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계주에 출전해야 할 것 같다
지난주에 식탁 위를 정리하다 딸아이의 유치원 일정표를 보았다. 10월 3일 유치원 운동회!
"벌써 운동회 할 때가 되었나?"
매년 이맘때쯤 열리는 유치원 운동회. 벌써 3번째다. 이번이 딸아이의 마지막 유치원 운동회가 되겠지. 마무리를 멋지게 하도록 도와줘야지.
학창 시절의 운동회
학교 다닐 때 운동회를 좋아했다. 특별히 운동을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과 친구들과 운동(게임)을 하는 것이 좋았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선수보다는 관중에 가까웠다. 주연보다는 손뼉 쳐주는 엑스트라였다.
"와~ A형 봤어? 100미터 12 초래"
"3반에 B농구 엄청 잘하더라. 피터팬 같아. 덩크도 한대"
스포츠를 잘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분되고 엔도르핀이 도는 것 같았다. 부러웠다. 하지만 학창 시절의 나는 운동신경 없고 키 작고 뚱뚱한 관중일 뿐이었다.
나도 응원 말고 시합을 뛰어보고 싶었다
나도 플레이어가 되고 싶었다. 허나 실력 없는 자에게 기회는 오지 않았다. 열심히 농구를 한 덕분에 고3 때 반대표 선수가 될 수 있었다. 12년 학창 시절 중 단 한 번의 기회. 스타플레이어가 아니었지만 함성과 주목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짜릿한 것인지 그때 깨달았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여운이 남아서인지 계속해서 운동을 열심히 했다. 농구, 축구, 테니스, 탁구 같은 구기종목을 좋아했다. 태권도, 무에타이, 산타 같은 투기도 배웠다. 혼자 등산을 하거나 러닝도 자주 했다.
나는 전진했고, 친구들은 후진했다
더 이상 나는 키 작고 뚱뚱한 관중이 아니었다. 학창 시절이 지나면 대다수는 술 마시고, 운동을 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살이 찌고 체력이 떨어진다. 타고난 운동신경과 체력으로 운동 잘했던 친구들이 많이 사라진다. 나는 꾸준히 운동을 했다. 그러다 보니 또래에 비해 운동을 잘하는 편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인이 되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또래에서 운동 잘하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직장이나 모임에서 운동할 기회가 생기면 플레이어로 뛰게 되었다.
"와~ 잘 뛴다"
"좀 하는데?"
칭찬을 듣게 되었다. 학창 시절 내내 그토록 갈망하던 칭찬을 30대가 되어서야 들었다. 그 칭찬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예전에 날쌔고, 운동신경 좋던 친구들도 대부분 술과 야근에 찌들고 배 나온 아저씨가 되었다. 더는 날렵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그들을 제칠 수 있게 되었다.(선수 출신 제외하고)
며칠 전 딸아이가 달려와 안기며 말했다.
"아빠, 나 이번에도 계주 선수로 뽑혔어"
"오~ 축하해. 멋지구나"
"응, 나 이를 악물고 달렸어"
"잘했어. 아빠도 올해 또 계주 선수해야겠네"
"응, 아빠는 엄청 빠르니깐.."
출전해야 하는 이유, 이겨야 하는 이유
올해로 3년 연속 계주 선수로 딸과 출전하게 된다. 작년과 재작년에 딸아이가 친구들과 나눈 대화가 나를 불태우게 만들었다.
"우리 아빠가 제일 빨라"
"아니야, 우리 아빠가 더 빨라"
시합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하체운동과 전력질주 연습을 하고 있다. 수시로 머릿속에 바통을 받아서 치고 나가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이게 뭐라고? 사소한 것에 목숨 건 다고 웃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딸아이의 자존심과 오랜만에 불타오를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너를 위해 50m만큼은 '우사인 볼트'처럼 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