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없다'는 것도 할 말이지
내가 얼마나 '기레기'였는지 설명해주는 일화로 유해진과의 인터뷰를 꼽곤 했다. 때는 유해진이 김혜수랑 열애 중이라고 알려져 있던 시절, 나는 데스크의 지시대로 인터뷰 말미에 김혜수와의 열애, 결혼 등에 대한 질문을 했다. 시종일관 사람 좋은 웃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던 유해진은 "답변을 드리기 힘들다"며 정색했고, 그렇게 인터뷰는 마무리됐다. 그리고 난 유해진 "김혜수 관련 질문, 답변드리기 힘들다" -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애초에 데스크의 지시는 '답을 하건 말건 기사를 써라'였다. 답이 없으면 제목에 '묵묵부답'이라도 붙여 기사를 쓰란 거였다. 늘 마지막 질문은 짜치고 아픈 질문이었다. 내 뒤 타임에 인터뷰 일정을 잡은 타 매체 선배들로부터 "너 때문에 분위기가 냉랭해져 인터뷰에 애먹었다"는 타박을 듣고, 기사를 본 친구들에게 "왜 그런 기사를 쓰냐"고 욕먹고, 댓글로 수없이 기레기 소리를 들었지만 별수 없었다. 1시간 동안의 인터뷰 이후 서너 꼭지로 기사를 쓰면,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것은 늘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 연기에 대한 배우의 생각 등을 빼곡히 적어봐야 읽히지 않았다. 나는 류승범에게 공효진과의 결혼 계획을 물어보고, 박한별에게 세븐이 군대 가면 기다릴 거냐고 물었다.(공교로이 다들 결별하셨다) 결국에는 업계를 떠났지만 당시엔 그게 내 업이었다.
한때 그렇게 글로 밥벌이를 했던 탓에, 뭔가 글을 써보란 얘기를 여기저기서 들어왔다. '책을 한 번 써보면 어떻겠니' '형이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 어떨지 궁금해요' 그럴 때마다 "내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라고 대답했다. 예술가에게 작품은 세계를 보거나 다루는 방식 또는 세계 그 자체이고, 그렇기에 '하고 싶은 말'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세계를 텍스트로 제대로 축조해낼 수도, 독자를 그 세계로 초청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니까 내게 '하고 싶은 말'이란 어쩌면 살고 싶은 인생, 미래에 대한 기대 등과 같은 말이었다.
시작을 할 수 없었다. 분명 그동안 많은 글을 썼건만, 정작 '내 이야기'를 써보고자 할 때마다 그저 막막해졌다. 막연히 나만의 또렷한 시각이 생기고,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가 확고해질 때쯤 무언가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며 번번이 포기해왔다. '할 얘기가 없다'는 답변들로 기사를 써 남을 괴롭힌 벌을 받은 건지, 나는 정말 할 얘기가 없어졌다.
예전엔 어떻게 기사 아이템을 떠올리고 글을 써왔던 걸까. 대학생 시절부터 써왔던 글들을 읽어보며 그간의 글쓰기가 얼마나 수동적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나는 그저 마감에 맞춰 꾸역꾸역 기사를 '생산'했을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글쓰기뿐 아니라 나의 사회생활 자체가 계속해서 시험 답안을 제출해온 과정 같았다. 데스크의 혹은 회사 상사의 생각, 그러니까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거기 부합하려 노력하며 가까스로 버틸 따름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출제자가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윗분의 생각을 설명하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윗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만들어야 했다. 남의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채거나 내 감정을 감추고 세련되게 응대하는 재주가 내겐 없었다. 딱히 지킬 것도 없었건만, 머리가 굵어질수록 어설픈 자기검열이 일상이 됐다.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은 점점 드문 일이 됐고,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무는 데에는 익숙해져 갔다.
얼마간 자유가 생기고 나는 정말 바보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팔짱 끼고 남의 작품에 훈수나 둘 줄 알았지, 내 것이 없었다. 스스로를 바라볼 때조차, 남의 시선과 평가를 빌려왔다. 불만은 많았지만 딱히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매사에 감흥이 없어졌고 간단한 질문들이 어려워졌다. 내 얄팍함이 탄로 날까 잔뜩 겁을 먹었고, 그런 나를 내비치는 것이 부끄러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만의 무언가가 생기기는커녕 점점 나를 잃어가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부끄럽고 겁이 나지만, 나를 남겨놓는데 더 이상 인색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순간순간의 감정에 조금 더 예민하게 귀 기울이고, 거리낌 없이 내 생각을, 내가 바라보는 세계를, 내가 믿는 것들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시간이 지나고 그것들을 돌아봤을 때 내가 어떤 식으로든 성장해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불확실한 미래 또한 긍정하고 기꺼이 여기며 기다리고 싶다.
나는 아직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나를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한다면, 왠지 이 고백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