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의 사과’.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죠. 뉴턴의 천재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고 뉴턴의 위인전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이죠. 어떤 내용이죠? 뉴턴이 어린 시절에 집 정원에 있는 사과나무 밑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걸 봤다는 거죠. 그걸 보고 만유인력, 즉 보편중력(universal gravity)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런 스토리죠. 이 이야기가 얼마나 유명한지 뉴턴의 사과나무가 한국에도 여럿 있습니다. 뉴턴의 생가에 가보면 그때 그 사과나무의 후손이 지금도 살고 있어요. 한국에 있는 뉴턴의 사과나무는 그 나무의 후손들을 얻어다 심어 놓은 것이죠.
이 사과나무를 보고 뉴턴처럼 훌륭한 과학자가 돼라, 그런 의도로 누군가 심으셨겠죠? ^^;; 그런데 뉴턴 연구자들은 대부분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이유가 여럿 있는데요. 우선 이 사과 이야기는 뉴턴의 주치의이자 친구였던 스타클리라는 분이 쓴 전기에 처음 등장합니다. 뉴턴의 말년에 진료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했던 내용을 기록해 두었던 건데요. 이 전기는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다가 아주 나중에, 200년 정도 뒤에 출판됩니다. 그래서 뉴턴의 사과 이야기는 최근에 알려진 겁니다. 그전에는 어디에도 언급된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의문은 이 중요한 이야기를 뉴턴은 왜 평생 한 번도 말하지 않다가 70대가 되어서야 말씀을 하셨느냐 하는 겁니다. 뉴턴은 겸손한 사람이 아니었고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일화인데 왜 안 했을까? 더군다나 뉴턴은 로버트 훅과 만유인력을 누가 먼저 발견했는지를 놓고 싸움을 벌인 적도 있습니다. 사과 일화는 뉴턴에게 유리한 증거일 수 있는데 말을 안 한 것은 이상하죠. 아무튼 여러 이유로 뉴턴의 생애를 연구하는 분들은 사과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사실 이론적으로 훨씬 중요한 것은 사과가 아니라 ‘달’입니다. <프린키피아>에도 당연히 사과는 등장하지 않구요.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풀어내는데 달을 예로 들어 설명을 하지요. 프린키피아에서 뉴턴이 풀어낸 진정 중요한 질문은, 제가 약간 각색을 해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 입니다.
“(사과는 떨어지는데) 달은 왜 안 떨어지는가?”
자, 잠시 시간을 드릴 테니 우리도 뉴턴으로 빙의(?)해서 이 문제에 어떻게 답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까요? 뉴턴처럼 생각해 보기. 어떻습니까? ^^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떠올랐나요? 생각해 보면 이 질문에 대해 수많은 답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다양한 답이 나왔었고요. 예를 들어, 그리스인들은 달과 같은 천체들이 천구의 벽에 붙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천구란 유리로 만든 공을 상상해 보면 되는데, 이 공 가운데에 지구가 들어가 있는 거죠. 별들은 이 유리 공의 벽에 붙어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유리에 붙어있으니까 안 떨어지죠. 또 유리공이 회전하기 때문에 별들이 도는 거라고 생각했죠. 이것도 가능한 하나의 설명 방식이죠. 물론 실제로 천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틀린 걸로 밝혀진 거지만요.
그런데 이 대목에서 뉴턴은 정말 놀라운 답을 합니다. 이건 정말로 전율이 느껴지는 엄청난 사상의 도약인데요. 차차 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여러분도 왜 이게 소름 돋는지 알게 되실 겁니다. 일단 뉴턴의 답부터 알아보죠. 뉴턴의 놀라운 답은 “달도 실제로 떨어진다”입니다. 지금 여러분 중에 그게 뭔 소리야 하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요^^. 달은 하늘에 여전히 떠있잖아요? 그런데 떨어진다는데 대체 뭔 소리냐 하시겠지만, 제가 설명을 드려볼게요.
뉴턴이 이 생각을 떠올리게 된 아주 유명한 ‘사고실험’이 있습니다.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란 실제로 실험을 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상황을 만들어서 시험해 보는 것을 말합니다. 과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강력한 무기죠. 많은 천재적인 생각들이 이 방법으로 만들어졌는데요. 배워두면 여러분도 얼마든지 다른데 응용할 수 있죠. 여기서 뉴턴의 사고실험은 대포로 포탄을 쏘면 어떻게 될까를 상상해 본 겁니다. 그림을 볼까요? 여기 둥근 지구에 대포를 놓고 지면에 평행하게 포탄을 발사합니다. 그러면 포탄은 어떻게 날아갈까요? 일반적인 경우 날아가다가 중력에 의해서 점점 아래로 떨어지겠죠. 그래서 어느 정도 날다가 땅에 떨어지게 될 거라고 예상할 수 있죠. 그런데 여기서 뉴턴이 스스로 질문한 것이 “포탄이 더 빠르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입니다. 더 빠르면 어떻게 될까요? 네 여러분이 예상하셨듯이 더 멀리 가서 떨어지겠죠. 자, 그러면 계속 속도를 늘려봅시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포탄은 더 멀리까지 날아갑니다. 그에 따라서 포탄이 그리는 궤적도 점점 길어지겠죠. 그런데 계속 늘어나다 보면 어느 시점에 가면 지구를 한 바퀴 돌만큼 길어지게 될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뉴턴은 여기가 공기의 마찰이 없는 우주 공간이라고 상상해 보자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공기 저항이 있다면 포탄은 마찰 때문에 점점 속도가 느려져서 땅에 떨어지게 되겠죠. 그러나 속도가 유지된다면 포탄은 지구를 계속 돌게 될 겁니다. 즉, 궤도 운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궤도를 돌게 된 포탄의 상태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해보죠. 그림에서 지구를 도는 포탄의 운동은 두 개의 힘이 합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포탄의 관성입니다. 뉴턴역학의 1법칙이죠? 한번 운동한 물체는 다른 관여가 없다면 계속 움직인다는 거죠. 그래서 포탄은 지구 중심에 대해 90도 각도의 방향으로 멀어지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째 힘인 중력이 작동합니다. 중력은 지구 방향으로 포탄을 끌어당깁니다. 이 두 힘이 합쳐지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만약 포탄의 관성이 중력보다 많이 크다면 포탄은 지구 밖으로 멀리 날아갈 겁니다. 반대로 중력이 더 강하다면 지구 쪽으로 점점 당겨져서 땅에 떨어지게 될 겁니다. 그런데 두 힘의 균형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면? 이 경우에는 포탄은 지구 궤도를 계속 돌게 됩니다.
뉴턴의 이야기는 지구를 도는 달의 궤도 또한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뉴턴 역학에서 달뿐만 아니라 다른 천체들의 궤도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설명됩니다. 앞서 우리는 프린키피아의 계기가 되었던 헬리와 뉴턴의 대화를 살펴봤지요? 헬리의 질문은 궤도가 왜 타원이냐 하는 것이었죠. 관성력과 중력의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최종적인 운동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보면 궤도가 타원이 된다는 것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뉴턴은 헬리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결과는 케플러의 법칙이 성립하는 이유도 설명한 것입니다. 케플러는 궤도가 타원이란 사실을 발견했지만 이유는 찾지 못했다고 이야기했었죠. 케플러는 끝내 이유를 찾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마침내 뉴턴이 그 비밀을 찾아낸 것입니다. 행성의 궤도가 타원인 이유가 드디어 밝혀진 것이지요.
(이 부분은 좀 더 과학에 관심이 많은 분만 보시기 바랍니다. 타원 궤도에 대한 설명은 지나친 복잡성을 피하기 위해 많은 부분을 간소화했습니다. 사실 수학적으로 타원궤도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쌍곡선이나 포물선, 심지어 원궤도도 가능합니다. 따라서 엄밀하게 설명하면 가능한 많은 궤도 중에서 타원 궤도가 가장 많다, 즉 타원 궤도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물론 뉴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풀이는 교양 수업의 범위를 벗어납니다. 이에 대한 매우 훌륭한 강의가 있습니다. 더 알고 싶은 분은 참고하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xdIjYBtnvZU&t=1s )
자 그렇다면 이제 앞의 질문 “달은 왜 안 떨어지는가?” 로 돌아가 봅시다. 뉴턴의 답은 달도 지구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했었지요? 그 대답의 의미를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지구로 떨어진다는 말의 뜻은 중력에 의해서 달이 지구 쪽으로 당겨지고 있다는 겁니다. 다만 지구에서 멀어지려는 속도(관성에 의한)와 떨어지는 속도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궤도를 도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달 또한 지구로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뉴턴은 중대한 문제를 풀어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궤도문제를 풀어낸 것 이상의 거대한 사상의 도약이 숨어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한 이론의 탄생 수준을 넘어서서 인류의 우주관에 크나큰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다만 지금은 시간이 다 되었으니 뉴턴 본인조차도 예견하지 못했던 그 엄청난 변화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