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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Jul 14. 2021

스스로 정한 모든 것은 가장 최선이 분명하니까

셋, 책일기

친구들, 안녕한가요?     


답 일기를 쓰는 속도가 계속 늘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송구스러워요. 제 순서가 되면 시간이 어찌나 빠르게 흐르는지, 그리고 여러분의 글을 기다릴 때면 시간이 어찌나 느리게 흐르는지, 정말 욕심쟁이 심보 맞지요?    

  

오늘은 욕심쟁이 심보의 끝판왕, 병리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들고 왔어요. 표지부터 스산하고 작가 이름을 확인하면 심장이 울렁거리게 되는, 바로 정유정 작가님의 신작 ‘완전한 행복’이랍니다.      

이 소설은 ‘행복’에 대한 이야기다. 완전한 행복에 이르고자 불행의 요소를 제거하려 ‘노력’한 어느 나르시시스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520     


여러분의 독서목록에도 있는 책이니, 줄거리는 이야기하지 않을래요. 양파껍질 벗기듯 줄거리를 한 꺼풀 한 꺼풀 풀어헤치는 재미를 빼앗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죠!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주인공은 완전하게 행복해질 미래의 어떤 날만을 기대하며 살아가요. 언젠가 완전하게 빚어서 온전히 나의 것으로 입양될 그 날만을 고대하죠. 그날을 위해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오늘을 근근이 버티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해요.      


주인공의 방식은 극단적이고 뒤틀려있긴 하지만, 어쩐지 저는 과거의 제 모습이 생각나더라고요. 대학 가면 놀아야지 하고 되뇌며 엉덩이로 공부했던 기억들과, 성공하면 보러 가야지 하고 미뤄두었던 친척 집 방문들, 그리고 언젠가 돈 많이 벌면 꼭 해야지 하고 적어두었던 바람들까지요. 여러분도 뭔지 아시죠? 우리가 어릴 적엔 그렇게 배웠잖아요. 지금은 미래를 위해 축적해야 하는 때라고. 그래서일까요?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 절망과 한계를 마주하게 되었을 즈음 ‘욜로(YOLO)’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것은요.     


인간은 자신의 믿음에 따른 우주를 가진다.
 - 115     



지금의 저는요, 엄청난 욕심쟁이가 되었어요. 오늘도 충분히 즐기고 싶고,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미래도 준비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는 잠이나 여가 시간을 희생 시켜 왔는데, 이제 서른이 넘어서 그런지 하루 이틀만 몸을 혹사해도 능률이 현저히 떨어지고 건강도 눈에 보이게 나빠지는 거 있죠? 그래서 천천히 나아가더라도 다 조금씩 챙기려고 애쓰는 삶을 살고 있어요.     


오늘을 즐기는 방법으로는,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려고 애써요. 아무리 힘들어도 열심히 캠핑을 다니는 것은, 스쳐 가는 계절이 제 삶에 충분히 스며들 시간을 주고 싶어서인 것 같아요.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으로는, 물론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이겠죠. 타성에 젖지 않기,를 신조로 삼고 있는데요, 이건 노동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요. 그래도 글을 옮기거나 쓰는 사람인데, 단순노동을 하듯이 일을 한다면 정말 진부하고 와닿지도 않는 글이 나올 것 같아서요.      


그리고 요즘에 추가된 것은, 운동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서 건강을 지키는 일이요. 몸의 건강도 그렇지만 정신의 건강도 추가되었어요. 저는 쇼핑을 즐기지 않는 편이라서, 살이 조금 쪄서 원래 가지고 있던 옷을 입지 못하게 되면 그냥 매일 똑같은 옷을 입어버리곤 했거든요. 다시 빠질 날을 고대하면서요. 그런데 이제 그러지 않기로 했어요. 55kg의 나도 나고, 65kg의 나도 나 잖아요. 저는 자꾸만 한 번도 되어본 적 없는 50kg의 나만 내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는 참 운이 없어.”
“아무리 잘해줘도 사람들은 나를 배신해.”
-468     


나는 참 운이 없어, 주인공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인데요. 저도 그런 말을 많이 했던 때가 있었던 것 같아요. 특별히 운이 없던 건 아니고, 그저 먼 미래의 완전한 순간을 향해 바삐 살다 보니, 소소한 행운의 순간들은 그냥 스쳐버리는 거죠. 나를 넘어트리는 불행의 순간에만 멈춰서기 때문에, 그 순간만 기억에 남는 거죠.      


주인공은 화자가 아니다. 단 한 번도 이야기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입에 지퍼를 채워 커튼 뒤에 세워둔 셈이다. 이야기의 목적을 위한 선택이었다. 악인의 내면이 아니라, 한 인간이 타인의 행복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타인의 삶을 어떤 식으로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으므로.
- 522     



반전이죠?! 제가 말하는 주인공은 화자가 아니었답니다!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요?! 오랜만에 정말 정유정세계에 들어가서 스릴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을 보냈어요.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어버렸지 모에요.      

사실 어떤 삶을 살던 자신이 정하는 것이죠. 모든 신념은 존경할 만한 것이라고 믿어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차곡차곡 적립하는 삶도, 불투명한 내일은 미뤄두고 오늘을 불사르며 사는 것도, 자신이 결정한 일이라면 그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거에요. 분명히요.      


하지만 문제가 생기는 것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타인에게 주입하려고 할 때 생기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타인에게 피해가 가는 삶의 방식을 자신의 것으로 고집했을 때에 생기는 게 아닐까요?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다만 늘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겐 행복할 권리와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함께 있다는 것을. 
-522     


타인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오늘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미래의 완전한 행복을 계획하려 애쓰는 삶을 살고 있어요. 이것은 마치 시소의 정 중앙에서 오른쪽 다리와 왼쪽 다리에 힘을 균등하게 주며 수평을 만들려고 애쓰는 것과 같아서,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무너져 내릴 것처럼 지치기도 하지만, 흐드러진 꽃이 산들바람에 춤을 추는 풍경이 눈앞에 나타나는 가을날이면 그럭저럭 산뜻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친구들은 어떤 행복을 움켜잡으며 살아가고 있나요? 어떤 방식으로 행복을 좇고 있나요? 어떤 때에 행복을 느끼나요? 여러분의 행복에 관해서 알고 싶어지는 밤입니다.      


덧 1. <<완전한 행복>>을 선점해 버렸는데요, 언젠가 친구들이 읽게 되시고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지신다면 또 한 번 나눠주셔도 흥미로운 교환일기가 될 것 같아요!     


덧 2. <<완전한 행복>>을 밤에 읽었는데요, 무서운 꿈을 꿨답니다. 친구들은 밝은 낮에 읽으시길.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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