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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수 May 22. 2022

제주도, ‘귤의 섬’에서 ‘키위의 섬’으로

제스프리의 ‘제주 시대’가 말하는 것

‘귤의 섬’ 제주도가 ‘키위의 섬’이 되고 있다. 요즘 제주에선 “귤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땅을 갈아엎고 골드키위로 작목을 바꾸고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린다. 뉴질랜드의 대표 기업 제스프리는 키위 하나로 전 세계 시장을 점령한 글로벌 기업. 50여 개국에 키위를 수출해 연간 2조 4000억 원에 달 하는 매출을 올린다.

 

제스프리의 명성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그들이 ‘제주 시대 열어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비결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작년 제주에서 열린 지역 혁신가들의 만남의 , ‘J-Connect Day’에서 제스프리 한국 지사의 발표를 듣고 놀라지 않을  없었다. 제스프리와 재배 계약을 맺은 제주도 키위농가 수는 2012 151곳에서 현재  240곳으로 늘었다. 키위 재배면적도 2019 119 제곱미터에서 지난해 175 제곱미터로 2  47% 증가했다.

 

제스프리는 뉴질랜드 키위 농가가 100% 소유한 청과 회사다. 한국 시장에서 키위 소비가 늘자 1년 내내 키위를 공급하기 위해 제주도를 또 하나의 텃밭으로 삼았다. 11월부터 3월까지 제주도산 키위를 팔고, 4월부터 10월까지는 뉴질랜드산 키위를 가져와 판다.

 

 농민들은 왜 제주의 상징인 감귤 대신 키위를 선택하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가격 안정성이다. 수요나 시장 변동, 그 해 작물의 품질 변동에 따라 가격이 요동치는 농산물 시장에서 제스프리는 생산에서 공급까지 모든 과정을 관리 감독하며 매년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한다. 가격이 싸든 비싸 든 본사가 전량 매입해 농부들은 가격 등락 걱정 없이 안심하고 농사를 짓는다. 농사를 전혀 지어본 적 없는 사람들도 땅과 시설 투자만 하면 나머지는 제스프리 본사가 모두 해결한다. 2달에 1회 정도 농사 교육을 시켜주고, 키위를 납품하면 대금을 지급한다. 유통과 마케팅도 본사가 책임진다. 단, 농부들은 제스프리가 요구하는 엄격한 품질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과일에 상처가 있거나 색깔이 부족하거나, 당도가 15 브릭스에 못 미치면 약속한 가격을 받지 못한다.

 

 수확 후의 시스템도 체계적이다. 수확된 키위는 제주도에 있는 품질선별센터 ‘팩 하우스’ 2곳에 나눠져 선별된다. 겉모습이 다른 3등급 키위는 가공용으로, 품질 미달인 2등급은 제스프리의 스티커가 아닌 ‘패밀리 키위’라는 이름으로 판매된다. 1등급을 인정받은 것 중 3주 간의 저장 기간을 거쳐 문제가 생기지 않은 제품만 ‘제스프리 키위’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나온다. 제주의 키위 농부들은 ‘농사를 잘 짓는 것’ 외엔 신경 쓸 일이 없다. 소비자 입장에선 “제스프리 스티커가 붙은 키위면 무조건 평균 이상 맛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외래종 키위를 ‘1년 내내 믿고 먹을 수 있는 과일’로 만든 비결이 여기에 있다. 제스프리는 제조업 분야에서 제품을 기획, 개발하고 만들어낸 뒤 불량품을 수 차례에 걸쳐 선별해 ‘불량률 제로’에 이른 상품만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기본적인 시스템을 농업에 이식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제스프리의 혁신 사례는 농부 입장에선 신규 소득 작물이 등장해 환영할 일이지만, 외국 기업과 외국 품종이 직접 생산된다는 것은 마냥 긍정적인 일은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제주도 감귤 산업은 매년 부침을 겪고 있다. 2016년에서 2019년까지 감귤 재배 면적은 2만 1672헥타르에서 2만 1101 헥타르로 소폭 감소했다. 2020년 산 감귤 총판매액은 9508억 원, 생산량은 63만여 톤이었다. 감귤 수출액은 연간 549만 달러(약 67억 원) 수준에 그쳤다. 반면 제스프리의 판매 수량은 감귤 대비 7만 톤 적지만 매출액으로는 3배 이상 높다. 키위와 감귤의 단위 면적당 생산량, 생산 원가 등에선 차이가 있지만 제스프리가 국내 감귤 산업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감귤이 키위보다 맛이나 품질 면에서 부족함이 없고 맛, 품질, 가격, 유통 경쟁력도 뒤지지 않는다. 2차 가공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도 많다. 하지만 품질의 균일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시스템은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제주산 감귤이라고 구매하지만 시기마다, 농장마다 맛의 편차가 크다면 장기적인 감귤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어렵다. 세계적인 농산물 시장 개방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생산에서 유통까지의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소비자의 신뢰와 만족도를 끌어올리려는 성찰과 구조조정이 필요한 때다.  “1년 내내 언제든 제주산 감귤을 선택해도 실패가 없다”는 전제를 만드는 것이 ‘귤의 섬’ 제주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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