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나의 모난 성격을 다 받아주고 자존감을 높여주며 나를 온전히 나로 받아주는 그런 사람이다. 씻을 때 외에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아내에게 잘 못했던 적이 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세 가지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신혼여행에서였다.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체코 프라하였는데 솔직히 무서웠다. 항공권과 숙소만 예약한 상태로 떠나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것부터가 두려웠다. 영어는 할 줄도 모르면서 무슨 용기가 있어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떠났을까. 하지만 '허니문'이지 않는가. 둘의 사랑으로 모든 것이 순탄하게 해결됐다. (난 그렇게 믿고 있다) 프라하는 걸어 다니기만 해도 아름다운 도시였고 낭만이 가득했다.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났고 너무 행복했다. 세상 모두가 우리를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 가지 변수가 있었다. 바로 날씨였다. 우리가 예상한 날씨보다 더 기온이 낮았고 준비한 옷들은 너무 얇았다. 나는 그럭저럭 견딜만했지만 아내가 견디기에는 너무 쌀쌀한 날씨였다. 그래서 옷가게를 들어갔고 아내에게 잘 어울리는 패딩을 하나 찾았다. 185유로, 그때의 환율로 20만 원 정도 됐던 것 같다. 그런데 망설였고 결국 안 사고 돌아섰다. 쌀쌀한 날씨를 서로의 체온에만 의지해서 다녔고 결국 아내는 감기에 걸렸다. 그게 뭐라고 사지 않았을까. 물론 그때는 20만 원이 큰돈이었지만 그래도 샀어야 했다. 10년을 후회할 줄 알았다면 무조건 샀을 텐데.
두 번째는 아내가 임신 중에 있었던 일이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갔고 임신한 아내가 먹고 싶다는 건 다 사주고 싶었다. 하지만 스파게티를 판매하는 판촉원의 권유에는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듣는 아내를 등지고 나는 사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자 등을 돌렸다. 그런데 몇 초 지나지 않아 판촉원이 달려왔고 스파게티 소스와 면 두 봉지를 카트에 밀어 넣었다. 이런! 나는 그 판촉원에게 기분이 상했고 아내가 현명하지 못하게 장을 보는 것 같아 한번 더 기분이 상했다. 결국 아내에게 싫은 소리를 했고 장을 보다 말고 카트를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깟 스파게티 소스가 뭐라고 그렇게 싫은 티를 냈었는지.
그런데 세 번째도 돈과 관련이 있고 가장 후회되는 기억이다. 아내가 출산을 한 날이었다. 분만실을 나와 병실로 올라갔을 때 간호사가 와서 이것저것 알려줬는데 그중에 영양제에 관한 안내도 있었다. 5만 원 또는 10만 원짜리 영양제가 있는데 그중 하나를 맞을지 물어봤다. 나는 단호하게 안 맞겠다고 했다. 나의 단호함에 아내도 뭐라 이야기를 못했던 것 같다. 그때의 경험에 비추어 말하는데 출산한 여성은 무조건 영양제를 맞아야 한다. 아내는 출산으로 약해진 상태로 건조한 병실에서 잠을 잤고 다음날 감기에 걸렸다. 이럴 수가. 또 감기에 걸린 것이다. 산후조리 중에 감기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후회가 폭풍처럼 밀려왔다. 영양제를 맞았어야 했다. 제일 비싸고 좋은 것으로 맞았어야 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감기에 걸렸다면 어쩔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했다.
가끔 아내와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한두 번 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내와 그때 나의 미숙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가 함께 한 추억을 이야기하곤 한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되었지만 만약 아내가 나를 이해해 주고받아주지 않았다면 우리의 결혼 생활은 참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아내가 남편의 취미를 존중해 준다는 것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사무실 책상에 쌓여가는 위스키를 보며 동료들이 가끔 묻곤 한다.
'집에서는 뭐라 안 합니까?'
그럼 나는 당당하게 대답한다.
'우리 아내는 이해해 줍니다.'
생각해 보면 아내는 내가 하는 것을 항상 믿어준다. 남편이 무엇을 하든 믿어주고 지지해 준다. 이런 무한한 신뢰와 인정이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아내는 술을 즐겨 마시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를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위스키를 마시는 남편에게 건강을 해치지 않게 절주 하라는 이야기를 아주 가끔 할 뿐이다.
가끔 저녁 시간에 하이볼 한잔을 준비해서 아내와 마시며 하루의 일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결혼 생활이 길어질수록 아내와의 추억이 더욱 깊어져 행복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깊어지는 위스키처럼 우리의 결혼생활도 더 맛있게 숙성되어 가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