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야기는 '영화 속 조니워커'다. 조니워커를 주제로 정한 이유는 단순하다. 좋아하는 술이기 때문이다. 또한 올드보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하나씩 모으다 보니 고증이 잘못된 조니워커에 관한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자료를 찾아보게 됐다. 부족한 자료이지만 영화 속 조니워커를 찾아 한번 떠나보자.
반도 - 세상은 멸망해도 조니워커는 남았다
쪼니워커! 블랙!! 좀비로 세상이 망해버렸지만 조니워커는 아직 살아있다.
영화 '반도'에서 서 대위가 숨겨놓고 먹던 조니워커 블랙. 글렌피딕 15년 마지막 잔을 털어먹고 생을 마감하려던 서 대위를 붙잡았던 그 술이 바로 조니워커 블랙라벨이다. 좀비가 창궐하고 4년이 지난 시점에도 조니워커는 어디에선가 나타났다. 전 세계 연간 1억 병을 판매한다고 하니 세상이 멸망해도 조니워커는 남아있지 않을까. 사각병의 아름다움과 24도 기울어진 특색 있는 라벨, 은은한 단맛에 약간의 피트가 매력적인 조니워커 블랙. 좀비가 창궐한다고 해도 조니워커 블랙라벨 한 병이면 잠시나마 행복을 느낄 수 있겠지.
위스키는 최소 알코올도수가 40도이다. 고도수의 술은 미생술이 살 수 없어 상하지 않는다. 직사광선을 피하고 뚜껑이 닫혀 있다면 시간이 얼마가 지났던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슈퍼맨 3편에서 크리스토퍼 리브가 마셨던 조니워커 레드도 오픈하지만 않았다면 40년이 지난 지금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슈퍼맨 3 - 조니워커 레드라벨 마시는 슈퍼맨이라니!
영원한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의 슈퍼맨. 퍼런 쫄쫄이를 입고 심지어 바지 위에 팬티를 걸치고 망토까지 둘렀지만 그 시절 누구 하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은 보자기를 두르고 나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며 슈퍼맨을 외쳐댔다. 하늘을 날고 눈에서는 광선이 나가고 입김으로 호수를 얼려버리고 심지어 지구 자전방향과 반대로 날아 시간여행까지 할 수 있는 초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구인을 위해 올바르게 힘을 사용하는 슈퍼맨의 음주라니 상상이 잘 되지 않지만 슈퍼맨 3편에서 이색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슈퍼맨이 어울리지 않게 바에 가서 술을 마신다. 간마저 강철로 되어 있을 것 같은 슈퍼맨이지만 위스키 한잔에 취해버린 듯 주사를 부리는 모습은 조금 어설프다. 무시무시한 손가락의 힘으로 땅콩을 날려 바에 진열된 술병을 깨트리고 취한 듯 비틀거리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은 모범생이 부모님께 반항하는 듯 어설프다. 이 장면에서 마시는 술이 '조니워커 레드라벨'이다.
조니워커 시리즈 중에서 가장 저렴한 레드라벨은 2~3만 원대에 구할 수 있는 저렴한 위스키다. 니트로 즐기기에는 조금 부족한 위스키라고 할 수도 있다. 온더락이나 하이볼로는 어느 정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슈퍼맨 3편이 개봉한 1983년에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영국의 수상 원스턴 처칠이 사랑한 술이라고 알려진 조니워커 레드라벨은 초창기 고급라인인 블랙라벨과 더불어 블렌디드 위스키를 대표하는 나름의 고급 위스키였다. 하지만 블루라벨 등 다양한 고급 위스키들이 출시되면서 조금씩 내려오게 되었으며 지금은 저렴한 술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80년대의 레드라벨은 지금의 술과는 다른 맛이라고 한다. 병 디자인부터 다른데 특히 조니워커의 상징인 스트라이딩맨이 왼쪽을 (현재는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 향해서 걷고 있는 디자인의 레드라벨은 만난다면 한 병 정도는 구입해서 마셔보는 걸 추천한다.
올드보틀이 현재 위스키와 맛이 차이가 나는 점에 관해서 다양한 의견이 있다. 위스키를 숙성하는 오크통의 수급이나 물과 보리의 맛 차이라는 의견까지 다양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의 조니워커 레드와는 맛이 다르다는 거다.
1908년부터 시작된 '걷는 남자' 스트라이딩맨 로고는 조니워커의 상징과도 같은 그림. 2000년대 이전에는 왼쪽을 향해서 걸었고 현재는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아 오른쪽을 향해 걷고 있다.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왼쪽을 향해 걷고 있는 스트라이딩맨을 보면 살짝 설렌다. 올드보틀은 막연하게 설렌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냥 좋다.
일본에서 직구한 1980년대 조니워커 레드라벨.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더 킹 - 저기... 그거 아닌데
정우성, 조인성 주연의 '더 킹'. 정말 재미있게 본 영화다. 권력을 향한 탐욕과 한 인간의 성장사를 빠른 전개와 화려한 연출로 그려내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하는 '더 킹'. 하지만 이 중에서 위스키와 관련된 고증 오류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덕후들은 이런 걸 참지 못한다.)
조인성의 앞에 놓여 있는 술. 바로 조니워커 블랙라벨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영화의 시대적 배경 1992년이다. 1992년의 조니워커 블랙라벨은 저렇게 생기지 않았다. 앞서 설명했던 스트라이딩맨은 1999년부터 오른쪽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영화 속 조인성이 마시는 조니워커 블랙라벨의 디자인은 2000대 후반에서야 등장한 디자인이다.
1980년대 출시된 조니워커 블랙라벨. 더 킹의 배경인 1992년에는 이런 디자인의 조니워커를 마시지 않았을까?
한 부장에게 한 소리 듣고 자리에 앉아 조니워커 블루라벨을 마시는 조인성. 잠깐! 블루라벨? 이건 아니다. 저 디자인은 2011년 변경된 디자인이다. 90년대의 조니워커 블루라벨의 디자인은 영화 '타짜'에서 볼 수 있다.
타짜
1996년의 조니워커 블루라벨은 저렇게 생겼다. 물론 출시 연도에 따라 조금씩 라벨이나 병의 디자인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지만 약간은 촌스럽게 생긴 저 뭉툭한 모습이 바로 조니워커 블루라벨의 올드보틀이다. 오리지널인지 병만 구해 내용물을 바꾼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타짜는 시대적 배경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마약왕에서도 올드보틀을 볼 수 있는데 뭔가 이상하다.
마약왕 - 아? 병갈이?
송강호 주연의 '마약왕'에 조니워커 올드보틀로 추청 되는 병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것은 영화 소품으로 제작된 병으로 보인다. 병의 모양이 아까 설명한 대로 뭉툭하지 않고 날렵하다. 2000년 들어서 변화된 조니워커의 병 모양이다. 하지만 라벨은 과거의 조니워커 블랙라벨과 같다. 아마 조니워커 신형 병에 스티커를 붙여 만든 소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비용절감 차원에서 효과적인 방법이다. 올드보틀을 구하는 것도 힘들고 비싸기도 한데 그걸 구할 바에야 쉽게 구할 수 있는 병에 라벨만 새로 붙이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적어도 저런 정성을 보이니 말이다.
위스키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니워커는 한 번쯤 마셔보지 않았을까? 올드보틀이든 뉴보틀이든, 레드나 블랙이나. 위스키는 아름답다! 그리고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