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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술꾼 Mar 02. 2023

위스키 그렇게 마시는거 아니야!

위스키 온더락에 관하여


위스키를 마시는 것과 관련하여 리처드 패터슨은 이렇게 말한다.

바에서 위스키를 주문했는데
얼음을 가득 채워 준다면
바텐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던져버려라!


뛰어난 후각으로 'The Nose'라는 별명을 가진 위스키계의 거장답게 리처드 패터슨은 위스키에 얼음을 가득 채워 마시는 것에 부정적 입장을 가진다. 하지만 독하디 독한 술에 얼음을 넣어 부드럽게 마시는 것에 더 익숙하다.


한 손에 꽉 들어차는 묵직한 잔에 얼음을 넣는다. 그리고 그 위에 위스키를 천천히 부으면 얼음이 살짝 녹으며 물이 생기고 위스키와 만나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일렁이는 모습을 지긋이 바라본다. 편안한 소파에 기대 잔을 천천히 돌리며 잔과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를 즐긴다. 그리고 차가워진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신다.


일반적으로 '양주'를 마시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위스키에 얼음을 넣는 것을 위스키 애호가들은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위스키를 즐기는 방식이 변화된 것일까? 지금부터 위스키 온더락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탈리아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적이 있다. 그것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지난해 8월 로마로 출장을 갔다. 로마의 여름은 정말 무더웠고 시원한 음료 한잔이 절실히 필요했다. 얼음이 가득 들어 있는 아메리카노 한 모금만 마셔도 갈증과 더위가 싹 가실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곳은 이탈리아가 아닌가.  바티칸 광장 근처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며 당연히 '카페'(에스프레소)를 한잔 주문하려 했다. 하지만 함께 간 동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가 당연히 'No'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너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연스레 주문을 받았다. '엉?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된다고? 그럼 나도!'라고 외치고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마실 생각에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커다란 와인잔에 2~3개의 조각 얼음이 이미 다 녹아 간신히 얼음이 들어 있다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그 어디에도 '아이스'는 없었다. 얼음 2~3개면 그저 에스프레소에 물을 조금 더 넣은 것이 아닌가. 에스프레소는 고소하고 향긋하며 깔끔했지만 '아이스'를 넣은 커피는 이도저도 아닌 맛이었다.


로마에서 차가운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는 사케라토(Shakerato)를 추천한다. 사진은 로마 '산 에우스타키오'의 사케라토와 카푸치노.


위스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커피로 서문을 연 것은 음식의 온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찌개나 국밥은 펄펄 끓어야 제맛이다. 용암이 꿈틀거리듯 부글거리는 찌개를 쉽게 식지 않도록 뚝배기에 제공한다. 냉면은 얼음을 갈아 넣어 오장육부마저 얼어붙게 만들어야 맛있다고 말한다. 갓 나온 붕어빵의 따듯함이 겨울의 진정한 맛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전은 부치자마자 먹어야 제맛이라고들 한다.

그렇다. 모든 음식은 가장 맛있는 온도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스키의 적정 온도는 어떨까?


위스키는 상온으로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 겨울철의 온도보다는 조금 높게, 여름철의 온도보다는 조금 낮게, 봄날의 따사로움과 가을철의 풍요로움이 위스키의 적정 온도라고 볼 수 있다. 위스키는 향을 즐기는 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소주와 맥주는 보통 차게 마신다. 차가울수록 풍미는 잃지만 부드럽게 마실 수 있다. 소주와 맥주를 향으로 마시지는 않지 않는가. 물론 상온의 소주를 더 좋아하는 주당들도 있지만 대체로 소주와 맥주는 아주 차갑게 마신다. 부정적인 맛을 줄이고 안주와의 궁합을 최대로 끌어내기 위해서 일 것이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입 안을 말끔히 씻어내는데 차가운 소주나 맥주가 제격이라 볼 수 있다.


위스키는 그 자체만으로 완성된 음료이다. 위스키는 페어링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자신의 곁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아웃사이더인 위스키는 향과 맛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 그렇기에 얼음을 넣거나 너무 뜨거운 온도의 위스키는 추천하지 않는다. 얼음을 넣으면 마시기는 쉬워진다. 하지만 위스키가 가진 풍미는 완전히 죽어버린다. 물론 때로는 그 풍미를 얼음으로 잡음으로 위스키를 더 편하게 마실 수도 있다.



기내에서 제공되는 음료 중 위스키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하늘 위에서 마시는 위스키 한잔이라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그래서 기필코 마시겠다 다짐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10월 미국 출장을 다녀오며 소원을 풀었다. 스튜어디스에게 위스키를 주문했고 그렇게 시바스리갈 12년을 한잔 받았다. 그전에는 마셔보지 않았던 술이었다.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레인 위스키의 역한 맛이 너무 강하게 치고 올라왔다. 기압과 미각의 상관관계를 따져보지 않아도 니트(상온의 위스키)로 마시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얼음을 요청했다. 무조건은 니트로, 상온의 위스키 그대로 즐기는 것이 진정한 애주가라 생각했었기에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얼음을 넣자 시바스리갈 12년은 나름 괜찮은 술로 변했다. 부정적인 맛은 얼음에 갇히고 부드럽고 오크향과 적절한 단맛이 조화를 이뤘다. 온더락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조니워커 골드라벨 리저브도 니트보단 온더락이 더 잘 맞았고 버번의 경우에도 온더락이 더 맛있어지곤 했다.


아! 거참! 먹을 줄 모르네


이런 이야기를 듣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굳이 내가 먹고 싶은데로 먹으면 되지 꼭 사회적 통념을 따라야 할 필요가 있을까? 개인적으로 설렁탕이나 곰탕을 먹을 때 깍두기 국물을 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짜장면은 면치기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냉면 자르듯 가위로 자르거나 이로 툭툭 끊어 먹는다. 전어나 방어 같이 기름이 많은 회를 먹을 때는 간장보다는 막장을 더 선호한다.

먹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취향에 맞는 방법을 찾게 된다. 위스키도 당신이 원하는 데로 마시면 된다. 하지만, 괜찮은 위스키를 만난다면 얼음은 잠시 미뤄두자. 먼저 마셔보고 정 안되면 그때 얼음을 넣으면 된다. 꼰대 같아 보일까 봐, 위스키 한잔 마시는 것에 유난을 떤다고 이야기할까 봐 이번 주제에 관해 쓰는 것이 조금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권해본다.


위스키는 상온으로, 최대한 천천히 충분히 향과 맛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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