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20(2019.10.25)
J는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다. 엄마만을 사랑했다. 아버지도, 동생도 J가 마음붙일 곳이 아니었다. 아버지와는 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부장제에 충실한 분이었고, J가 집에 늦게 들어가거나 술을 마시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그래서 나는 J가 집에서 나와 독립을 한 건 아버지와 따로 살고 싶어서인 줄만 알았다. 동생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는데 그저 남동생이라 친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니 나는 꽤 무심한 친구였던 모양이다.
나와 J가 친구가 된 건 고등학교 때였고, 그로부터 거의 10년도 넘은 어느 날 별안간 J가 자기 동생 이야기를 했다. 동생이 사실 지체장애가 있고, 나이가 서른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스스로 이를 닦지 못하는 정도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런 동생을 못마땅해 해서 동생이 바보같이 굴면 소리지르며 욕을 했고, 심하면 때리고 발로 차기도 한다고 했다. 동생의 케어는 어머니가 전부 해왔다고 말하며, 그 모든 게 보기 싫어서 독립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때 내가 J에게 해줄 수 있었던 건 담담한 척뿐이었다. 그랬구나, 네가 많이 힘들었겠다. 그런 상투적인 말이 전부였다. 너무 놀라는 모습을 보이면 J가 괴로워할 것 같아 나의 온 힘을 끌어모아 담담한 척을 했고, 그날 이후로도 내가 동생의 소식을 먼저 묻는 일은 없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나와 R의 마음은 말그대로 참담했다. 빈소에 들어가자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J와 친척 어른들의 모습이 보였다. 손님들이 계시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사람이 적었고, 빈소 자체가 어둡고 침울했다. 자살자의 장례식이란 이런 거구나, 하고 깨달았다. 지금껏 장례식장이라곤 할머니, 할아버지의 장례식장만 가봤는데 늘 시끌벅적했다. 애도는 하지만, 그 안에 웃음이 있었다. 호상이라고, 잘 살다 가셨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은 그저 싸늘하기만 했다.
영정 사진이 나란히 두 개가 걸려 있었다. 나와 R은 영정사진을 향해 절을 두 번 하고 아버지와 J를 향해 인사를 꾸벅 했다. 의례적으로 하는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어요" 같은 말도 이 곳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입맛이 있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는 떡과 귤만 받아서 자리에 앉았다. J는 그래도 우리가 온 덕에 손님맞이를 덜할 수 있다면서 우리 옆에 앉았다. 아침부터 거의 먹은 게 없다고 했다. 나와 R은 차마 묻지 못하고 앉아 있었고, J는 천천히 얘기를 시작했다.
엄마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일 년 전부터 몸이 아프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나중에 아파서 죽을 것 같으면 그때는 동생을 데리고 가야지 하는 말이 있었다고. 병원도 가지 않고, 가족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서서히 죽음을 계획하셨다고. 집 안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현관문에 아버지께 놀라지 말라고 편지를 써두셨다고. J에게도 편지를 남기셨는데, 아버지를 잘 부탁한다는 내용뿐이었다고. 그런 엄마가 너무 안쓰러운데, 일기장이나 편지에 J에게 남기는 말은 별로 없다는 게 너무 괴로웠다고. J에게는 엄마가 1순위였는데 엄마에게는 J가 그렇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평생 동생만 돌보던 엄마가 마지막까지 동생과 함께 했다는 것도 화가 난다고. 이렇게 되면 하늘나라에 가서도 동생만 돌보게 될 엄마가 불쌍하다고.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는 J가 원래 본가에 가기로 했었는데, 그때 일이 있어서 못갔다고. 그리고 며칠 후 돌아가셨다고. 혹시 자기가 그때 갔으면 어머니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그때 갔어야 했다고...
아니라고, 너는 아무 잘못 없다고 J를 달랬지만 당연하게도 J의 마음은 나아지지 않았다. 장례식 내내 J를 안쓰러워하던 고모와 사촌동생이 살뜰하게 J를 챙겨줬다고 했다. 고모는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에게 와서 귤이라도 먹으라고 J의 손에 귤을 쥐어주고 가셨다. 그리고 딸인 사촌동생과 멀찍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다.
J는 그게 서러웠나 보다. 고모와 사촌동생을 보다가 갑자기 "나만 엄마 없어... 나만..." 하면서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내 최애였는데..." 이제서야 우는 J가 너무 안쓰럽고 그 애가 한 말이 너무 안타까워서 나와 J, R은 서로 끌어안고 장례식장이 떠나가라 크게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우리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울었던 것만큼 서럽게 울었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던 J가 '최애'라고 표현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자살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잃은 그 슬픔과 괴로움은 아직도 나는 다 알지 못할 것이다. 밤이 되어 J를 두고 장례식장을 떠나오는 길은 끔찍하게도 마음이 무거웠다.
나와 R은 어머니의 발인날도 따라갔다. 운구 버스 안에 앉아 말없이 일산 화장터로 향했다. 어머니와 동생이 불꽃 속에서 타오르는 동안, 함께 간 사람들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 모든 게 기묘하게 느껴졌다. J는 우리와 함께 앉아서 밥을 받았지만 몇 숟갈 뜨지 못하고 내려놓았다. 더 먹으라고 채근해도 도저히 안 들어간다는 데는 어쩔 수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J가 우리더러 집에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뭘 해야 할지 몰랐던 우리는 그렇게 J와 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그곳을 떠나왔다. 우리에게 인사하던 J의 힘없이 휘적이던 손짓이 기억난다.
그렇게 J 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쳤다. 나와 R은 지하철역이 없어 버스로 지하철역까지 함께 갔다. 화장터와 납골당 앞에 있는 그 외진 버스정류장, 그곳에 또 가리라고는 그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