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3(2021.1.4)
납골당은 지하철을 타고 한참 갔다가 버스를 갈아타고 한참 달려서, 내려서도 한참 걸어야 하는 곳이었다. R은 '사람 좋아하는 J가 이렇게 외진 데 있어서 어쩌냐'하고 말했다. 도착한 그곳은 사람 냄새라곤 정말로 거의 나지 않는 곳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왔다 간 J의 친구들이 작은 꽃다발 네 개를 J가 있는 작은 칸의 유리벽 밖에 붙여 놓았다. 직원분께 유리벽을 열어서 안에 뭘 놓을 수 있냐고 물었는데 코로나라서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작은 유리 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좁은 공간. 그 안에 있는 작은 항아리. 그 안에 나의 J가 있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나와 R은 생소한 그 공간에서 생소한 모습으로 있는 J를 보며 우왕좌왕했다. 그 애를 향해 인사를 하고, 기도를 하고, '다시 올게'라는 인사를 남기고 그곳을 떠났다.
비포장길을 털레털레 걸어서 다시 버스를 타고 연신내 시내에 도착했다. R은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데 그날은 나보고 먼저 술을 마시자고 했다. 무조건 오케이였다. 우리는 연신내 어느 마라탕 집에 들어가서 마라탕을 시키고 소주를 마셨다. 마라탕은 눈치 없게도 꽤 맛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둘이서 J 이야기를 하며 소주 한 병을 비우자 R은 또 그 답지 않게 우리 집에 가서 한잔 더 하자고 했다. 나는 또 오케이를 외쳤다.
그렇게 우리 집에 도착해서 우리는 그야말로 술을 쏟아붓듯 마셨다. R이 완전히 취한 모습은 친구가 된 지 15년 만인 그날 처음 봤다. 뭔지 모를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던 그때, R이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그 애는 눈물을 흘리며 자기 또한 우울증임을 나에게 고백했다.
사실 R과 J는 트라우마를 나누는 사이였다고. 그나마 멘탈이 건강한(?) 나한테 도움을 청할 걸 그랬다고. 항상 밝고 자신감 넘쳐 보이던 R에게 트라우마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거였다. 알고 보니 몇 년 전 해외에서 R은 끔찍한 일을 겪었다. 나는 J가 죽었다는 사실만큼 R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서 그 후 몇 날 며칠을 악몽에 시달렸다.
R 이야기를 듣고 나자 술이 다 깨버렸다. R은 같은 우울증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J의 마음을 이해했으며, 그 애가 얼마나 힘들지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그 애에게 치료를 받게 한다든가 하는 신경을 써주지 못한 것에 대해 큰 죄책감 덩어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괴로워하면서 R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00아, 나는 살고 싶어... 내가 너무 싫은데... 살고 싶어..."
그 말을 듣고 나와 R은 서로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나는 너게 정말 살았으면 좋겠다고, 꼭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들려주었다.
괴로워하는 R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과 R이 좋아하는 고양이 영상을 틀어주는 것뿐이었다. 고양이 영상을 보는 동안 R은 행복해 보였고, 자기도 저 고양이처럼 사랑받고 싶다고 했다. 독립적인 여성의 표본처럼 보이던 평소 R답지 않은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이 진심이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내가 사랑해 주어야지, 이 아이를. 하고 다짐했다.
R이 집에서 자겠다고 해서 택시를 타고 R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택시 안에서 R에게 과호흡이 왔다. 술을 많이 마셨고, 스트레스도 크게 받아서인 것 같았다. 누군가가 숨을 제대로 못 쉬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아주 힘들었다. 119를 부르겠다는 내게 R은 익숙하다며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했다. 대체 이 아이에게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있었던 걸까.
R이 숨이 막힌다며 숨을 흐끅 흐끅 쉴 때마다 나도 너무 괴로워 어쩔 줄을 몰랐다. 결국 우린 택시에서 내려서 시원한 바깥공기를 쐬었다. 바깥바람을 쐴 때는 괜찮더니, 버스에 타자 R은 다시 숨쉬기 힘들어했다. 어르고 달래 집에 도착하자 나도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R을 방에 눕혔는데도 여전히 과호흡 증세가 가라앉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나는 R의 어머니께 같이 있어 달라고 요청했다. 어머니가 계셔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R을 살고 싶게 하고, J를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게 했던 건 결국 엄마의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R의 어머니는 R의 증상을 듣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휴, 아직 취업을 못해가지고 애가 스트레스가 많아..."
처음에 그 말을 듣고는 '아니, 아니에요 어머님. 지금 R은 트라우마랑 J 때문에 너무 힘든 거라구요!'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R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준 그 일에 대해서는 모르실 터였다. R이 내게 말할 때 이 일에 대해 아는 사람은 J, R의 다른 친구 한 명, 그리고 나뿐이었다고 했으니.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지 한참이 지난 지금, 나도 취업을 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어머니의 말씀이 아예 틀리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R이 힘든 이유는 트라우마와 J 때문이지만, R에게는 무뎌질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회사를 다닌다는 건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회사에 쏟는다는 것이다. 출근하고, 일을 하고, 사회생활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쓰다 보면 그 일상적인 현실감 외에 다른 것들에는 아무래도 무감해진다. R에게는 그렇게 괴로운 일에 무감해질 만한 장치가 없었다. 그러니 고통이 더욱 생생하고 가까웠던 것일지도.
그러고 난 후 며칠간, 나는 매일 R에게 카톡을 보냈다. 잘 지내는지, 마음은 어떤지 궁금해서. 사실은 R마저 나를 떠나갈까 봐 두려워서. 일 년이 지난 최근에는 그만큼 카톡을 자주 하지 않는다. 이제 R도 많이 괜찮아진 듯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지금 깨달았다. 이건 J 때도 생각했던 거였다. 이제 많이 괜찮을 거라고 섣부르게 생각했다가 잃어버린 내 친구가 너무 아까워서, 다시 R에게 종종 연락해야겠다고 다짐한다.
J로 시작해서 R로 끝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