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런. 원하는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매장이 문을 열기도 전에 줄을 선다는 그 오픈런! 위스키 오픈런에 관한 뉴스를 자주 접할 수 있는 요즘. 트렌드와 상관없이 구입하고 싶은 위스키를 판매한다는 소식에 오픈런에 동참해 봤다. 야마자키 12년과 히비키 하모니라는 일본 위스키를 사기 위해서였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이마트에서 행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꼭 사러 가야 할까?' '29만 9천 원이나 하는 야마자키 12년을 사는 게 맞을까?' '히비키 하모니는 집에 한 병 있는데 굳이 사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늦은 저녁 아껴마시던 히비키 하모니를 한 잔 따라봤다. '그래! 다시 마셔보고 결정하자!'
마시지 말았어야 했다. 오랜만에 맛본 히비키 하모니는 참 맛있었다. 상큼하고 걸리는 것 하나 없이 부드럽고 과일이나 꽃향기 같은 내음과 적당한 알코올 도수에 마무리까지 상큼한 균형 잡힌 위스키였다. 히비키 하모니 같은 구하기 힘든 위스키는 보통 '시가'가 형성된다. 그런데 13만 9천 원! 이 정도면 무조건 달려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목표는 히비키 하모니! 야마자키 12년 30만 원에서 천 원 빠진 금액이니 산다 하더라도 마실 엄두가 나질 않았다. 또한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어 히비키만 노리고 마트로 향했다. 이마트 오픈 시간이 9시 30분이니 6시에만 가면 살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이날 내가 방문할 매장에 배정된 병수는 야마자키 12년이 6병, 히비키 하모니는 6병이었다. 12번 안에만 들어가면 적어도 히비키 하모니를 살 수 있겠다 싶었고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택시를 타고 가서 줄을 섰다. 인생 처음 오픈런에 동참했지만 결과는 12번! 계산한 대로 적어도 히비키 하모니 한 병은 내 손에 들어올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1인당 종류 상관없이 2병을 살 수 있다는 정책에 내 손에는 일본 위스키가 한 병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날 야마자키와 히비키는 새벽 2시에 와서 줄을 선 5명의 친구들과 어머니와 함께 줄을 선 20대 청년에게 돌아갔다. 이날 제일 억울한 사람은 7번 번호표를 받은 사람이었다.
허탈한 마음에 맥캘란 12년 더블캐스크라도 한 병들고 오려고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딸아이와 먹을 딸기만 한 박스 사서 다시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3시간 정도 추위에 떨면서 기다렸던 건 원하는 위스키를 손에 넣지 못한 헛한 마음에 괜스레 보복 소비라도 하고 싶었지만 들끓는 마음을 잠재우고 이번의 경험을 천천히 복귀해 봤다.
원하는 제품을 구입하지는 못했지만 오픈런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예비군 훈련에 가서 처음 본 사람들과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의 그런 즐거움을 느꼈다. 앞 뒤의 사람들과 좋아하는 술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나름 재미가 있었다. 60대의 아주머니가 아들의 부탁으로 15번째 줄을 서신 것도 놀라웠고 개점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선다는 것도 신기했다. 4~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종종걸음으로 구매줄에 서던 한 남자의 다급한 발걸음과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종종걸음도 인상적이었다. 지나가던 행인 중 한 명이 '무슨 줄이냐?'라고 물었고 '위스키 사기 위해서 줄을 섰다'라고 대답하자 세상 말세라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갈길을 가던 그 모습도 기억에 선하다.
오픈런은 내가 좋아하는 제품을 사기 위해 매장이 문을 열기 전부터 대기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제는 오픈런을 넘어 폐점런(매장이 문을 닫는 순간부터 줄을 서기 시작하는 것), 심지어 2박 3일 정도 텐트를 치고 대기하는 그런 열성을 보이는 경우들도 있다.
명품가방이야 중고로 되팔 수도 있다고 하는데 위스키는 그럴 수 없다. 우리나라는 개인 간의 주류거래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되팔 수도 없는 '술'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는 상황이 위스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기 짝이 없는 그런 행위일 것이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면 그 어떤 제품이라도 내가 사랑하는 것에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소유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가치 있는 일이다.
돈을 어떻게 쓰는가는 내가 그것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가에서 결정하는 것이다. 식당 앞에 줄을 서서 1~2시간을 기다려 밥을 먹기도 하고 한 끼에 수십만 원을 거침없이 지불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서 일 것이다. 명품가방을 소유하고 들고 다니는 것이 가치 있다고 판단된다면 수천만 원도 아낌없이 지불할 수 있다. 위스키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위스키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위스키의 '맛'이 절대 가치가 될 수 있을까?
'맛'과 더불어 다양한 요소를 반영하여 가치를 결정하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맥캘란을 생각해 보면 맛과 가격, 브랜드와 공급량 등이 위스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맥캘란은 '위스키계의 롤스로이스'라고 불린다. 명품의 이미지가 강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위스키이다. 그래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 2019년에만 해도 코스트코에 박스로 쌓여있었다고 한다. 9~10만 원이면 맥캘란 12년 셰리캐스크를 살 수 있었다고 하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도 들려온다. 하지만 지금은 맥캘란 12년 셰리캐스크는 구하기 쉽지 않다. 10만 원 초반에 살려면 오픈런은 필수다. 편하게 구입하려면 적어도 20만 원 정도는 지불해야 한 병 정도 집에 들고 올 수 있다. 맥캘란 12년 더블캐스크는 그래도 구입하기 편하긴 하지만 처음 샀을 때만 해도 8만 9천 원 정도에 구입했는데 그 가격은 이제 보기 힘들다.
위스키 품절과 오픈런의 시작은 맥캘란과 발베니에서 출발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제품은 결국 가격이 오르게 되고 (이건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사람들의 선택지가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마다 품귀현상을 겪으며 점차적으로 사기 힘들어지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맥캘란 12년 셰리캐스크가 엄청 뛰어난 맛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잘 만든 위스키라는 것에 이견은 없다. 하지만 한 병에 20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할, 그런 가치가 있는 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20만 원 정도면 다양한 선택지가 있고 더 뛰어난 맛의 위스키를 구입할 수도 있다. 굳이 맥캘란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내 술잔에 한 병 정도 가지고 있으면 참 좋은 위스키이고 언제든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술이다. 그러니 10만 원 초반대에 판매하는 곳이 있다면 당연히 오픈런을 감수해야 할 것 같다.
일본 위스키를 구입하고 싶어 도전했던 오픈런은 실패했지만 재미있는 경험을 선사했고 나는 더 이상 오픈런을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솔직히 말해서 히비키 하모니가 없다고 하더라도 위스키를 즐기는데 아무런 문제는 없다. 대체할 수 있는 위스키는 참 많다. 그러니 괜히 무리해 가면서, 스트레스받아가면서, 시간과 돈을 써가면서 어렵게 구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즐겁자고 마시는 위스키'아닌가!
위스키를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듯 즐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위스키는 물론 맛있다. 하지만 경쟁까지 해가며 굳이 위스키를 구입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된다. 즐기다 보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위스키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비교하지 말고 경쟁하지 말자! 그저 위스키의 맛을 즐기고 위안을 느껴보자.
아직까지 궁금한 맛이 많다. 아직 마셔보지 못한 브랜드의 위스키도 많고 대만 위스키는 사놓고 오픈하지 않았다. 인도 위스키는 아직 시도해보지도 않았다. 사고 싶은 것은 많고 돈은 부족하다. 그러니 내가 어떤 것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적절하게 돈을 써야 한다. 요즘은 조니워커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이제 슬슬 마무리가 되어 간다. 이제 다음 가치를 찾아 한번 떠나봐야지. 이제는 어디로 가볼까? 어떤 것이 되었든 스트레스받지 않는 항목을 찾아 편안하게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