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묵상 11
소포모어(Sophomore)는 대학 2학년 학생을 지칭하는 용어다. 우리에겐 스포츠 신예 스타들의 2년 차 부진을 말하는 '소포모어 징크스'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의 소포스(σοφός, sophos)와 모로스(μωρός, mōros)에서 유래한다. 이 말의 조어가 흥미롭다. 소포스(sophos)는 '현명한' 또는 '지혜로운'을 의미한다. 반면 모로스(mōros)는 '어리석은' 또는 '미련한'을 뜻한다.
이 두 단어가 결합된 소포모로스(sophomoros)는 문자적으로 '현명한 어리석음' 또는 '지혜로운 바보'라는 역설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는 2학년 학생들이 1학년(프레시맨)보다는 지식을 습득했으나, 아직 상급학년(주니어, 시니어)처럼 성숙하지 못한 과도기적 위치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은 17세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2학년생들을 "지식은 있으나 성급하고 논쟁을 좋아하는" 학생으로 묘사하는 데 활용되었다. 이후 미국 교육제도에 도입되어 고등학교 및 대학의 2학년을 지칭하는 공식 용어로 자리 잡았다. 학문적 성장 과정에서의 중간 단계를 상징하며, 지식과 경험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학생'의 특징을 드러내는 말이다.
다음 주면 내 나이 쉰 하고 셋이 꽉 찬다. 내 나이면 인생의 그래프에서 어디쯤일까.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대략 현대의 사회적 나이를 선현들의 시대에 비한다면 대략 0.75 정도를 곱하면 된다는 이론이 와닿는 요즘이다. 53세에 대입하니 40세 정도가 나온다. 어른의 명찰을 달고 40세란 어른의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 10여 년간이 내 어른의 시간 중 소포모어에 해당된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지혜로운 척하던 바보천치. 그 소포모어의 시간.
좋은 말로 지혜로운 바보지만 사실 '잘 포장된 설익고 떫은 여름 사과'에 불과했던 40대를 격랑 속에 보냈다. 그 말미와 쉰을 맞이할 때 큰 병도 만나고 사회적으로 침잠해 가면서 그때서야 비로소 나를 솔직하게 마주할 날들이 찾아왔다.
한 번의 성공이, 한 차례의 갈채가 인생을 대변해 주리라 착각했던 내 소포모어의 시간들을 차근히 들여다보는 요즘이다. 세상 좋은 풍경들을 보면 세월이 속상할 때도 있지만 어서 늙었으면 하는 생각도 깊다.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다 어려울지 모르는 잘 늙어가는 여정을 마치고 나면 그래도 잘 살아 내었다. 내 어깨를 스스로 토닥일지도 모르는 일이니.
좋아라 하는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만 있으면
그곳이 어두운지도 모른다.
그 어둠을 알게 될 때는
빛으로 나왔을 때일 것이다.
그때야 그곳이 얼마나 깜깜했는지….
느리게 시간이 흐르던 어둠 속에서
물고기처럼 유영하던 조제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가장 무서워하는 '호랑이'를 보는 거라고 말한다.
'사랑'은 그렇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응시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이제 회피하거나 눈 돌리지 않고
나의 지나 온 어두운 터널도 응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밝은 빛으로 나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았으니 말이다.
그 손을 잡고 오래오래 함께하기로 한다.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