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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과인간 Nov 28. 2021

호텔에서 결혼식 안 했으면 좋겠다

따로 볼 정도로 친하지 않지만, 같은 모임에 있는 오빠의 결혼식이 있었다. 장소는 서울에 있는 ㅇㅇ 호텔.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이렇게 애매한 사이에 있는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건 처음이었다. 안 친하면 하객 수를 줄여야 하는 결혼식장에 한 자리 차지하지 않고 불참에 축의만 하는 게 미덕이었으니까. 위드 코로나 덕에 이런 결혼식도 참석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결혼식에 가기 위해 샤워를 하는 내 머릿속은 축하한다, 기쁘다는 마음 대신 축의금을 얼마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원래라면 당연히 5만 원을 축의했을 사이다. 안 친하니까. 황금 같은 주말에 시간내서 가주는 게 고마운 거니까. 하지만 장소가 호텔이었다. 호텔이고 뭐고, 2년 전에 있었던 직장동료 결혼식에는 그냥 5만 원을 축의했다. 하지만 2년 사이에 물가가 엄청나게 올라 버렸다. 호텔 밥이면 인당 5만 원은 할 게 분명했다. 청첩장 받는다고 곰탕도 한 그릇 얻어먹었는데 이러면 미안해진다.


하지만 10만 원을 내기는 너무 싫다. 본인이 좋아서 호텔에서 하는 거잖아! 내가 평소에 얼마나 아껴 쓰는데… 10만 원짜리 물건 뭐 하나 사야 하면 진짜 필요한 거라도 일주일은 고민하는데. 지난 번에 사려던 브랜드 가방이 13만원이라 비싸다 싶어서 그냥 저렴한 5만원짜리 가방 샀는데. 이렇게 갑자기 10만 원을 써야 하다니!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밥을 안 먹고 5만 원을 낼까도 생각했다. 그럼 미안한 게 없으니까. 원치 않은 호텔 밥 얻어먹는 것보다 돈 덜 쓰고 그냥 국밥 한 그릇 사먹는 게 낫지.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너무 찌질해 보였다. 10만 원 때문에 대체 이게 무슨 고민이람. 아, 호텔에서 결혼식 안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다 결국 10만 원을 축의하기로 결정했다. 오빠에게 미안해서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의 존엄성을 위해서가 더 컸다. 이대로 축의금 고민을 계속하다간 내가 너무 추하고 짠해 보일 것만 같았다. 고민은 넣어두고, 잘 축하해주고 오기로 했다.


결혼식은 멋졌고, 비싼 호텔 밥은 아주 맛있었다. 나도 미안해하지 않고 웃으면서 축하해줄 수 있었고. 10만 원이 뭐라고, 당당히 어깨를 펴고 결혼식에 다녀올 수 있었다. 만약 5만 원을 축의했다면 아마도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아 그냥 10만 원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을 게 뻔하다. 


이렇게 궁상맞고 계산적인 내가 싫다. 아냐, 내 잘못이 아니잖아. 오빠 탓을 한다. 왜 호텔에서 결혼식을 해가지구선! 아냐, 새신랑의 출발을 축하해주지는 못할 망정 탓하지는 말자. 그냥 사회 탓이나 하기로 한다. 망할 자본주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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