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흉한 기득권의 속셈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5006649?sid=102
앞서 김 전 의원 회계담당자였던 강혜경 씨는 지난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명씨가 윤 대통령에게 '불법 여론조사'를 해준 대가로 김 전 의원이 2022년 6월 보궐선거 공천을 받았고 이 과정에 김 여사가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기사 본문 중-
세상 시끄러운 요즘이다. 국정감사에서는 엘리트라고 하는 자들의 무지와 무능, 그리고 욕심만 부각될 뿐이고,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민낯이 점점 드러나는 듯 해, 2016년의 이맘때가 기시감으로 든다. 여론조사를 통한 불법 정치자금과 선거조력이 문제가 된다고 하지만, 정작 이땅의 여론조사는 거의 모든 것이 '조절'의 영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그 조절된 여론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2022년은 대통령 선거라는 중대 선거 중 하나가 실시되는 해였다. 이를 겨냥한 천박한 기득의 속셈이 횡행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정치 관심도를 떠나 국가 운영의 수장을 선출하는 일은 생각보다 일상에 민감하다. 성숙한 시민의식은 고귀한 정치행위인 선거로 이끌기 마련일 텐데, 좀처럼 선택의 판단이 서질 않는 법이다. '최대의 네거티브 선거'라는 평가들이 난무하고, 방송과 신문은 저마다의 희망사항을 분석이라 포장해 내놓고 있다. 그런데, 요란하고 시끄러운 미디어에서 건져낼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패널이라고 앉아 있는 자들은 거대 양당의 진영의 대변자이거나, 섭외자가 대다수이고, 캠프나 정당에 한자리 얻지 못한 자들의 공개 구애자들만 가득이다. 정치 컨설턴트라는 인간들은 지난 20세기 정치공학을 운운하고, 평론가들은 평론보다는 언론 기사를 어뷰징 하기만 바빠 보인다. 그래서, 결국 분석과 판단, 선택의 몫은 오롯이 유권자 시민의 부담과 책임으로 되어 버렸다. 늘 그렇듯이 말이다.
선택과 판단의 근거 마련을 위해, 무엇보다 먼저 여론조사의 ‘추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현재 여론조사의 한계와 문제점으로 인하여 여론조사의 신뢰도는 매우 낮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여론조사에서 제시하는 ‘figure factor’, 즉 ‘수치 정합성’은 신뢰도를 떠나 참조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추이 – tendency of change’다.
최근 여론조사의 추이를 볼 수 있는 기사를 첨부한다. 기사를 쓴 한겨레 성한용 논설위원은 NBS(전국 지표조사)를 인용하여 분석하였다. 개인적으로 지표 중에 NBS를 참조하는데, 이유는 기사 본문에 설명한 내용과 같다. (한 가지 더 첨언하고 싶은 것은, 상세 질문지의 직관성과 중립성도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전국 지표조사(NBS·National Barometer Survey) 수치를 주로 참고하는 편입니다. 전국 지표조사는 엠브레인 퍼블릭·케이 스탯 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개 회사가 공동으로 하는 여론조사입니다. 국내 통신 3사가 제공하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해 전화면접을 합니다. 매주 같은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흐름을 살펴보기에 적합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 기사 본문 중 -
또 하나의 데이터는 바로 ‘search & buzz’로 대변되는 온라인 상에서의 주목도로 살펴볼 수 있다. 구글 검색 쿼리를 분석하여 독감을 예방하고, 최근에는 ‘뎅기열’에 대한 예방과 방제 서비스를 구글에서 직접 개발하기도 한 것은 유명한 사례다. 검색과 SNS 버즈에 있어서 그 수치가 높은 것이 유리할지, 낮은 것이 유리할지 이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또한 전반적인 추이로서 특정 후보에 대한 관심도의 표현이므로 전체적인 트렌드의 참조에는 유효한 자료임에는 틀림없다.
예시로 서로의 네거티브 팩터인 '이재명, 대장동'과 '윤석열, 김건희'의 버즈 추이를 비교해 보면, 나름의 의미 해석이 가능해진다.(링크와 예시 화면만 올립니다. 추이 검색에도 '의도'가 들어갈 수 있으니 각자 활용해 보시길)
네이버 트렌드:
카카오 트렌드
구글 트렌드
이러한 두 가지 데이터를 상호 보완과 보충으로 참조해 보면, 현재의 소위 '판세'를 읽어 낼 수는 있다. 자료에 의거하여 이재명 후보의 선거운동이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고, 반대로 윤석열 후보의 대응과 실책이 상대방에게 직간접적인 반사효과를 주고 있다고 전망할 수 있다. 물론 케케 묶은 주사파 색깔론이나 외모 평가 등의 저급한 네거티브 등으로 민심의 요동이나 중도층의 요요 현상이 예상되지만, 현재의 추세로는 전체의 판을 흔들 정도의 파급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여론조사의 판세가 선택을 결정하는 중대 요소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민과 갈등의 지점에서 결정 장애가 올 것 같을 때에는 '사람들의 의견'이 나름 도움이 될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선거에 임하는 우리들은 대세를 보고, 판세에 따라 '적임자'를 선택하면 되는 일일까? 실상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전망과 추이를 데이터로 추정하여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미래를 정확하게 예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선거의 국면에서 한 진영의 장밋빛 전망이 악몽으로 둔갑하는 것은 종종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전반적인 ‘투표율’을 예상하기 힘들기 따문이다. 위의 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직 결정하지 못함"이라고 하는 중도ㆍ스윙보터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의 쟁점은 핵심 공약도, 정권의 심판도, 후보 개인 문제에 대한 네거티브 논쟁도 아닌 바로 ‘투표율’에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지난 주요 선거의 결과를 유추해 보면, 보수의 집결층은 전체 유권자의 30%로 추산된다. 다시 계산해 보면, 전체 투표율이 65%를 넘지 않는다면 진보 진영 후보는 판세와 상관없이 필패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무엇이 투표율을 낮게 만드는 것일까요?
첫 번째로, 여론조작 같은 여론조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치 관련 서적 <락 더 보트>에서 언급하였듯이, 여론조사는 얼마든지 언론기관이나 조사기관에서 목적을 설정하고, 설정된 목적에 부합하게 조사 및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숫자놀음’이다. ‘민심잡기’라든지, ‘바닥표 긁기’라든지 하는 표현은 어찌 보면 이러한 조작에 준하는 여론조사의 세몰이나 다름이 없다.
(최근 조사에서도 "정권 심판:국정안정"과 "정권교체:정권연장"이라는 동일 지표 조사가 다르게 나오는 경향- 정권교체와 연장의 의미를 모호하게 묻는 설문 설계 때문이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
일례로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선거의 판세를 오세훈 후보가 한명숙 후보를 17.8% 차로 앞설 것이라고 마지막 공표에 발표하였다. 지지자들의 마음이나 결의를 낙담시키거나 긴장을 늦추기에 충분한 발표였다. 그러나 결과는 설문대로 나오지 않았다. 강남 3구의 몰표로 겨우 0.6% 차로 오세훈 후보가 신승한다. 만약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다 굳은 집결을 하였다면 그 결과 또한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이는 그 ‘반대의 논리’도 성립하게 하는 지점이다. 큰 격차로 벌어진 결과의 연이은 보도는 이미 결집의 베이스라인이 완고한 보수에게는 그 콘크리트 같은 보수 대열 강화에 도움이 되지만, 상대적으로 그 유지적 결합이 공고하지 못한 진보진영에게는 느슨한 판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을 성향적으로 매우 기울어진 언론들이 판을 짜서 ‘기울어진 선거’로 연일 보도하는 것에는 분명 ‘꼼수’가 있다. 그것은 바로 ‘투표율 하락’이다. 언론은 이미 정론을 포기했다. 현장에서는 저연차 이진 기자들이 후보자들의 동선을 동행하며 그들의 행동과 말을 "받아 적는다." 데스크에서는 동일 지표를 가지고 회사의 논조와 방향, 자신들이 원하는 진영의 득을 위해, 선전물 같은 '야마-헤드라인' 작문에 고심일 뿐이다. 심층이고 특화된 기사 하나 찾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권자인 독자들의 이해와 궁금증을 해소하기보다는, 정치 세력과 유관자에게 구애와 견제의 시그널을 보낼 뿐이다. 그래서 기자들의 언어와 글은 늘 건방지고, 친절하지 않다. 비문 가득하고 논리 근거 희박한 기사 따위는 관심사가 아닌 듯 보인다.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니, 더 이상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없다.
(여론 조사는 왜 그때그때 다를까? 의뢰인의 취향에 "맞춤"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 -아래 기사 참조)
딸깍. 전등 스위치를 켜자 홀로 돌아가던 기계의 전모가 파악됐다. 서늘한 바람이 분다. 가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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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진영을 떠나서 바로 기존 정치인들과 기득 정치세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치를 흔히 먹물 속의 진주를 꺼내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기존의 정치인들은 본인의 진영과 기득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판을 더욱 까맣게 만든다. 정치인들이나 정당활동을 보고 있자면, 투표율을 ‘못’ 올리는 것이 아니라 ‘안’ 올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기관과 정치 컨설턴트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 시대와 걸맞지 않은 고전적인 전화 설문의 유지는 이해관계의 아집이다. 1,000명 대의 '매일 조사'를 의뢰하는 곳은 언론들도 있지만, 참가하는 후보 진영에서 가장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객관적인 현실보다 늘 '희망사항'이 투영된 윤색된 조사가 진행되는 이유고, 최근 선거 비용의 큰돈이 지불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정당의 내부 투표는 그 투표율과 참여율을 올리기 위해 ICT 기술이 혼합된 온라인이나 전자투표가 많이 도입되고 있다. 물론 중대투표에서의 부정과 조작의 우려로 인하여 그 도입에 대해서는 주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 나온 기술 규준으로 그러한 방비와 대비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그것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통신 3사들과 협업하여 보상을 주는 형태의 '상시 여론조사'는 이미 기업의 영역에서는 활성화되어 있고, 그 효용과 조사 역량도 검증되어 있다.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거대 야당의 정치인들이야 그들의 정치적 생명의 성패와 평가의 결과와 직결되기 때문에 그러하다 할 수 있지만, 진보 정치세력이 집권했을 때 의원들과 정당의 활동이 정말 절실함으로 투표율 향상에 매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일례로 더불어 민주당의 '매타 버스'는 이미 십여 년 전의 기획 산물의 재탕, 재 재탕이다. 한진 중공업 노조 응원 '희망버스', '민생버스' 등등. 그리고, 자기 복제의 달인 전시기획자 탁현민 씨의 청와대 입성은 정치 이벤트의 수준 도약을 끌어내리게 된, '그들만의 리그'의 배타적 의식에 기인한다.
지닌 3번의 서울시장선거 준비를 하며 새롭지만 유효한 시도인 ‘투표율을 높이는 것이 득표율을 높이는 것’이라는 Micro Targeting 전략에 대한 수용도 매우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선거는 어차피 인물 구도이고, 직능과 조직의 싸움이며, 당원들의 물밑 활동이라 주장한다. 그들 활동은 모니터링되지도 않고 측정할 수 없기에 성패를 판가름할 수도 없다. 이런 생각하는 것도 이와 같은 기득권의 논리, 밥그릇의 논리가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투표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우려 섞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력이 있다. 그들은 투표율이 올라가는 것 자체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투표하지 않아야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는 논리가 황당하게도 느껴지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마지막으로는, 바로 우리 자신, 바로 유권자들이 투표율 상승을 스스로 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론조사가 조작을 하던, 기존 정치세력들이 본인들의 기득을 지키기 위해 투표율 제고를 위한 장치를 마련하지 않든 간에 그 결과적인 행동은 바로 유권자들의 투표에 있다.
긴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난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를 되돌아본다면 박원순 서울시장은 210만 표를 얻어 서울시 전체 유권자의 26%도 안된 지지를 얻어 서울시의 행정 수장이 된 바가 있다. 처음 임기에는 시의회도 보수 과반이라 정책의 수립과 진행이 어려웠다. 투표율을 낮추고 무엇 하나 좋아질 것 없을 것 같은 정치지형을 이루는 이 모든 것들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하나쯤이라는 느슨한 생각,
모두 지지하기 어렵다는 모두와 전체에 대한 부정,
무엇보다 사회에 대한 무관심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 스스로 통치하기를 거부할 때
그들이 받는 가장 큰 벌은
자기들보다 못한 자들에 의해서
통치당하는 것일세
- 플라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