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묵상 12
1.
3월 마지막 주말이 차갑다. 어제는 눈이 내렸다는데 웃풍이 두려운 환자에게 창 밖 동정 살피기란 아직 주저함이 앞선다. 차가운 날이 주는 선물은 바람이 걷어 낸 먼지로 드러난 파란 하늘인데, 그놈의 바람이 불길을 넓고 깊게 만드니 슬픈 파란 하늘이 빼꼼히 드러낸다. 기후 현상 중 가장 예측 관리하기 힘든 것이 바람이라던데, 이 나라 정부와 공무 조직에게는 무엇을 바라든지 될 일이 없어 보인다. 슬프다.
2.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틈틈이 제법 긴 리뷰를 남겼다. <우리들의 블루스>만큼 현실적이지 않고, <나의 해방일지>마냥 사유적이지도 않으며, <눈이 부시게>같이 문학적 환기의 충격도 없는 소품의 확장이지만 재미있게 보았다. OTT에서 재미 이상을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특히 <폭싹 속았수다>의 속물적 행복론은 뒷 맛이 씁쓸했다. 결국 애순의 인생의 '다시 봄'날은 자본의 회복으로 말미암은 안정이라는 결론이 특히 그러했다. 개천에서 용 나고 자수성가가 가능했던 멀지 않은 옛날의 추억을 그리는, 그야말로 '노스탤지어'의 아우성.
3.
기억은 수채화 같이 변한다는 대사가 마음에 남았다. 미움은 희미해지고 사람은 축축하게 되는 시간의 마법. 시간이 주는 마법은 지금의 처지가 필터가 되는 법이 아니던가. 누군가는 지브리풍의 동화가 되지만, 어떤 이에게는 뭉크의 절규가 되는 것이 기억의 분칠이다. 담벼락에 넘치는 지브리들을 보며 갑갑하고 아득한 인생들이 가득임을 다시 깨닫는다. 그들과 나에게 다시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폭싹 속았수다.
4.
사순 4주일의 복음은 그 유명한 '탕자의 비유'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들어 봄직한 탕자의 비유는 오래된 신화와 설화의 우화다. 이 우화의 중심에는 돌아온 방탕한 아들이 아니라, 집에서 맞이하는 큰 아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깨닫기 힘들다. 스스로 탕자가 아니라 생각하는 기독교인들도 탕자에게 감정이입하기 십상인데, 사실 복음은 큰 아들의 마음에 대한 묵상을 요구한다. 그저 성실하게 착실히 임했을 뿐인데 찬사와 성과는 늘 게으르고 교활한 녀석들의 차지라 생각 들곤 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럼에도 회심한 누군가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환영할 수 있다면, 그 인생의 격은 한층 높아지지 않을까. 탕자를 함께 받아들이는 마음이 다른 의미로 회개이고 회심이다.
5.
늘 성실한 <폭싹 속았수다>의 관식과 애순을 보며 나와 아내를 생각했다. 엉덩이 가벼운 체질이라 무엇이든 아내보다 앞서 처리하는 나는, 아내의 외출과 일처리에 늘 노심초사다. 새로운 절차와 늘어 나는 키오스크, 앱들에 당황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아내는 그래서 늘 나에게 '나보다 더 살아야 해.'라고 생존 의지를 불어넣는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생각하며 껌껌하고 출렁대는 새벽 겨울 바다에 고깃배를 띄운다. 살아 낸 사람들은 살아진다.
6.
야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한국 프로 야구를 43년 동안 좋아라 하며 살았다. 야구는 우리네 일상과 비슷하다. 주 6일 동안 쉴 틈 없이 경기를 치른다. 투수가 괜찮으면 타격이 물방망이가 되고 타격이 터지면 투수가 무너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 난다. 열 번 중 세 번만 성공하면 되는 타격이고, 오 할의 승리로 절반의 성공을 이루는 가을 야구를 기대할 수 있다. 나를 희생해 팀을 살리는 대가로 개인 성적에서 제외해 주는 유일한 스포츠다. 특히 모든 결과는 결국 오랜 역사의 평균으로 수렴한다. 단지 부침이 있고 들고 나는 특출함이 있을 뿐이다. 특히 9회 초의 성적으로 결과가 나지 않는 불안정함이 야구의 특징이다. 내가 사는 민주주의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7.
야구는 평등을 지향한다. 코치나 감독 등 더그아웃에 들어가는 구성원들은 모두 유니폼을 입고 등번호를 단다. 영어로 야구 감독은 coach가 아니고 manager다. 이뿐인가 심판은 경기를 주도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judge나 referee가 아닌 umpire로 부른다. 규칙에 따른 진행을 도와줄 뿐이다. 민주주의가 이런 원리다. 특별함을 내 세운 법복을 입고 높은 단상에서 판결을 내리는 법관들의 모습은 반민주주의적이다. 이런 이들에게 나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야구에도 투구자동판독, 비디오판독이 도입되듯이 판결하는 판사들도 민주적 절차에 의한 견제와 통제가 필요한 요즘이다.
8.
4월을 잔인하다 말한 앨리어트를 막연히 미워한 적이 있었다. 4월의 첫날, 만우절에 거짓말 같이 태어난 사람에게 4월은 매우 유의미하다. 무언가 새로워지는 날이 시작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 번 4월에는 새로움보다 익숙함이 도래하기를 원한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풍경. 그 풍경 속에 나만의 수채화를 그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