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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진권 Jan 18. 2021

고대의 우주 1: "모든 사람은 알기를 원한다"

자 그럼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합시다. 밤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 별자리에 얽힌 아름다운 전설과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 잘 이해가 가지 않은 점은 하늘을 아무리 봐도 책에 나오는 페가수스나 황소 같은 그림은 하늘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별자리를 잘 찾는 친구가 부러웠던 적도 있지요.


그림1: 밤하늘에는 그림과 같은 별자리가 실제로는 없다. 별자리는 인간의 상상력의 소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수많은 별자리를 구분하고 그에 맞는 이야기들을 만들어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흥미로운 측면은 그것이 일종의 “설명”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매년 칠월칠석 즈음에 견우성과 직녀성이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만난다는 “견우와 직녀” 이야기는 은하수 사이에 있는 별의 위치를  참으로 로맨틱하게 설명해주고 있지요.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그 이야기들이 사실이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그 이야기들이 자연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나름의 방식으로 “설명”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 봅시다.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단순한 믿음을 가졌고 그를 통해서 여러 자연현상을 설명했던 걸로 보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믿음들의 수가 많아졌고 나중에 신화의 형태로 체계화되었을 것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문화권은 각자 나름의 신화를 발전시켰습니다. 우리는 간략히 신화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전에 한 질문을 마음에 품고 뒤의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이 질문은 이 강의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 인류는 왜 설명하려고 했을까?”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사람을 괴롭히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잠깐만 이따가 얘기해줄게”하고 이야기를 멈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지요. 그런 우리의 정신적 특성을 가장 잘 이용하는 것이 방송 드라마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드라마는 늘 궁금한 시점에 끝을 내면서 "다음 시간에" 이어진다는 말을 덧붙이지요 ^^;;


어쨌든 우리 인간은 궁금한 것을 못 참는다는 겁니다. 얼핏 보기에 당연해 보이지만 자연계로 시야를 넓혀보면 그것은 매우 특별한 성격입니다. 다른 동물들도 호기심이 많지요.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동물들도 새로운 것을 보면 냄새 맡고 살펴봅니다. 그런데 “설명”을 하지는 않지요. 설명을 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모종의 “이론”을 만들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설명을 듣고 또 설명을 하기를 좋아합니다. 왜 그럴까요? 진화론을 통해서 약간의 가설을 세워볼 수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한참 뒤에나 나눌 수 있을 것 같군요.


인간의 이 특성이야말로 인류를 지구의 지배적 동물의 위치로 올려놓은 열쇠입니다. 그 성격을 가장 정확하게 규정한 사람은 다음에 우리가 다루게 될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그의 위대한 책, <형이상학>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은 알기를 원한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에 대한 정의입니다. 인간의 본성을 앎에 대한 갈망으로 정의했던 것이죠. 저는 인간의 특성에 대한 이보다 아름다운 규정을 알지 못합니다. 



  

그림2: 고대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과학자, 아리스토텔레스. 그는 다음 시간의 주인공입니다.


그렇다면 알기를 원했던 우리의 선조는 어떤 앎을 얻어냈을까요? 신화를 통해서 우리는 그 내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분명 우리의 조상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야기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문자로 기록된 것들만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신화는 가장 먼저 문자가 발명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것입니다.


메소포타미아라는 명칭은 “두 강의 사이”란 뜻입니다. 두 강(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은 이 지역의 토지를 비옥하게 했고 최초로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은 기원전 4천 년경부터 번영했습니다.


  

그림3: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그들의 쐐기문자


메소포타미아의 신화를 보면 일반적인 신화의 전형이 이미 성립되어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하늘의 신 아누(Anu)가 물의 신 남무(Nammu)와 땅의 신 키(Ki)와 결혼했다고 믿었습니다. 이 가족은 지혜의 신 엔키(Enki), 폭풍의 신 엔릴(Enlil) 등의 자손을 낳고 다시 신들끼리 결혼해서 신이 태어나는 식으로 계보가 만들어집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신들의 위계가 있고 그 위계가 도시의 위상과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즉, 도시마다 수호신이 있었고 강력한 도시의 수호신이 역시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큰 도시의 신들이 7개의 주신을 구성했지요. 그리고 50위까지의 아눈나(Anunna)만 신들의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고 나머지 하위 신인 이기기(Igigi)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보면 강력한 중앙집권제 국가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인간의 탄생입니다. 신화에 따르면 아직 인간이 존재하기 전, 범람하는 강을 정비하는 고된 일은 지위가 낮은 신들이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이 너무 힘들어 파업(?)에 돌입하지요. 고위 신들은 파업의 주동자인 웨윌라(Awila)를 죽여 대신 노동을 할 생명체를 만듭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재미있게도 이야기 속의 인간은 로봇(Robot)이란 단어의 유래와 유사합니다.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Karel Čapek)는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습니다. 이 말은 체코어로 노동을 뜻하는 'robota’에서 왔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재미있지요.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신들의 노동을 대체하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고, 지금 우리는 노동을 대신해 줄 로봇을 만들고 있으니까요. 


다른 지역의 신화에도 마찬가지로 세상에 대한 설명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보통 그곳에서 중요한 대상이 천지창조의 배경이 되는데, 나일강에 의존하는 이집트의 경우 세상이 나일 강에서 태어납니다. 이집트 신화에서 세상이 생기기 전에 혼돈 자체인 누(나일강)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벤-벤(Ben-Ben)이라는 언덕이 솟아났고 거기서 모든 것을 의미하는 아툼이라는 신이 태어납니다. 아툼은 뒤에 태양신 라가 됩니다. 라는 스스로 많은 신들을 창조하는데 그의 기침에서 공기의 신인 슈와 습기의 신인 테프누트가 태어납니다. 이들은 결혼하여 하늘의 신인 누트와 땅의 신 게브를 낳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집트인이 생각한 세상의 구조가 완성됩니다.



그림4: 이집트 신화의 세상


그림을 보면 이집트 인들이 생각한 세상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에 하늘(누트)가 있고 아래에 땅(게브)이 있습니다. 이 사이에 공기(슈)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어 인간은 하늘에 깔리지 않고 살 수가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그 외에도 주식인 옥수수에서 인간이 창조되는 마야의 신화, 세상이 멸망으로 끝나는 북유럽의 신화 등 재미있는 많은 신화가 있습니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창세 신화는 기독교 계통의 이야기들입니다. 다른 신화와 달리 기독교의 신인 여호와는 세상을 말(Logos)로 창조한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 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 1:3)”와 같이 성경에서 신이 말하면 그에 따라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논리(Logic)의 어원이기도 한 “말”(로고스)는 단순히 이야기가 아니라 명령이나 법칙의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이와 같은 생각은 그리스 지역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훗날 과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다만 이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도록 하지요.


서양을 살펴봤으니 동양도 봐야겠지요? 중국의 대표적인 창세 신화는 반고 신화입니다.  이 이야기는 옛날에 반고라는 거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반고는 1만 8천 년 동안 알 속에서 잠자고 있었는데 어떤 연유인지 알이 깨지고 맙니다. 알 속에 있던 가벼운 기운은 위로 솟고 무거운 기운은 가라앉아서 각각 하늘과 땅이 됩니다. 그런데 하늘과 땅이 다시 붙으려고 하자 반고가 받치고 서서 다시 둘이 합쳐져 혼돈이 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렇게 1만 8천 년이 지나자 하늘과 땅이 완전히 분리됩니다. 하지만 반고는 힘이 다해 죽고 맙니다. 그러자 그의 숨결이 바람이 되고 목소리가 천둥이 되고 몸은 산이, 피는 강물이 되었습니다. 반고의 고귀한 희생 덕분에 세상이 생겨난 것이지요. 참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신화가 있는데 대표적인 창세 신화로 마고 신화가 있습니다. 이 신화는 반고 신화에 영향을 받은 걸로 보이는데, 흥미롭게도 한국에서는 거인이 여성, 특히 할머니로 변형되었습니다. 그것은 모계사회의 영향으로 추측됩니다. 전국에 다양한 버전의 마고 신화가 구전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통일된 내용이 없고 지역마다 특색이 있습니다. 대부분 거인의 오줌이 강이 되거나 먹다 버린 산이 한라산이 되는 등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관련해서 지리산의 노도단이 마고에게 제사를 지내던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 지금까지 다양한 신화들을 살펴봤는데 각각 나름대로 세상과 자연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지요? 물론 신화의 내용은 구체적이지 않고 비유적입니다. 게다가 내부에 모순되는 내용이 있거나 지금 기준에서는 비윤리적인 내용(외도, 살인 등)을 담고 있는 등 신화를 합리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발전할 지식에 중대한 기여를 했음이 분명합니다. 저는 그것이 ‘우주’라는 관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이 약간 어렵지요? 약간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아주 옛날, 아직도 석기를 쓰던 시대, 한 가족이 모닥불에 둘러앉아 하늘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아이가 아버지에게 하늘에 있는 달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아버지도 잘 몰랐겠죠? 그래서 달에 사는 토끼 이야기를 지어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아이들은 다른 아이에게도 들려주고 이야기가 퍼져나갑니다. 그러다 보니, 달에 대한 궁금증도 생기고 그 이야기가 정말이냐고 묻는 사람도 생깁니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더 잘 알고자 하는 사람도 생기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이야기가 신화로 발전하면서 차차 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와 세상의 창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선조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우주”에 대한 관념을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림5: 우리의 선조들이 이야기를 나누던 풍경은 이렇지 않았을까요? ^^


이것이 신화의 중요한 기여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어떤 장소에 대한 생각. 깊이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을 꼭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우주를 몰라도 우리가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는 것처럼요.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호기심을 갖고 태어났고 우주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이야기로 설명했고 그것이 신화로 체계화되면서 우주라는 관념이 탄생했습니다.


우주(宇宙)의 사전적 정의는 “무한한 시간과 만물을 포함하고 있는 끝없는 공간의 총체”입니다(표준국어대사전). 이 단어는 천자문에서 가져온 단어인데요. 천자문의 이 부분은 매우 아름답게 이 관념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잠시 살펴보도록 합시다.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

우주홍황(宇宙洪荒): 우주는 넓고 광대하다.

일월영측(日月盈昃): 해는 차고 달은 기울어진다.

진수열장(辰宿列張): 별은 자리를 잡고 늘어서 있다. 


어떤가요 우주를 정말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지요? 그런데 꼭 알아둬야 할 사실이 우리말에는 우주라는 단어가 하나지만 영어에는 두 개의 단어가 있다는 점입니다. 한 단어는 유니버스(universe)입니다. 이 단어는 ‘모든 장소와 공간’이란 뜻입니다. 또 다른 단어는 코스모스(cosmos)인데, 이 단어는 그리스어 “κόσμος”에서 유래한 것으로 앞의 의미에 더해 ‘질서’라는 뜻을 가집니다. 다음 시간에 알게 되겠지만 코스모스로써의 우주가 과학에 있어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이 그리스에서 유래한 것은 그곳에 과학이 태동한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과정이 다음 시간에 우리가 다룰 주제입니다.


(주: 또 다른 유사 단어로 세계(world)가 있습니다. 세계의 어원은 wer(인간)+eld(시대)로, 인간의 시대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라는 단어는 인간 중심의 관점을 가졌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다루는 자연으로써의 우주와는 약간 거리가 있으므로 이 단어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 그러면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알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신화를 낳고 결국 ‘우주’라는 관념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이번 시간에 살펴본 내용입니다. 그런데 신화에 드러난 우주에 대한 지식은 초보적이고 미성숙한 것입니다. 그것이 보다 세련된 형태로 탈바꿈하는 일이 고대 그리스 지역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과학이 탄생하게 됩니다. 인류의 운명을 바꿔놓은 그 순간을 다음 시간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림 출처

그림1: http://compraunaestrella.net/las-constelaciones-zodiacales/

그림2: https://www.americamagazine.org/arts-culture/2019/11/06/review-aristotle-21st-century 

그림3: http://chinesewiki.uos.ac.kr/wiki/images/b/ba/설형문자발상지.jpg 

그림4: https://culturizando.com/la-masturbacion-es-el-origen-del-universo-el-dios-egipcio-que-creo-el-mundo-al-eyacular/

그림5: https://pixabay.com/images/id-96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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