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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란, 뉘우침이 아니라 죄를 미워하는 것

사순 묵상 10

by 박 스테파노

회개(悔改)라는 말은 회심(回心), 통회 등으로 함께 쓰인다. 흔히 기독교인의 입문의 조건이 되는 회개라는 것은 다시 본연의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회개의 뜻을 가진 그리스어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는

초월을 의미하는 meta와 의식, 생각을 의미하는 noia로 이루어진 단어다. 본연의 마음이란 달리 이야기하면 지금의 오염된 마음과 생각을 뛰어넘는 것을 의미한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초연한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선 외부의 소음이 소용돌이치며 내면에도 공명을 일으키기 십상이니 생각을 뛰어 넘기란 불가능의 주문처럼 들린다. 또 하나의 어려움을 주는 것은 이 시대에 초연함을 표방하는 것이 마치 방관자나 도망자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헝클어진 마음을 모아 염원하는 것이 전부인 시간은 각자의 몫인데도 말이다.


최근 사법 행위인 판결에 대해 실망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실망의 원인은 여럿이겠지만 아주 단순한 원인규명은 '기대'에 있다. 특히 좀 배웠다 생각하는 이들일수록 사법의 영역을 매우 존귀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일의 파급과 영향을 생각할 때 성자와 같은 이들이 종사하는 존엄의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염원도 있을 터.


하지만, 법이라는 것은 사실 실체가 없는 허상이 아니던가. 실재하는 정의와 양심을 억지 욱여넣은 터질 것 같은 비닐봉지가 법이라는 주머니다. 유발 하라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법, 정치, 종교(신앙과는 다른 의미) 등은 지어내기 좋아하는 인류의 가공품일진대 그 주머니에서 진실 꾸러미를 기대하는 일은 달토끼를 부르는 마음에 지나지 않는다. 법이라는 것이 절대선일 수 없는 이유는 지어낸 것들의 속성이 법에도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어내는 이의 의도와 읽어내는 이의 바람은 늘 같을 순 없다.


누군가 민주주의는 야구의 9회 초 같은 것이라고 했다. 법만큼 허상의 지표가 민주주의라는 정치의 것인데, 이것의 더 큰 문제는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는 데에 있다. 9회 초 야구처럼 승부가 다 난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 기대가 9회 말 역전 만루홈런으로 절망하게 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것. 조금 더 많은 다수가 조금 덜 많은 다수보다 항상 옳다고 할 수 없는 상식을 뒤엎는 일이 민주주의가 아니던가. 이런 세상과 시대에 마음은 늘 소용돌이에 윙윙될 뿐이다.


현재의 복잡하고 헝클어진 마음을 어떻게 뛰어넘어 초월할 수 있을까? 그것은 마음속 자리 잡은 오욕과 질투로 범벅된 죄를 미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저 죄를 인지하고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그 죄가 된 행동과 마음을 모두 증오할 만큼 뛰어넘는 일.

그것이 바로 회개가 된다.

지금은 법의 양심이 아닌 상식의 회심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스스로도

내 안의 죄를 미워함으로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순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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