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우리집 풀장이 개장했다. 2017년 가을에 이 집을 리모델링해서 들어왔고 그 이듬해 여름부터 마당에 펼쳐놓고 놀았으니 올해로 벌써 3년째다. 도로 건너편 아파트에서 이곳으로 이사올 때, 꼭 하고 싶었던 것 중에 하나가 마당에 풀장을 만들어 노는 거였다. 처음에는 나도 폼 잡으며 썬베드에 누워 에이드를 홀짝이는 걸 상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 현실에서 아이들만 천국이다. 그래도 꼭 하고싶었던 일을 하는거니 소원성취한 셈이다.
이 집으로 이사올 때 시원이는 4살이었다. 리원이는 아내가 몸안에 품고있었고. 시원이 5살이 되던해에는 1층 아이들과 풀장을 즐겼었다. 어른들까지 나서 물총싸움도 하며 한동안 시원하고 재밌게 놀았었다. 그때는 마당도 아직 어수선할 때여서 마당-라이프에 있어서 아쉬움이 많을 때이기도 했지만. 시원이는 그때도 이리저리 물을 튀기고 물총을 쏘아대며 신나게 물놀이를 했다. 하지만 뭔가 마당에서 물놀이를 하는 것에 대한 밀착감이 없었던 듯 했다. 작년에는 2살 리원이도 풀장에 몸을 담그고 놀았다. 튜브를 몸에 끼워줬더니 아주 잘 헤엄치고 다녔던 게 떠오른다. 그리고 올해, 풀장 개장을 하고서 두 녀석을 안에 넣어놓으니 그야말로 물만난 고기다. 어떻게 놀아야 할지 머뭇거림이 없이 시원군은 완전 지 세상이다. 더욱이 겁없는 리원이마저 아주 유유자적 수영을 즐기는 걸 보니 그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아파트 전세를 빼서 이 집을 산다니까 어르신들이 말렸다. 단독은 안 오르는데 나중에 아파트로 어떻게 돌아오려냐는 거였다. 그때는 그런가?'와 '에이 얼마나 차이나겠어', 그리고 '그래도 괜찮아'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그냥 질러버렸다. 돈을 빌려 리모델링을 했고, 1층 전세금으로 갚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 아파트값이 엄청나게 뛰었다는데 있다. 아파트를 벗어났으니 이제 아파트값에 내 마음이 연동되지 않으리라 기대했지만 그건 내 바램일 뿐, 천정부지 오른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상황이 이쯤되니 이 집을 팔아 아파트로 다시 들어가기는 그른 듯 한데, 아이들은 크고 짐은 많아지며 방은 하나 밖에 없는 이 집에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꾸 집과 우리 생활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아파트값 추이를 자연히 인식하게되고 볼 때마다 마음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래된 단독주택이 모여있는 이 동네를 어떻게 해봐야하는거 아닌가 싶은 조바심이 이는 것도 사실이고.
집이 고민인건 어디까지나 나와 아내의 일이고, 시원이는 지금 집에 더없이 만족하는 듯 하다. 그리고 이렇게 마당에서 아이들 노는 걸 보면 마음 한켠이 온기로 채워지는 느낌이어서 나 또한 지금 집에 수긍하게 되고. 나는 이제 3살인 리원이가 나중에라도 이 집을 기억할 때까지만이라도 여기에서 살고 싶다. 그래서 아파트를 떠나 온 나와 아내의 결정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물론 물리적 환경보다 부모로부터 배우는 사회성이 아이에게 더 큰 영향을 주겠지만, 그래도 아파트 아닌 다른 공간(집)을 경험하며 성장하면 아무래도 공간의 질적 차이에 대해 조금 더 넓고 깊은 안목을 갖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그걸 뭐에 쓰겠냐만은, 그래도 뭔가 다른 걸 보는 마음과 눈이 키워지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 있기도 하다.
아파트를 떠나온 결정적 이유는 어느 신문에서 '층고 높은 집에서 성장한 아이가 창의력이 높다'는 기사를 보고서다. 그래서 사무실 층고도 높으면 좀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 어쩐지 서구적인 분석틀을 기반으로 하는 주장같아보이지만 그래도 층고 높은 공간에서는 마음이 약간 들뜨는 기분이 드는 건 맞는 것 같다. 조금 동적인 공간이랄까.
층고 높은집을 쫓아 왔으니 당연 우리집 천장이 조금 높은 편이다. 높은 곳은 약 3미터 정도.. 모임지붕이다보니 가운데는 높고 가장자리는 보통정도다. 층고가 높다는 표현보다는 층고가 다양하다고 해야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한옥이 대청은 높고 방은 낮은것처럼. 옷방은 딱 2미터 정도밖에 안되고 다락은 말그대로 다락이어서 어느 곳에서도 허리를 펼 수 없다. 오직 이리원만이 인간답게 직립보행하는 높이다. 또 방 하나를 아예 터서 만든 거실과 방인듯 방이 아닌 잠자는 공간의 층고는 높아서 펜던트를 길게 늘여뜨려놓았다. 화장실은 층고가 낮은반면 주방은 꽤 높은 편이다. 층고가 다양하니 집 바닥 면적은 좁아도 그렇게 작은 집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나는 주장하지만 아내 생각은 다르다...)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건 돈이나 부동산이 아닌 사물이나 사태를 다른 눈으로 보며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세상으로부터 얻은 걸 증여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이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자기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일이라고 여겼다. 아파트가 아닌 집에 살았던 시절이 아이들에게 마치 고향집같은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면 그 또한 돈으로 살 수 없는 더없이 좋은 마음의 근거지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 것들이 층고 높은 집과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아이들이 이 집을 얼마나 기억하려는지는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 집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에 좋은 영향을 줄거라 믿는다.
꼭 그게 아니라도 이런 집에 사는 것이 아직까지는 나쁘진 않다. 다락에서 네 식구가 다같이 누워 자는 것도 좋고, 침실이 없는 집이다보니 잠자리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자는 것도(오늘 저녁만 해도 오늘은 어디에서 잘 지 살짝 토론을..) 나름 재밌다. 테라스에 나가 '좋은 시간 보내기'도 좋고 빨래도 늘 햇볕에 말려서 좋다. 비오면 빗소리가 들리고 겨울이면 눈 쌓인 마당을 내려다보는 것도 마음 푸근해지는 일이다. 주차가 조금 번거롭고 가끔 벌레가 출몰해서 아내를 놀래키지만 말이다.
여하튼, 오늘 풀장을 개장했고, 이 풀장은 비가오나 퇴약볕에서나 8월 말까지는 자리를 지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