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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곰 Oct 14. 2015

터키 폭동의 한 가운데에서

이 시위는 지난 10년간의 정치적 상황들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되고 있다

이 글은 유럽 기준시 2013년 6월 2일 오후 5시30분에 Distilled Magazine에서 쓰인 글을 단순 번역한 것임을 밝힙니다. 원글의 저작권은 번역자에게 없으며 이 글을 무단 전재, 배포시 발생하는 문제는 번역자의 책임이 아닙니다.


터키의 한 작은 공원을 위해 시작된 시위는 지난 10년간의 정치적 상황들을 대표하는 것 보다 더욱 많은 의미를 가진 무언가가 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 12시간간 이스탄불과 앙카라의 몇몇 터키 시민의 이야기를 수집했다. 그들은 최근의 터키의 역사 중 가장 불법적인 일 중 하나가 될, 그리고 터키의 분수령이 될 사건을 조명하는데에 도움을 주었다.


2002년, Tyyip Erdogan의 “정의와 발전”(AKP)이 터키를 통치하기 시작한 이래로, 그들은 사회의 거의 모든 측면의 깊은 분열을 이용하여 국가를 통치했다. 국제적인 지원을 통해, 종교 단체와의 영합을 통해, 그리고 약속된 경제 발전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은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주, 수도를 방문하는 관광객의 주머니를 열게 하기 위한 중요하지 않은 계획들은 AKP에 대해 저항하려는 시민 연합체의 모자이크를 보여주었다.


이스탄불의 조그마한 녹지인 Gezi 공원은 탁심 군사병영과 똑같이 생긴 쇼핑몰로 개발될 예정이었다. 운동가들은 이를 알게 된 이후 부지를 점령한 뒤 #occupygeziparki를 트위터의 트렌딩 스폿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경찰들의 대응은 폭력적이었다.; 시위대들의 텐트를 불태우고, 최루탄을 발사하고, 진압용 고무탄을 발사하고, 물대포까지 사용했던 것이다. 이후, 비폭력 시위는 폭력 시위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시위의 확대

국가의 폭력행위는 국가가 이 일을 완전히 처리했기 때문에 완전히 은폐되었을것으로 생각되어져 왔었다. 어찌되었던, Gezi는 비교적 작고 조그만한 공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시위는 24시간 뒤, “Çarşı”라는 베식타쉬 축구 팀의 광신자들로 가득 찬 버스의 도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은 평화적으로 공원을 지키는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해서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경찰에 대항했다. 현재, Gezi 공원 뿐만 아니라, 탁심 광장과 Istiklal 에비뉴 또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에 대한 반대자로 들끓고 있다. 약 수만명의 시위자들은 반대자들의 수를 늘리기 위해서 아시아에서부터 유럽까지 보스푸러스를 건너서 행진하고 있다.


탁심 광장은 폭력 시위의 장이었으며, 또한 1969년과 1977년 좌우간의 충돌이 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이제는 터키 역사상 처음으로 좌우가 나란히 서 있다. 터키의 축구팀을 응원하는 사람들로 유명하거나, 혹은 탁심에서 서로를 죽이는 일로 악명높은 축구 팬들조차 여기에 합류했다. 앙카라 역시, 우리의 Guvenpark의 Kizilay지역 정보원의 보도에 의하면, 모든 방면의 정치적 활동가들이 서로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한다. 이슬람주의자들과 우파, 우파당(Right-Wing National Movement Party/CKMP), 그리고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모두 함께 시위에 참여했다.


이스탄불로 돌아가서, 쿠르드인 영화 감독이자 평화민주당 정치인인 Sırrı Süreyya Önder 역시 시위대에 합류했다. BDP 입당 전 무소속으로 당선된 그는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물론 이 말은 CHP와 MHP와 같은 더 큰 반대파 정당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시위자들의 눈에는, 누군가의 말마따나 “그들은 탁심에 표를 위해서 왔지, 변화를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쿠르드인 영화 감독이자 평화민주당 정치인인 Sırrı Süreyya Önder 역시 시위대에 합류했다. @Distilled Magazine.

경찰이 공원을 오늘 오후에 정리하려던 것은 실패했지만, 결국 강제적으로 시위대를 진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심 부근의 응급실은 전면 가동중이며, 근방의 사업체들이 시위대들을 돕기 위해서 발벗고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은 아직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언급했던 한 시위대는 탁심 광장의 나라마 호텔에 있었는데, 이 호텔은 방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부상자와 최루탄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또 다른 정보 공급원에 따르자면 힐톤, 컨티넨털, 그리고 디반 호텔 또한 나라마 호텔과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앙카라에서는 아직도 심각한 폭력 행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경찰이 군중에 헬리콥터로 에이전트 오렌지를 분사할 때 심하게 기침과 구토를 하던 한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 남자의 친구와 동거자들은 어깨에 골절상을 당했다고 한다. 그는 또한 한 남자가 TOMA라 불리는 대(對)폭동 탱크에 치여 사망했던 사건의 목격자이기도 했다.



다른 지원자들

군대는 터키 정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전통적으로, 터키 사회와 군대는 정부가 신성 불가침의 세속화에 위협을 가하지는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암묵적으로 좋지 않은 협정을 맺어 왔다. 그러나 최근 십 년간, 군대는 전례없이 AKP당에 복종하기 시작했다.(주: 에르도간은 군부에 대해 대대적으로 숙청을 가했다. 쿠데타를 막으려는 공산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지난 여러날 동안, 그들은 조용하게 시위자들을 지원했다. 그들은 군사 구역을 수송을 위해 경찰들이 사용하는것을 거부했다. 이스탄불의 군사 병원은 경찰관을 치료하는것을 거부했으며, 대신 반체제 인사(즉, 시위대)에게 가스 마스크를 지급했다. 군인과 경찰관 사이의 이러한 변화로 인하여, 현재 두 무장 세력 사이의 관계는 얼어붙었다. 아래의 대화록의 일부를 보도록 하자.


경찰관 : 다음번엔, 가스 폭탄을 군사 지역에 투하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군인 : 만약 당신들이 그렇게 하다면, 우리 역시 무언가 ‘던질 것(주: 수류탄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을 찾아야 할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눈을 떼선 안될 또 다른 중요한 인자는 터키의 미디어이다. IPI(International Press Institute/국제 언론 기구)에 의하면, 터키는 이란이나, 에리트리아, 중국, 혹은 이란보다도 수감되어있는 기자들이 더욱 많다고 전해진다. 엠네스티(국제 사면 위원회)는 정부의 반-테러법에 의거한 테러리즘의 폭넓은 정의로 인해서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고 추측한다. 이것은 왜 제보자들이 대부분 익명으로 말하기를 원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경찰은 최루 가스를 사용하는 등, 시위를 강도 높게 진압하고 있다.


이것은 왜 Canli TV만이 이번 사태에 대한 모든 것을 보도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해준다. 다른 미디어들은 폭력 사태의 전부를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경찰들이 최종적으로 탁심 거주자들에 대한 압력을 멈추고 폭력 행사를 중지하기 시작했을 때 취재가 시작되었는데, 그 시점에서, 사실 그들(시위대들)은 그들 스스로가 경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견뎌낸 것을 기념하는 중이었지만, 터키의 언론들은 마치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 같은 군중들의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주류 미디어가 시위대의 목소리에 눈을 감고 있을 때, 에르도간 수상은 경찰의 최루 가스 사용과 같은 과잉 진압에서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엠네스티가 이러한 갈등을 즉각적으로 멈추고, 평화적인 시위자들에 대한 인권 침해를 즉각적으로 멈추라 명령했을 때와 국제적으로 받을 비난에 대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르도간의 주장은 국내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했다.


그는 또한 점점 시위의 기원이 소외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오토만 병영의 건설은 강행될 것이며, 우리가 여러곳에 심은 나무를 대신하여 이 나무들이 베이게 될 것.”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오늘 밤, 많은 시위 참여자들은 잠자리에 들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들은 지난 밤 이스탄불에서 벌어졌던 격렬한 싸움처럼 탁심에서 짓고 있는 벽돌 장벽과 베식타스의 군중 제어 펜싱을 지킬 것이다. 이스탄불의 여러 사람들은 비록 지금은 그들이 그곳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물러난것처럼 보이지만, 탁심을 탈환하려는 경찰에게 있어서 이 장소가 가장 유리한 전략적 위치이며, 따라서 경찰은 그 곳을 계속 공략할것이라 예상한다.


많은 사람들은 다음에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터키의 무수한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그리고 윤리적, 그리고 축구 팬 클럽 파벌들은 역사상 한번도 연합한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이는 여러가지 파벌이 오늘날의 분열된 터키 사회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증명될 수 있다. 그들은 당장에라도 통일된 국가라는 얇은 베일 안에서 폭발할 것만 같은 여러 분열 사이의 평화에서 ‘힘’의 깊은 의미를 찾고 있다. 그들은 함께 노력할 뿐만 아니라, 시위가 평화적으로 보이도록 시위대가 경찰에게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지금까지는.

시위의 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여러가지 결속된 이벤트들은-곧 뉴욕의 Zuccotti 공원에서 열릴 시위를 포함하여-전 세계에 걸쳐 계획되고 있다. – 원래 시위가 열렸던 곳 또한 포함해서. 그들은 정부가 이 이벤트로부터 압력을 느끼기를 소망한다. 그 시위가 이전 선거에서처럼 전 세계적인 터키 정부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로 이어질지, 아니면 국제 사회의 터키에 대한 압박을 더욱 증가시킬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리고 세계가 지켜볼 것이다. 터키 공화국의 젊은 시민이 말했듯이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이제 이것은 더이상 고작 나무 하나에 관한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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