 가진 개떡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예전에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걷거나 말을 타고 달려서 상대방에게 편지를 전해야 했다. 

  굉장히 힘든 과정이고 옆 마을이 왕복 하루 거리에 있다면 그것은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야 하는 일이었다. 개떡이는 하나의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하루를 모두 보내야만 집으로가 몸을 늬일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는 10초면 상대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예전에는 하루를 걸렸던 일을 지금은 10초면 처리할 수 있으니 개떡이에게는 여유시간이 넘쳐야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씁쓸하게도 우리 모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현대의 개떡이는 예전에 하루의 한 개만 보내면 되었던 메시지를 수백 통을 보내며 하루를 모두 다 보내고 있다. 

 

  결국 여유시간이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현대 한국에서 굶어죽을 걱정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적어도 남들 수준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루 12시간은 죽어라고 일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직면해있다. 

   우리는 문명 발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음에도 무엇인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것의 정체는 모두들 알고 있다. 

  

  바로 탐욕. 

 

  정말 불쾌한 것은 그것이 나 자신의 욕심이 아니라. 저 윗분이라 불리는 자들의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탐욕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전시(戰時)가 아님에도 전시로 살아가게끔 만드는 사회.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이 일이 옭은 지 그른지 왜 이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지 생각할 여유도 없는 생존과 승리만을 위한 사회.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겠지. 

  

  나 역시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대한민국 시민 중 한사람이지만 이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중에 한사람이기도 하다. 


   지금은 준비의 과정이다.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도전을 위한 준비 과정.   

  여러분에게 '이런 모습으로도  살아 갈수도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한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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