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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슬로 Nov 05. 2022

생일 단상

22.11.04

목요일까지는 한가하다가 갑자기 일이 몰려든 날이라 9시가 되어서야 노트북을 덮었다. 매년 '생일은 살아가는 여러 날들 중 하나일 뿐'이란 생각이 점점 들지만, 그럼에도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 사람 마음인 것 같다.


회사 메신저엔 소심하게 케익 아이콘을 상태 메시지로 달아놨다. 눈치빠른 사람이 보고 축하하라고. 진짜로 몇몇 눈치빠른 사람이 축하해주긴 했다. 미팅하다 말고 상사한테도 축하 받았다. 둘이 멋쩍게 웃었다. 일하다 말고는 자주 시켜먹는 초밥집에서 23,000원짜리 제일 비싼 초밥을 주문해서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이게 스스로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었다.


올해는 예상도 못했던 사람들이 더 많이 축하를 해 주었다. 내가 더 챙겨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 주었달까. 고마운 사람들이다. 특히 새로 옮긴 교회 사람들이 정말 많이 축하를 해 주었다.


 D에게 "아 오늘 생일이라고 갑자기 누가 사귀자고 했으면 좋겠다." 라고 하니까 누구 있는거 아니냐고 캐물으면서도 변화에 있어 너무 좋은 마음이라고 칭찬해줬다. K와는 너무 아끼고 사랑한다고 서로 얘기해줬는데, 여기 쓰면서도 눈물이 괜히 핑 돈다.  누구보다도 내 행복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더 행복해져야겠단 생각을 했다.


언젠가 이 친구들이 둘이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면서 마치 짠 것처럼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S야, 네가 원한다면 정말 좋은 사람 만날 거라고 생각해."


여기서의 전제조건은 '내가 원한다면' 이다. 돌아보면 내가 그걸 진심으로 원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원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까지도 좀 오래 걸린 것 같은데, 이젠 좀 완성이 된 것 같다. (돌아보면 D와 K는 '나의 원함' 이 닿아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된 소중한 친구들이라서, 이 친구들이 똑같은 말을 했다는 게 매우 크게 다가왔다.)


밤늦게 케익 촛불을 불면서 따로 소원을 빌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막연하게 생각만 하던 것을 드디어 마음 한복판에 두게 되었다. 신나는 일은 특별히 없이 잠잠하게 지나간 생일이었으나 어떤 것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과거에겐 안녕을, 머무르는 것들에겐 감사를, 다가오는 것들엔 기대와 평안을.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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