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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곰 Jun 10. 2023

끝나버린 사랑에 대한
짧은 소고

사람은 누구나 마음 속에 연탄을 가지고 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 안도현


안도현의 그 유명한 시이다. 지금은 연탄을 쓰는 집이 많이 사라졌지만, 내 어릴 적만 했어도 우리 동네에서는 연탄 보일러를 쓰는 집이 상당히 많았다. 몇몇 악동들은 그 연탄재를 차고 놀기도 하였으나, 그 때의 나는 연탄재를 볼 때마다 안도현의 시가 생각나서 함부로 차지 못했다. 몇몇 집은 그런 연탄재를 모아서 마치 비료처럼 밭에 뿌리기도 하였는데, 그 사람들의 말로는 연탄재를 뿌리면 비료로 산성화된 땅이 회복되는데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연탄재는 흙과 다를 바 없어서 지력을 회복하는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민들레를 피운 강아지똥마냥,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고 남은 연탄재도 어딘가에는 쓸모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지금은 우리 동네에서도 연탄을 쓰는 집이 없지만, 가끔 보이는 연탄을 볼 때마다 나는 농사 짓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직접 연탄으로 불을 떼는 광경을 몇번 본 적이 있다. 연탄에는 작은 구멍들이 있는데, 이것을 19공탄이라고 한다. 연탄에 있는 구멍이 19개이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이유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19공탄이 빨갛게 달궈지면서 열이 나기 시작하고, 이내 노란색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그 때 어마어마한 열이 발생하는데, 이 때 위에 고기를 굽기도 하고, 혹은 난방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이내 불의 세기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이내 연탄은 잔열과 함께 하얗게 변한다. 이렇게 되면 연탄을 밖으로 꺼낸 다음 버린다. 이 연탄은 방치하였다가 비료와 섞어서 마당에 세울 화분에 넣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버려버리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연탄재를 비료에 섞어 화분에 넣은 다음 분재를 심으면 그냥 흙을 넣은 것만큼 식물이 잘 자란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속에 연탄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을 하게 되면 연탄에 불이 붙기 시작한다. 그러다 불이 충분히 붙으면 그 연탄은 뜨겁게 타기 시작한다. 19공탄이 노란색으로 변하면서 누군가와 정열적인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누군가를 조건없이 돌봐주기도 하고, 아니면 우정을 쌓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언젠가는 연탄 안에 있는 석탄가루가 모두 타고 19공탄이 모두 식어버려 결국 연탄재만이 남는다. 그러나, 그렇게 타버린 연탄재를 버려야만 할까. 비료와 섞어서 화분에 담으면 마당에 멋진 정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비료를 너무 많이 쓴 땅에 뿌려 지력을 회복시키는데에 쓸 수 있을 것이고, 아니면 눈이 오는 날 집 앞에 뿌려 길이 얼지 않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탄재를 그냥 버리기에는, 연탄재를 쓸 곳이 너무나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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