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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과인간 Dec 18. 2021

핼러윈 데이의 악몽

D-421(2019.10.24.)



  매년 핼러윈 데이마다 J와 나는 평소 입지 못하던 옷을 입고 이태원으로 홍대로 놀러 가곤 했다. 핼러윈 데이의 거리를 걷는 일은 아주 즐겁다. 독특한 분장을 한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원래 친구였던 것처럼 서로 말을 걸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J와 나는 본격적인 코스튬 플레이는 하지 않았지만, 평소에는 잘 입지 못하는 특이한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가곤 했다. 입고 갈 옷을 고르고 사는 것부터가 이벤트의 시작이고 재미였다. 소란스러운 걸 질색하는 R은 핼러윈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2019년 10월, 핼러윈을 앞두고 어김없이 뭘 입을지 고민하던 나와 J는 동물 잠옷을 샀다. 주로 어린아이들이 잘 때 입는 보들보들한 소재의 잠옷이었지만 성인용도 있었다. 모자까지 달려 있어 입고 나면 아주 포근했다. 집에서 잠옷으로 입어도 요란한 옷이었기 때문에, 입고 밖을 돌아다니는 건 핼러윈일 때만 가능했다.


  소, 개구리, 곰 등 다양한 동물 잠옷이 있었는데 우리는 각자 다른 모양의 컬러풀한 유니콘 잠옷을 골랐다. 유니콘 시스터즈라며. 핼러윈 데이보다 약 2주 먼저 배송시킨 옷은 일찍 도착했고, 나와 J는 집에서 각각 옷을 입어보고 착샷을 보내주며 낄낄거렸다.      


  그런데 핼러윈 데이를 약 3일 정도 앞둔 어느 저녁, 집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J의 카톡이 도착했다.

     

  - 나 이번 할로윈 못가

  - 엥? 무슨 일 있어?

  - 엄마죽엇대     


  그 문자를 받았던 때 우리 집의 모습을 마치 사진 찍듯 기억한다. 나는 거실에서 부엌을 향해 앉아 밥을 먹고 있었고, 식탁 위에는 내가 먹던 밥과 반찬이 몇 가지 차려져 있었다. 거실 불은 한쪽 형광등이 나가서 좀 어둡게 켜져 있었다. 큰방 문은 크게 열려 있었고 방 안의 불은 꺼져 있어 뻥 뚫린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방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서 순간 무서웠다) 식탁 바로 뒤에 있던 작은 방 문은 닫혀 있었다.


  사람이 어떤 충격을 받으면 매일 보던 풍경을 생경하게 보고, 마치 그 순간이 하나의 장면이 된 듯 머릿속에 계속 남아있게 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패닉에 빠져 바로 전화를 걸었는데, J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지금 전화는 못 받는다고 하고 끊었다. 평소와 다른, 이질적인 목소리였다. 그리고 카톡이 왔다.


  - 엄마 동생이랑 같이 자살했어

  - 아직 장례식장 안 정해졌고 내일 알려줄게


  사고사도 아니고, 자살이었다니. 게다가 동생도 같이.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그때 받은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당장 R에게 전화를 걸어 짧은 통화를 했다. 우리는 바보처럼 어떡해, 어떡해만 되뇌었고 내일 J에게서 연락을 받으면 일 끝나고 저녁에 장례식장에 들르자는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J의 어머니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J로부터 엄마 이야기는 많이 들었고 몇 번 뵌 적도 있었다. 나와 어머니는 서로의 핸드폰 번호를 저장해두었고 혹시 J에게 무슨 일이 있다거나 하면 연락을 하거나 문자를 주고받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 뵈었던 건 거의 2년 전, J가 집에서 독립하기 전이었다. 술을 마시다 취한 J를 집에 데려다줄 때였다. 집에 안 들어간다고 꼬장을 부리는 J를 달래서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시며, 나에게 고생했다고 조심히 들어가라고 하셨다. 그러고 나서 문자로 데려다줘서 고맙다고, 그치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고 한마디 하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혼이 났지만 다정하고 따뜻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다.


  밤에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일 J 얼굴을 어떻게 볼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마음만 울렁울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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