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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곰 Sep 03. 2020

타지에 살고서야 비로소 그리워진 맛

전라도 살 적에는 홍어 먹기가 싫었다.

내가 전라도 신안에서 살 무렵이었다. 수도권에 사는 지금도 나는 스스로 전라도 토박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신안에 오래 살았는데, 내가 그 곳에서 살 때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은 회였다. 도시 사람들이 그토록 귀한 생선이라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하는 민어도 여름이면 날이만 날마다 배터지게 먹었고, 도시 사람들에겐 생소할 전어 회는 가끔 된장을 찍어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이렇게 회를 많이 접한 나도 먹기 힘든 생선이 하나 있으니, 바로 전라도 하면 생각나는 생선, 홍어다.


전라도 사람이라고 모두 홍어를 좋아하진 않는다. 본래 전라도에서 잔치집에 홍어가 없으면 먹을 것이 없다고 할 정도지만, 삭힌 홍어에서 나는 역한 암모니아 냄새는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고역이다. 그러나 전라도 산지에서 잡힌 홍어는 그 냄새가 덜한데, 홍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흑산 홍어는 잘 먹을 정도다. 물론 모두가 흑산 홍어를 먹진 못하는데, 값도 값이지만 대부분의 흑산 홍어가 전라남도 이남지역에서 모두 소비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홍어를 좋아하는 전라도 토박이들은 가끔 홍어를 먹으러 휴가를 내고 전라도로 내려가기도 한다.


그것 외에도 내가 홍어를 싫어하는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타지 사람들의 놀림이었다. 타지 사람들 중 몇 악질은 전라도 사람을 으레 홍어라 부르며 멸시했다. 피떡갈비니 뭐니 하는 일부 인간 이하의 작자들이 아니더라도 전라도 사람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멸시해도 되도 되는 대상이라 여겼던 것이다. 나는 그 타지 사람들의 놀림이 죽도록 싫었고, 그 혐오스러운 냄새를, 그러나 기막힌 맛을 가진 생선을 그토록 혐오했던 것이다.


물론 자식이 싫어하더라도 자기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먹이려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할머니는 삭힌 홍어를 먹지 못하는 나에게 삭힌 홍어를 먹이려 부단히 애를 쓰셨는데, 그 노력 중 하나가 바로 홍어 삼합이었다. 흑산 홍어와 가마솥에 푹 삶은 돼지고기 수육, 그리고 집에서 담가 충분히 삭힌 배추김치를 먹는 것이다. 본래 홍어를 먹지 못하는 경상도 출신 사위를 위해 준비하시곤 했는데, 집안에서 유일하게 홍어를 먹지 못하는 나를 위해 만드신 것이었다.


삭힌 냄새가 덜한 흑산도 홍어에 돼지고기, 그리고 푹 삭힌 김치를 같이 먹으니 신기하게도 홍어의 역한 맛이 없어졌다. 오히려 단맛과 미세하게 느껴지는 홍어의 알싸한 맛이 김치, 돼지고기와 어우러져 내 입맛을 돋왔다. 나는 홍어 삼합을 몇점 먹고는 자신감이 생겨 호기롭게도 홍어 회에도 젓가락을 대었는데, 아까의 역한 냄새는 그대로 났지만 신기하게도 홍어 특유의 식감과 독특한 풍미가 이상하게 입맛을 돋우었다. 이후 귀한 생선인 홍어를 다신 먹지 못했지만 아직도 내 혀 끝에는 오돌오돌한 홍어의 식감과 입에서 녹는 돼지고기 수육, 그리고 이를 하나로 묶어주는 묵은지의 눅진한 맛이 감도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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