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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진권 Apr 10. 2023

고대의 우주 4: 두 개의 세계

지금까지 우리는 고대인들이 생각한 우주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과학이란 학문이 탄생하기 훨씬 이전 시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유의하세요. 그럼에도 우리의 선조들은 과학의 바탕이 될 많은 기반을 다져놓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주’라는 일종의 장소에 대한 관념을 갖게 된 것이 큰 진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전제가 있어야 우주에 대한 탐구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전 세계의 모든 문화권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신화’의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의 삶은 종교와 떼놓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연 현상을 신격화하기를 즐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인의 우주에 대한 설명은 한편에는 ‘자연에 대한 관찰’이 놓여있고 다른 편에는 ‘신들의 세계’에 대한 생각이 놓이게 됩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 사람들은 우주를 ‘물레 비유하기를 즐겼습니다. 플라톤은 <국가>라는 책에서  비유를 통해서 우주의 원리를 문학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물레는 솜이나  등의 섬유를 자아서 실로 만드는 기구를 말하지요. 물레에는  바퀴가 달려있고 여기에 재료를 감습니다. 그것을 다른 쪽에 끝에 달려있는 있는 북에 감으면 실뭉치가 됩니다. 여기서 실뭉치가 바로 우주입니다. 핵심은 누가  물레를 움직이느냐 입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인물은 운명의 여신들(아낭케)입니다. 그러니까 운명, 또는 질서에 따라서 우주가 생성되었음을 은유하는 것이지요.


이런 신화적 사고 방식과 천동설 체계는 잘 맞았습니다. 신을 믿고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세계관에서는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이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천동설의 우주 구조는 이런 믿음을 아주 잘 뒷받침합니다. 앞서 우리가 살펴본대로 우주의 중심에 있는 지구가 있지요. 여기를 인간과 그 밖의 동식물들이 거주하는 ‘지상계’로 보는 겁니다. 바깥의 태양이 뜨고 지고 별들이 운행하는 곳은 ‘천상계’입니다. 여기서 하나 더 추가하면 땅 밑의 영역을 ‘지옥’으로 보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천동설은 지상계(인간의 영역)와 천상계(신들의 영역)을 구분해준다는 점에서 당시의 사고 방식과 잘 일치합니다.


그런데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이전에 제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을 ‘상식’에 기반했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요. 고대의 과학은 일반적으로 그랬습니다. 그 시절의 과학은 인간의 직관이나 일상적인 관찰에 기초했는데요.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었죠. 지금처럼 인공위성을 띄우거나 현미경 같은 정밀 기구가 없던 시절이니까요. 과학 활동은 모두 인간의 눈과 손으로 이뤄지던 시절이죠. 그러다보니 세계가 둘로 나누어졌다고 보는게 과학적으로도 당연해 보였던 겁니다. 


아리스토렐레스를 위시한 당시 과학자들의 눈으로 보기에 지상계와 천상계,  두 세계에서 발생하는 운동은 근본적으로 달라 보였습니다. 천상계에 있는 별들은 정해진 궤도를 따라 영원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반대로 지상계에 있는 던져진 돌덩어리는 직선운동을 하다가 언젠가는 멈춥니다. 영원한 운동과 유한한 운동. 둘은 본질적으로 달라 보였지요. 그래서 구성 물질 또한 다르다고 보았습니다. 지상계는 4원소, 천상계는 에테르로. 여기서 사소하지만 중요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는 합니다. 지상계와 천상계가 그렇게 부분된다면 경계는 어디일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달궤도를 기준으로 두 세계를 나눠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유에 대해서는 답을 못했습니다. 고대인이 풀지 못한 수수께끼였지요.


그럼에도 두 개의 세계라는 시각은 당시 과학의 수준에서는 너무나 명백해 보였습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세상을 보는 조상들의 시각이 일상적인 생활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지요. 유럽이 그리스/로마 문명에서 중세로 넘어가면서 이 생각은 더 강화됩니다. 서양의 중세가 기독교 중심의 문명이었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모두 아실겁니다. 초기 기독교는 교리가 완성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흔히 교부로 불리는 학자들이 그리스 학문을 도입해서 기독교 신학을 발전시킵니다. 여기서 중심이 된 것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었습니다. 천동설 체계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천국과 지상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했지요. 기독교가 말하는 하늘 나라는 말 그대로 하늘 너머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중세 기독교와 천동설의 결합은 거의 완벽했습니다. 중세는 매우 긴 기간이지요. 1000년이 넘습니다. 이 긴 기간 동안 천동설이 유지되었다는 사실은 그것이 얼마나 뛰어난 이론이었는지 반증합니다. 천동설은 단지 과학 이론이 아니었습니다. 천동설은 철학, 윤리, 정치, 신학 등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모든 것의 이론’이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어떤 곳인지 설명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규정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선조들의 삶과 문명의 기반이었습니다.  그토록 많은 것을 설명하면서도 고도로 일관된 이론 틀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천동설은 현대 과학도 감히 넘보지 못할 만큼 대단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동설 체계의 정확도는 현대 과학으로 계산한 것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지금도 시간을 맞추고 달력을 만드는데 천동설을 사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천동설은 거의 완벽한 이론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연 세계의 합리성과 질서를 포착하려는 우리 조상들의 오랜 노력이 이룩한 인류의 개가입니다. 그러나 “거의”라고 제가 언급한 것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그 안에는 여전히 인간중심적인 한계 요소가 있었습니다. 이 한계 너머를 몇몇 선구자들이 넘보기 시작하자 곧 완벽해 보였던 우주론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과학혁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과학혁명에 의해 현대적인 과학이 탄생하자 우리 인류의 모든 것을 바꿔놓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대항해시대와 르네상스, 산업혁명을 거치는 인류 역사의 거대한 변화와 함께 펼쳐질 것입니다. 과학은 그 중대한 변화의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그림 7: 신이 다스리는 천동설의 우주. 신화 속에서 살던 고대인에게 그것은 거의 완벽한 이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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