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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맘 Mar 19. 2022

빵 굽는 밤, 글 쓰는 새벽

빵 굽는 40분 동안, 책상에 앉았다.

열흘 동안 가게 문을 닫고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는다. 작년 가오픈부터 ‘귤철만 지나면 2월은 우리 한 달 동안 방학하자! 겨울방학! 그때까지 조금만 버티자’라는 말로 서로에게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가며 주었지만 결국 우리는 올해 2월, 겨울방학을 갖지 못했다. 자영업 하는 입장에서 다들 그렇겠지만 돈과 직원이 큰 걸림돌이다. 돈은 둘째라치고 그땐 직원이 없었고 지금은 직원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러니 개인 카페, 그중에서도 직원이 없는 곳들이야말로 방학을 가질 수 있겠구나- 하는 현실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한 달을 또 버티고 버티다가 이제야 봄방학이란 명목으로 잠시 쉴 수 있게 됐다.


귤철이 지나고 봄맞이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직원의 병가와 예정된 새로운 직원의 출근,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숫자의 확진자 수까지 여러 상황이 겹쳤다. 이래도 될까? 직원들은 이해해줄까? 인스타그램, 네이버, 전화 음성사서함.. 여러 군데 공지를 올린다 해도 못 보고 찾아오는 손님들은 어쩌나, 당장 수입이 없으면 돈은 어쩌나 냉장고에 우유는, 받아놓은 원두는 어쩌지 등등 끝도 없는 고민이 펼쳐졌지만 우리는 모두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쉬는 동안 마음먹은 건 딱 한 가지, 의식의 흐름대로- (하고 싶다는 것)

우선 늘어지게 잠을 잤다. 자고 싶을 때마다 잤더니 잠자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차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요가나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기에 청소를 했다. 일 년 전 이사 왔을 때부터 해야지 마음먹었던 게 하고 싶다, 해야 되는데..로 바뀔 때까지 하지 못했던 집안일을 조금씩 시작했다. 쓸고 닦고 정리하고 꾸미고, 매일 한 군데씩만. 또 하루 한 끼, 정성 들인 요리를 시작했다. 더 이상 백미쾌속 말고 찹쌀, 현미, 조 듬뿍 넣은 찰진 잡곡으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청소도 하고,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지난 일 년간 갖지 못했던 시간, 이런 일상 말이다. 우리 가족이 가장 행복하다 말하던 시절을 떠올려봤다. 육아 휴직하고 아이와 집안일, 퇴근하고 들어오는 남편, 나의 여유만이 일상일 때가 있었지-  ‘나 지금 너무 좋아’ 하며 남편에게 수시로 말했다. 하지만 안다. 이 또한 길어지고 잦아진다면 소중함 따위는 잊고 익숙해지고 지루해질 거라는 걸, 또 새로운 일을 벌이고 싶어질 거라는 걸 말이다. 이년 전, 궁둥이가 들썩거려 깡통 버스를 계약해버렸을 때처럼 말이다.



썼다 지웠다가 몇 자 못쓰고 빵 굽는 40분이 지나가버렸다. 토핑으로 올린 딸기가 조금 많이 그을었다. 예열 온도가 높다 싶었는데 실수했다. 내일 팔아야 할 빵이었다면 스스로에게 왜 그랬냐며 나 왜 그랬지 하며 질책과 자책을 몽땅 뒤집어쓴 채 잠을 청했겠지만, 오늘은 마음이 편하다. 내일 내가 다 먹지 뭐. 오븐을 켠 김에 다음 메뉴 테스팅까지 해버릴까 하다 오븐을 꺼버렸다. 그리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내일 하지 뭐.

사실 머릿속은 뒤죽박죽이다. 신메뉴 테이스팅, 정원 정비, 온실 정리, 포토존, 청소, 근데 해놓은 건 집 청소뿐이니 너 제정신이냐고 묻다가도 아직은 마음이 편하다. 방학이 삼일 더 남았기에. 이것 또한 ‘내일 하지 뭐!’ 하고 넘겨버릴 수 있으니깐. 거참 참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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