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단은 하지도 않고 세끼 꼬박 챙겨먹고, 그렇다고 운동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는데 살이 빠져버렸다. 몇년만에 날 본 사람들은 볼살을 뭉텅이로 잘라간 것 같다는 표현도 썼다.
아침에 체중계를 재면서 '맘고생을 해서 그런가-' 라고 중얼거리니 엄마가 정말 그런가- 하고 받아줬다. 상담에서 요즘 내 상황을 별 생각없이 쭉 읊으니 객관적으로도 힘든 상황이 맞다고 했으니까. 그에 비해 잘 지내는 것은 맞다. 선생님이 진짜 많이 발전했다고 해 주셨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 다닌 이래 처음으로 동료랑 살벌한 말을 주고받아보았다. 다시 말하면 싸웠다. 그전에는 회사에서 누가 일방적으로 나에게 함부로 하는 걸 어떻게 반박도 못하고 듣고 있던 적이 많았는데, 이번엔 진짜 바락바락 하나도 안 지려고 다 받아치면서 씩씩거렸다. 발전이라면 발전일 것이다.
그제는 그래서인가 진짜 시쳇말로 개빡친 상태로 부들거리면서 일을 했다. 상사 말론 내가 온 몸으로 감정이 쌓였다는 걸 뿜어내고 있었다는데.. 말도 공격적으로 했다고 한다. 상사랑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결국 둘 다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를 긍휼히 여겨야 한다는 얘길 들었다. 내 잘못도 좀 돌아봤다. 그의 부족함도 보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베스트 버전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 같다며... 사실 내 부족함이겠지.
한편으론 벤더사와의 대환장파티가 있었고, 그들의 최고 품질을 자랑한다던 API는 나를 포함해 여럿을 동시에 시험을 들게 했다. 곧 아저씨들과 담판 지으러 가는데...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나겠지. 그와 동시에 내 프로젝트는 또 다시 좌초가 될 수도 있다. 올해 들어 개발팀 사정이며 누구 사정이며 홀드시킨 프로젝트가 몇갠가 싶은데.. 그냥 이제 아무것도 모르겠고 다 지겹다.
낮은 자존감의 방문을 수도 없이 받고, 회사에선 밀려드는 자괴감과 싸워야만 하는 요즘 같은 때. 상담에서는 늘 강조하는 거지만 '인지' 를 하라고 했다. 귀신처럼 나에게 20년 넘게 들러붙어 있는 '결과가 곧 나' 라는 이 믿음... 내가 깎여나가고 있을 때마다 되새겨보라고 했다.
사실 며칠 전에 상사랑 이야기하다 울어버렸다. 이것도 어찌보면 발전이긴 하다. 지난 회사들에선 참 자주 상사들 앞에서 울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1년 3개월만이니. 상사가 일 못해도 좋으니 제발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말라고, 자존감 잃으면 다 잃는 거라고 얘기해 주었는데 그 말이 따뜻해서 더 울었다.
따뜻함과 별개로 오늘은 온 몸에 먹구름이 낀 느낌이었다. 이 모든 상황 속에 드디어 지쳐버린 것인가. 벽에 부딪혔다 해서 잘못되지 않은 것도 알고 계속 어떻게든 살아갈것은 알고 있지만 힘이 든다. 여러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