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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곰 Jan 12. 2019

별 헤는 밤

그대,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도시에 살았을 때, 내가 섬에 살았다고 하면 친구들은 바다 이야기를 종종 꺼내곤 했었다. 바다가 바로 앞에 있으니, 바다는 질리도록 봤을 것이란 말이었다. 친구들은 매일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상당히 부러워했는데, 힘들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 바다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을 것이라며 나를 부러워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친구들의 말에 차마 맞장구를 쳐주지 못했다. 바다를 본다고 해서 마음이 편안해지거나 힐링이 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몇 번 시도해 본 적은 있었지만, 황하와 개펄에서 흘러나온 흙탕물과 여기저기서 버린 해양 쓰레기를 보며 눅눅한 바닷바람을 맞으면 오히려 불쾌해지고 마음이 복잡해지기 일쑤였다. 오히려, 내가 좋아했던 것은 고향의 밤하늘이었다.


달이 없는 깨끗한 겨울밤이면 고향 하늘에는 어김없이 은하수가 흘렀다. 가끔 구름이 조금 끼는 날이라면 친구들은 까치 머리털이 빠졌다고 장난스레 말하곤 했다. 나야 그럴 때마다 무드 없이 저 은하수의 중심이 바로 우리 은하의 중심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훗날 머리가 더 커지고 나서 알아보니 겨울의 은하수는 우리 은하의 바깥쪽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 은하수는 사실 은하 중심을 비추는 여름 은하수보다 못하다. 그럼에도 나는 이상하게 겨울 하늘의 은하수가 제일 풍성하게 보였다.


그런 환경 때문이었을까, 어린 시절 나는 천문학자를 꿈꿨다. 그 시절 나는 칼 세이건, 아이작 아시모프, 미치오 카쿠, 그리고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한 천문학자의 책을 읽으며 별을 보고, 별을 탐구하고, 나사에 들어가 마침내 화성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딛는 인간이 될 것이라 망상하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던 책도 모두 과학에 관한 책이었다. 물론 초등학교 저학년 때 고생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으나, 곧 사막이나 정글 한 가운데에서 삽을 들고 땅을 파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 꿈을 포기하게 되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나는 여전히 천문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중학교에서는 도서 신청이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읽고 싶은 책이 도서관에 없다면 도서관에 들여주는 제도였다. 나는 거기서 우주에 관한 도서를 신청했다. SF 소설 듄은 물론, 미치오 카쿠의 평행우주,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그리고 우주의 오케스트라라는 도서까지. 내가 신청한 도서는 모두 우주 관련 도서였다. 물론 내가 가장 열심히 한 공부도 과학 공부였고, 때문에 나는 과학 점수가 제일 높았다. 물론 수학 점수는 형편없었는데, 아마 중학교 수학에 흥미가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과학선생님께 나중에 천문학자가 될 것이라 했고, 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며 너는 꼭 대단한 천문학자가 될 것이라며 나를 격려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이 대회때문에 잠시 다른 지역으로 갔을 때였다. 그 시간, 나는 선생님을 찾아가 내가 천문학자가 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나에게 근처 섬에 있는 기숙형 고등학교에 들어갈 것을 권했다. 얼마 전 한 학생을 서울대학교에 보낸 학교였다. 고등학교 선생님은 나에게 천문학자를 하려면 이과에 진학해야 하고, 그러려면 여기 섬에 있는 고등학교보다 다른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천문학은 한국에서 밥벌어먹고 살기 힘든 학문이며, 따라서 해외 대학원을 목표로 삼아 해외에서 취직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적어도 서울권 대학교는 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사실이었다. 근처에 있는 학교에는 이과가 없었고, 또 내 진로를 위해서도 그렇게 좋은 학교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그 학교에 입학하기 힘들 것 같아서 안되겠다고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말을 못미더워했다. 비록 고등학교가 완전 평준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 학교의 입학 시험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말하는 순간 교무실 창가에 수레를 끌고 가는 친구들이 보였다. 안에는 낙엽을 가득 싣고 달리고 있었는데, 모두 수레를 붙잡고 즐겁다는 듯 뛰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내가 정말 내 꿈을 쫒아도 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천문학자가 된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천문학자가 되기 위해서 지나야 하는 과정은 너무나도 험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성적이 안 되서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선생님께 말했다.


“네 성적으로 못 갈 정도는 아닐텐데,” 하고 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은 만약 정말 성적이 부족한 것 같다면, 들어갈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선다면 자신이 추천해춘다는 말을 덧붙였다. 만약 추천서가 있다면 성적이 조금 부족해도 들어가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선생님에게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하고는 교실로 돌아왔다. 밖에는 낙엽을 치우는 학생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고, 나는 교실 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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