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향한 짝사랑

by 미스터황




나는 여유를 사랑한다.

아침에 적당히 자고 일어나서 적당히 운동을 해서 땀을 흘리고 씻고 아침을 간단히 먹으며 글을 쓰는 이 시간이 내 마음을 충만하게 한다.


항상 머릿속에 갖는 의문이 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현대문명의 발전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여유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 발전한 것이 아니었던가.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갈 것이라면 현대문명의 발전이 다 무슨 소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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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란 인간에게 허용된 특권이다.


여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다시 돌이켜볼 수 있고 옳고 그름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감정을 음미하고 몸과 마음을 회복할 시간을 벌 수가 있다.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동물이 아니라 비로소 인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문명의 발전이란 것은 삶의 여유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욕심 많은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발전했던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옆 마을에 소식을 전달하는 직업을 가진 개떡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예전에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걷거나 말을 타고 달려서 상대방에게 편지를 전해야 했다.

굉장히 힘든 과정이고 옆 마을이 왕복 하루 거리에 있다면 그것은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야 하는 일이었다. 개떡이는 하나의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하루를 모두 보내야만 집으로가 몸을 늬일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는 10초면 상대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예전에는 하루를 걸렸던 일을 지금은 10초면 처리할 수 있으니 개떡이에게는 여유시간이 넘쳐야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씁쓸하게도 우리 모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현대의 개떡이는 예전에 하루의 한 개만 보내면 되었던 메시지를 수백 통을 보내며 하루를 모두 다 보내고 있다.


결국 여유시간이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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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에서 굶어죽을 걱정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적어도 남들 수준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루 12시간은 죽어라고 일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직면해있다.

우리는 문명 발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음에도 무엇인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것의 정체는 모두들 알고 있다.


바로 탐욕.


정말 불쾌한 것은 그것이 나 자신의 욕심이 아니라. 저 윗분이라 불리는 자들의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탐욕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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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戰時)가 아님에도 전시로 살아가게끔 만드는 사회.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이 일이 옭은 지 그른지 왜 이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지 생각할 여유도 없는 생존과 승리만을 위한 사회.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겠지.


나 역시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대한민국 시민 중 한사람이지만 이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중에 한사람이기도 하다.


지금은 준비의 과정이다.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도전을 위한 준비 과정.

여러분에게 '이런 모습으로도 살아 갈수도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한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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