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발의 가격표

고물가 시대, 뒤늦게 움직인 복지 시계

by 박 스테파노
※ 이 글은 오늘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게재됩니다.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2241

- 2026년 장애인의 날,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 - 한국 보장구 산업의 구조적 불임- 숫자로 환산되는 몸, 지워지지 않는 균형의 무게


스물여덟의 이준호 씨는 매일 아침 여섯 시, 눈을 뜨자마자 침대 옆 거치대에 손을 뻗는다. 가장 먼저 집어 드는 것은 신발이 아니라 의족이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지하철에 몸을 싣고, 사무실에 도착해 하루 종일 서서 회의를 이어간다. 퇴근길, 편의점에서 저녁거리를 들고 돌아온 뒤에야 하루가 조금 느슨해진다. 잠들기 직전, 그는 비로소 그것을 벗어 거치대에 올려둔다. 2년 전 오토바이 사고로 오른쪽 무릎 아래를 잃은 이후, 의족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묶는 가장 가까운 사물이 되었다.

그가 사용하는 의족은 탄소섬유로 만든 맞춤형 제품이다. 처음 맞출 때 1,200만 원이 들었다. 국민건강보험 급여 지원으로 296만 원의 90%, 약 266만 원을 돌려받았지만, 실제 부담은 900만 원을 넘었다. 얼마 전 재활병원 상담실에서 그는 새로운 선택지를 들었다.


"선생님, 요즘 AI 의족도 나왔다던데요,
혹시 그쪽은 어떤가요?"


상담사의 답은 짧았다.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어 방식의 AI 의족은 보행 패턴을 실시간으로 읽어 경사로나 계단, 고르지 않은 바닥에서도 낙상 위험을 크게 낮춘다. 그리고 가격은 — 최소 5,000만 원. 준호 씨는 잠시 고개를 끄덕인 뒤, 더 묻지 않았다.


신체의 일부를 잃는 경험은 말로 온전히 담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그 경험은 곧 숫자로 환산된다. 수백만 원, 수천만 원. 그리고 끝내 닿지 못하는 보조금의 한계. 시간은 흘렀지만, 이 구조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마이크로프로세서 기반 의족. Ottobock 제공


인공지능 의족이라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2024년을 전후로 기술은 빠르게 전진했다. 마이크로프로세서 기반 무릎 관절, AI 보행 예측 시스템, 신경 인터페이스 연동 제어까지. 한때 연구실에 머물던 기술이 시장으로 내려왔다. 독일 오토복(Ottobock)은 AI 보행 최적화 시스템을 적용한 제품을 출시했고, 보행 적응 기간을 20% 줄였다는 임상 보고를 내놓았다. 유타대학교 바이오닉 공학 연구소는 ‘유타 바이오닉 레그’를 선보이며 상용화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무릎과 발목, 발가락 관절을 통합한 이 의족은 약 3킬로그램으로, 기존 제품보다 절반 가까이 가볍다.


하지만 사용자가 마주하는 현실은 다르다. 바이오닉 의족과 의수의 가격은 여전히 8,000달러에서 10만 달러 사이. 한화로는 약 1,200만 원에서 1억 5천만 원에 이른다. 그 사이에 놓인 마이크로프로세서 무릎 관절 제품들, 이를테면 오토복의 C-Leg는 4만~5만 달러, 최고급 모델 게니움 X3는 10만 달러를 웃돈다. 예전에 말해지던 ‘6천만 원, 7천만 원’이라는 가격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멀어진 느낌에 가깝다.


몸은 회복을 향해 나아가지만, 숫자는 그 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한 사람의 하루는 다시 조용히 시작된다.



늦게 따라오는 제도, 먼저 닳아가는 몸


한국의 보장구 급여 체계는 2023년, 16년 만에 인상을 단행했다. 대퇴 의족 실리콘형 기준으로 5년마다 최대 296만 원까지 지원된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그 90%를 받을 수 있다. 숫자만 보면 분명 나아진 장면이다. 그러나 시장은 다른 속도로 흘렀다. 오랜 시간 누적된 물가 상승조차 온전히 반영되지 못했고, 빠르게 진화한 의족의 세계를 정책은 충분히 따라가지 못했다.


이번 인상은 장애계가 오래 기다려온 변화였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기술은 가볍고 정교해졌다. 탄소 섬유와 전자 제어식 구조가 일상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지원금은 2005년의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기준액이 296만 원으로 오른 지금, 그것은 첨단 기술의 가치를 반영한 수치라기보다, 겨우 끌어올린 최소한의 바닥선에 가깝다.


겉으로 보면 국가는 비용의 90%를 책임지는 듯 보인다. 그러나 현장의 감각은 다르다. 일상을 무리 없이 견디기 위해 필요한 고사양 의족은 수천만 원에 이른다. 기준액을 넘는 순간, 나머지는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기준액 내 90% 지원’이라는 문장은 저가형 제품에만 유효하다. 다시 걷고, 다시 일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높은 문턱이 남는다.


첨단의족 전개도. 조선일보 제공


의족은 소모품이다. 매일 몸과 맞닿아 무게를 버틴다. 그 수명을 일괄적으로 5년으로 정하는 일은, 각기 다른 몸의 리듬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행정의 편의에 가깝다. 활동량과 신체 변화는 사람마다 다르다. 18년 만에 오른 금액만큼, 지급 주기도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달리기 전용 의족, AI 보행 제어 장치, 신경 연동 소켓 — 이 장비들은 여전히 제도의 바깥에 머물거나, 포함되더라도 지원은 일부에 그친다. 5년마다 천만 원을 넘는 의족을 바꿔야 하는 사람이 아흔까지 살아간다면, 평생 1억 원 이상을 감당해야 한다. 이 계산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더 깊은 문제는 따로 있다. 보조금 체계가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의족이 ‘소모품’으로 남아 있는 한, 그 교체의 주기마다 반복되는 부담은 개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 사이에서, 몸은 조금씩 먼저 닳아간다.



기술은 앞서가고, 제도는 뒤에 남는다


기술 벤처의 풍경은 분명 달라졌다. 영국의 오픈 바이오닉스(Open Bionics)는 2025년, 방수와 무선 충전을 갖춘 의수 ‘Hero Pro’와 ‘Hero RGD’를 내놓으며 영역을 넓혔다. 이들이 오래 붙들어온 명제 — "기존 바이오닉 의수 가격의 5분의 1" — 는 여전히 유효하다. 3D 프린팅 기반 맞춤 제작도 더 정교해졌다. 같은 해 9월, 미국 메디케어는 3D 프린팅을 보철물 소켓과 의지의 공인 제작 방식으로 승인했다. 보험이 기술을 인정하는 순간, 접근성은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그러나 공동창업자 조엘 기버드는 선을 그어 말한다.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의료보험 체계다. 진정한 접근성 개선은 기술적 혁신이 아닌 제도적 변화에서 온다."


일본의 BionicM도 발걸음을 재촉한다. 2025년 1월, 미국 버지니아에 자회사를 세우며 북미 시장에 들어섰다. CES 2025에서는 실시간 보행 적응 기술을 탑재한 ‘Bio Leg’로 혁신상을 받았다. 이들이 보여주는 길은 분명하다. 첨단 기술, 사회적 가치,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 세 요소가 서로를 떠받친다.


한국의 장면은 다소 정적이다. 보일랩스처럼 국산화를 시도하는 기업이 있지만, 시장의 크기와 경직된 급여 체계가 발목을 잡는다. 절단 장애인을 위한 보장구 시장은 위험해서가 아니라,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은 채 방치된 영역에 가깝다. 반려동물 의족과 보행 보조 기기에는 투자가 몰리지만, 사람의 다리를 다루는 기술에는 좀처럼 이름이 붙지 않는다.


오픈 바이오닉스(Open Bionics)가 2025년 선보인 ‘Hero Pro’와 ‘Hero RGD’는 단순한 신제품이 아니다. 기술이 어떻게 대중적 접근성과 결합해 하나의 문화가 되고, 사업으로 자리 잡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2025년 9월 미국 메디케어(Medicare)의 3D 프린팅 공인은, 제도가 기술을 어떻게 끌어안아야 하는지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그에 비해 한국의 풍경은 여전히 건조하다. 2023년의 급여 인상 이후에도, 국내 기술 벤처 씬에서 인간을 위한 의족은 외면받는 분야로 남아 있다.


어린이가 오픈 바이오닉스가 만든 로봇 팔인 '히어로 암'을 착용하고 있다. 오픈 바이오닉스 제공


첫 번째 이유는 구조에 있다. 보장구는 여전히 복지의 틀에 갇혀 있다. 오픈 바이오닉스(Open Bionics)의 설립자이자 CEO인 조엘 기버드(Joel Gibbard)의 말처럼 가격을 정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보험 체계다. 한국의 건강보험은 이를 의료의 연속이 아닌, 일회성 지원으로 본다. 대퇴 의족 기준액 296만 원은 시장을 떠받치는 바닥이 아니라, 사양을 제한하는 천장으로 작동한다. 기업이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들여 새로운 로봇 의족을 만들어도, 고정된 급여 안에서는 회수할 길이 없다. 결국 산업은 혁신보다 유통에 가까운 형태로 머문다.


두 번째는 시장의 기울기다. 2026년 현재, 반려동물 산업은 거대한 규모로 확장됐다. 펫테크라는 이름 아래, 맞춤형 의족과 휠체어에 수십억의 투자가 몰린다. 반면 사람의 의족은 투자에서 멀어진다. 반려동물 시장은 비보험 고수익 구조이고, 인간의 의족은 통제된 저수익 구조라는 계산이 작동한다. 기술이 인간의 결손보다 수익의 용이성에 먼저 반응하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화려한 휴머노이드에 시선이 쏠리는 동안, 누군가는 여전히 보도의 턱 앞에서 멈춘다.


세 번째는 연결의 부재다. 일본의 BionicM이 ‘Bio Leg’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초 연구가 보험과 만나 데이터를 축적하는 구조가 있다. 한국은 뛰어난 로봇 공학 인재를 갖고도, 이들이 보장구 산업으로 향할 길이 좁다. 제작은 여전히 장인의 손에 머문다. 이를 데이터로 바꾸고 표준화하려는 시도는 규제와 낮은 수익성에 막힌다. 3D 프린팅과 AI 보행 분석 기술이 개발되어도, 현장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반복된다.


결국 질문은 다시 돌아온다. 보장구를 시혜적 복지가 아니라, 인간의 기능을 회복하고 사회적 가능성을 넓히는 산업으로 볼 수 있는가. 2025년 미국 메디케어의 결정처럼, 새로운 기술을 제도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단순한 금액 인상을 넘어, 성능과 난이도에 따라 보상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기업이 이 길에 들어설 이유가 생긴다.


연민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러나 제도는 방향을 만든다. 기술 강국이라는 말이 공허하지 않으려면, 가장 절실한 몸부터 응답받아야 한다. 296만 원이라는 숫자가 더 이상 벽이 되지 않을 때, 그때서야 기술은 인간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연민의 바깥에서, 함께 걷는 기술


장애인 보장구를 복지의 주변으로 밀어내는 시선은 두 겹의 손실을 낳는다. 당사자는 제도의 빈틈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소모품을 홀로 감당한다. 사회는 그와 동시에, 거대한 기술 시장을 스스로 외면한다. 독일, 아이슬란드, 미국, 일본 기업들이 로봇 보철 시장을 이끄는 동안, 한국은 여전히 소비자의 자리에 머문다. AI와 피지컬 로봇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그 기술이 인간의 신체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작 핵심을 비껴선 셈이다.


의족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다. 눈을 뜨자마자 착용하고, 잠들기 직전에야 벗는다. 신체의 일부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것이 5년마다 교체해야 하는 고가의 소모품이라면, 그 비용을 개인에게만 맡겨두는 구조가 과연 정당한지 먼저 물어야 한다. 그 다음에야 기술과 산업을 말할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떨어져 있지 않다.


이제 의족은 "걷지 못하는 자를 돕는 도구"라는 오래된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늘의 보장구는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니다. 개인의 이동을 넘어, 사회 속에서 말하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떠받친다. 이른바 ‘기술적 시민권(Technical Citizenship)’의 한 축이다. 2023년 296만 원으로의 인상은 출발선일 뿐, 도착점이 될 수는 없다.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타인의 도움 없이 착용할 수 있는 웨어러블 로봇 ‘워크온슈트 F1′을 착용한 모습. KAIST 제공


더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다. 보장구는 예산을 소모하는 장치가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재생의 장치라는 점이다. 지원이 확대되면 사회 참여율이 높아지고, 장기적으로는 부양 부담이 줄고 세수는 늘어난다. 이 단순한 순환을 외면한 채 기준액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일은, 결국 국가가 스스로의 인적 자원을 놓아버리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얼마를 더 줄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까지를 인간의 기본으로 볼 것인가. AI와 로봇이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려는 시대에, 자신의 몸을 보완하려는 요구를 외면하는 일은 시대의 모순에 가깝다.


매년 4월 20일을 기념하는 수많은 말보다 더 절실한 것은, "내구연한 5년"이라는 압박 없이 자신의 다리를 믿고 일터로 향할 수 있는 평범한 하루다. 연민은 멀리서 머문다. 공생은 가까이에서 나눈다. 비용을 함께 짊어질 때, 기술은 비로소 사람의 편에 선다.


제대로 된 산업 생태계와 현실적인 급여 체계가 갖추어질 때, 기술은 차별하지 않는 신체를 만든다. 그 신뢰 위에서만 기술은 인간의 얼굴을 얻는다. 연민은 쉽다. 공생은 어렵지만 가능하다. 그리고 산업은, 그 가능성을 가장 오래 지속시키는 방식이다.


이전 06화느림의 반격 - 탈디지털, 멈춤으로 각성하는 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