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낸 순간: 소설, 김연수
저는 순간瞬間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눈꺼풀이 한 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그 짧은 찰나 말이죠. 처음으로 꺼내 입은 스웨터에서 옷장 냄새가 훅 풍기던 순간, 달리기를 한 뒤에 등을 수그리고 심호흡을 할 때 이마의 땀이 운동장 바닥으로 뚝 떨어지던 순간, 작업실 창 옆으로 새 한 마리가 휙 날아가던 순간. 그런 순간들 속에 나의 삶을 결정짓는 모든 의미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리 짧은 순간도 그냥 보낼 수 없잖아요. 기나긴 인생이란 결국 그런 순간들의 집합체죠.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자, 여기 달걀이 하나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 달걀은 떨어져 박살이 납니다.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주인공은 주저앉아 엉엉 웁니다. 사실 저는 조국이나 민족을 위해서 엉엉 우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계란말이를 먹다가 옛 애인이 생각나서 우는 사람은 봤습니다. 그게 다 우리가 보낸 순간들 때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