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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란, 절망을 마주 볼 담대한 용기

돈 룩 업 (2021, Don't look up)

by 박 스테파노
천문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 키(제니퍼 로렌스)는 새로운 혜성을 발견하고, 기꺼이 자신의 이름으로 명명한다. 그러나, 지도 교수 랜들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궤도 검증을 하던 중, 혜성이 지구와 직접 충돌하는 궤도에 들어섰다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다.

곧, 지구방위사령부와 NASA 등에 알리고 대통령 면담을 우여곡절 끝에 잡게 된다. 하지만 지구를 파괴할 에베레스트산 크기의 혜성이 다가온다는 엄청난 소식에도 아무도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다. 결국 지구 역사상 최대 비극의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미디어를 이용하기로 나선 두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은 "재갈"뿐이다. 지구 멸망 위기보다 중간선거가 중요한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과 그녀의 아들이자 비서실장 제이슨(조나 힐)과 그의 추종 보수 언론들은 '음모론'으로 대응하고, 유명 방송인 브리(케이트 블란쳇)와 잭(타일러 페리)이 진행하는 인기 프로그램 ‘더 데일리 립’ 출연까지 이어가지만 성과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혜성 충돌까지 6개월 남은 시간은 무척 짧게만 느껴진다. 뉴스와 정보는 쏟아지고 사람들은 온갖 미디어에 빠져있는 시대이지만 정작 중차대한 뉴스는 대중의 관심이나 기득권의 이해관계에서도 우선순위가 밀려난다. 무엇이 문제인지, 하늘만 올려 보아도 알 수 있는 진실을 모두 고개를 숙이고 외면만 하는 것 같다. 지구는, 인류는 살아남게 될까?
공식 포스터


재난 블록버스터가 아닌 정치 풍자 코미디 소동극


지구에 혜성이 떨어진 다는 천재지변 격의 재앙 스토리는 <돈 룩 업>이 처음은 아니다. 25년 전, 1998년에 결이 다른 두 영화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가 금세 떠오르고, 최근 <그린란드> 또한 지구와 혜성의 충돌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 '천재지변'에 의한 불가항력의 사건과 혼란, 그 속에서의 분투와 해결 과정 등의 전형적인 스토리 텔링은 익숙하다 못해 지겹기도 하다. 또한 최근 미국 영화는 천재지변에 의한 종말적 재앙의 이야기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 9.11 테러 이후의 트라우마가 여전하고, 전체적으로 우경화된 정치 지형과 민심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기에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개봉한 <돈 룩 업>은 여러 모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 비록, 재앙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한 '블랙 코미디 소동극'의 장르 형식으로 에둘렀지만 말이다.

<딥 임팩트>, <아마겟돈>


영화 <돈 룩 업>은 예상과 달리 뻔하지 않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재앙에 닥친 지구가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한다는 '희망'같은 것을 주지 않는다. 강한 리더와 숭고한 영웅이 나타나 온몸을 던져 인류를 대신해 죽는 일도 없다. 하물며, "종말"이라는 세상 끝에 서 있는데도 진솔한 반성, 용서, 화해, 화합, 하물며 권선징악적 결론도 없다. 스포일러가 되어서 폭로하자면, 지구는 망해 버린다. 미련이고 아쉬움을 끼워 낼 틈도 없이 그냥 망한다. 코미디지만 매우 디스토피아적이고, 소동극이지만 현재 하는 실제와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어색함 없이 다가온다. 아마도 우리는 "재앙"속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코미디인지 현실인지 가늠이 안되는 존재 "정치인"


어디서 많이 본, "정치가 그렇지 뭐"


영화에서는 혜성 충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분투와 노력이 좀처럼 시원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대통령은 3주 후의 중간 선거가 더 급박한 의제이다. 그 의제를 위해서는 결정의 손바닥 뒤집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성적 추문을 밀어 내기 위해, 며칠 전 내쳤었던 "혜성 충돌 위기 대책"을 다시 집어 들고, 국민들 앞에 생방송으로 결연한 "위기상황 선포"를 한다.

오늘만 사는 정치인과 논쟁금지; 지들 말만 한다. 늘


대통령과 그녀의 정치 기반인 보수 정치 진영, 그리고 그것을 통해 호가호위하는 무자격 "핵관(핵심 관계자)"들은 위기 극복 따위는 사실 관심이 없다. 대통령 엄마의 등에 타고 비서실장 실세가 된 어중간한 바보 아들이나, 주치의 인연으로 NASA의 수장이 된 마치과 전문의에겐 '내 자리'와 '내 것'의 상실이 더 큰 위협이니까. 이들 정치인에겐 당장 내일의 투표와 몇 주 후의 정치적 지지의 경향 추이가 지구의 종말보다 중요하다. 이들의 생명은 '정치 생명'이 전부이니까요. 이슈는 이슈로 덮어 버릴 뿐이다. 정치인들은 "늘 오늘만 사는 법"이다.

정치인은 늘 20분 안에 답을 달랜다


"단약"만 있으면 약방이 아닌 사탕가게- 언론은 또 뭐


그럼 이 인류 종말의 위기라는 엄청난 문제를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파할까? 이럴 때 전통적이고 모범적인 영화라면 '언론'을 떠 올릴 것이다. 그러나, 앞선 언급처럼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이지만, 그 사건과 내러티브는 매우 강한 '핍진성'을 지니고 있다. 언론? 신문과 방송이 진실을 대변해서 위기의 돌파구를 마련할 메시지 허브가 될 수 있을까? 아니다. 이미 언론은 "정론"이기를 포기했고, 최소한의 "위기 대응 메시지 센터"의 기능도 수행 못할 지경이 되었다. '호모 카피엔스'라는 비아냥에도 그저 받아 쓰고, 베껴 말하고, 데스크와 기득권의 의제 조정은 충성해야 할 유일한 목표가 된 곳이 언론 아니던가.


약도 달아야 먹기 좋지요.



유명 뉴스쇼의 진행자 브리와 잭은 거침없고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한다. 뉴스와 보도라는 게 더 이상 무거워선 안된다고 말이다. "지구 종말 위기"라는 엄청난 뉴스 대신, 유명 아이돌 가수의 공개 불륜 사과가 클릭과 조회를 불러오고, 여성 앵커 브리는 패널로 나온 민디 교수의 허벅지를 더듬으며 추파 던지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뭣 같은 상황에 욕 한 바가지 퍼붓고 떠나는 케이트에게 브리는 '비디오 트레이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만 던진다. 뉴스와 콘텐츠의 내용이, 그것이 가져올 세상에 대한 파급과 영향은 이미 "언론 어젠다 세팅"에서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돈이 되는, 그러기 위해 관심을 끄는 '자극'이 일 순위가 된다. 일간지도, 주간지도, 지상파도, 케이블도 그러한데, 하물며 SNS를 넘나드는 관심 유발자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느 나라 이야기인지 잠시 헷갈린다. 또한 놀랍다.

약도 달아야 먹기 좋텐다


기업가 정신? 믿지 마세요. 물지도 모릅니다.


낯 설지 않은 이야기에 웃고 짜증이 난다. 문제는 이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IT재벌로 나오는 피터(마크 라이런스)의 등장과 존재는 뒷 목을 잡게 만든다. 스티브 잡스, 제프 베이조스, 앨런 머스크에 저커버그와 기타 등등을 섞어 놓은 피터는 "지구 종말"의 위기를 자신의 최대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기업 "BASH"의 첨단 기술로 대안적 해결이 가능하다 주장한다. 혜성에 있는 각종 광물은 140조 달러나 되는 가치가 있고, 희토류, 이더륨 매장국인 중국에 흰소리 안 해도 된다는 '기적의 논리'를 피며, 국가 총수권자의 결정을 바꾼다(물론 피터가 대통령의 최대 후원자라는 것이 더 큰 작용이 됩니다). 그렇게 마지막 기회인 폭파를 통한 궤도의 수정은 물거품이 된다.

IT재벌 피터의 모습에서 여럿이 보인다


"기업"은 태생이 이기적이고 본연적으로 위악스럽다. 절대 선할 리가 없는데, 대중들은 눈을 가리고 '기업의 공헌'을 무작정 기대한다. 공범자가 사면되었으니 종범도 풀어 달라고 한다. 그럼 그들이 이 사회를 위해 무언가 "짠"하고 내어 줄 것만 같다. 과연 그럴까? 남들의 위기와 불행을 자신의 '사업 기회'로 삼는 게 현대 기업의 생리이다. 온갖 플랫폼 유니콘들, 이익은 2배가 되었는데 채용은 10%도 늘리지 않는 재벌기업들. 그들이 여러분 편이 될 리가 없다.

자꾸만 이 회사들이 떠 오른다


Look up! 고개 들어 문제를 보라


혜성을 둘러싸고, 위기와 전격 대응을 원하는 과학자와 지지세력 "Look up"과 정치적 기반의 회복과 더 큰 부를 원하는 기득권 "Don't look up"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공포와 의심은 늘 있는 것"이라며, 단상에 오른 대통령의 아들 비서실장은 지금의 정치를 이렇게 해석하며, 외친다.

대통령 아들이자 비서실장은 국민들을 이렇게 부릅니다. "멍청한 촌놈들"


여기에 우리 같은 상류가 있고
거기에 당신들과 같은 노동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기에 저들(지식인과 좌파)이 있죠.
우리는 저들이 필요해요. 왜냐?!
바로 당신들과 우리를 같이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해피엔딩인지 비극인지 판단 어려운 잔상을 주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지구가 망하고 힘없는 이들은 가족과 마지막 식사로 역사를 마무리하는데, 왠지 그리 서글프지 않다. 22,470년 뒤에 냉동 항해 우주선으로 탈출한 부자와 권력자들, 그들이 필요에 의해 뽑아낸 사람들은 '골디락스 존' 어딘가 모를 행성에 내린다. 그런데, 그들이 부럽지는 않다. 이야기의 가정을 능가하는 진실, 웃음을 덮는 서글픔, 희망을 꺼내 들 수 없는 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부정할 수 없다. 슬프지만 웃음이 나오는 "웃픈" 것이 이 세상이라 말하는 듯 말이다.



No math? All math!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메릴 스트립에 티모시 살로메 까지 엄청난 캐스팅이어도, <돈 룩 업>은 미국 흥행 시장에서 고전했다.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탄탄한 구성과 위트 넘치는 세태 풍자의 블랙 코미디라는 평가와 SNL 단편 콩트들을 억지로 끼워 맞춘 것 같다는 혹평 등이 공존한다. 거기에 더해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재난과 위기에 직면하는 것을 미국인들이 매우 불편해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마주하고 응시하기보다는 장르로 설정으로 비틀곤 한다. 소동극 코미디나 시대를 특정할 수 없는 디스토피아 물 등으로 말이다.

캐스팅은 어마무시하다. 카메오까지


보수 우익에 대한 비판이라 미국에서는 흥행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생각이 다르다. 이미 "1인치의 언어 장벽"이 무너진 대봉쇄의 시대에 <오징어 게임>등의 선전은 고무적이었다. 미디어 콘텐츠의 평가 의미도 있지만 한국인의 세계관과 가치관의 인정이라는 문화 파급도 분명해 보인다. 이제 "얕고 에두른" 풍자와 비판의 "메타포 세상"은 와닿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최근 K-컬처의 흥행 이유는, 빈곤, 가난, 곤궁, 차별, 혐오, 집단 따돌림, 광신, 시기, 질투 등의 인간의 추악한 면을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소위 선진국, 그중에서 미국과 영국의 영화와 TV쇼에서는 위에 열거한 '불편한 것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의외로 한국에서는 대체로 호평이 일고 있다. 특히 다음 영화와 왓챠 피디아의 관객과 비평 전문가들의 호평 의견이 많다. 이 것은 아마도 한국의 정치 이슈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바로 중대 선거 중 하나인 '대선'을 앞둔 우리의 눈에는 모든 요소들에서 함의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지우고 싶은 대통령과 자격이 없는 그들의 측근, 과학자들의 경고를 MIT가 아닌 미시간 주립대 연구진이 내어 놓자 경시하기 까지 한다. 과학이고 기술이고 깜깜이 눈인데 정책과 공약은 창대하다. 철학도 없고 과학도 없는 곳이 "정치판"인 것이다.

영화 내내 떠오르는
No math.
No. All math.


정치 영역으로 들어가는 순간 '과학'과 '수학'은 필요 없다는 경고에, 민디 교수는 "모든 것이 수학"이라고 항변한다. 영화 끝장면에 느낄 수 있는 '티끌'같은 인간의 존재는 자연의 섭리와 그것을 설명하는 과학과 수학 앞에 미려할 뿐이다.

바보야. 코딩이 아니라 수학이 문제야!


희망이란 절망을 담대히 응시하는 순간부터


하늘의 노여움으로 유황의 불기둥을 맞아 망해 버린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는 성경을 읽지 않은 이들에게도 익숙하다. 뒤 돌아본 아내가 소금기둥이 되어 버린 것 이외에 이야기에 중요한 부분을 늘 간과한다.


“소돔 성읍 안에서 내가 의인 쉰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 그곳 전체를 용서해 주겠다.”

-창세기 18장-


신은 "의인 10명"까지, 아니 단 한 명 까지, 소돔, 고모라의 존립 조건을 디스카운트해 주지만, 결국 열 명의 의로운 사람을 찾지 못한 채 두 도시를 멸하게 된다. 영화는 절망만 가득한 이 세상에서 "의로운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지도 모른다. 그 의로운 사람은 누구일까? 그도 당신도 아닌 "내"가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미 망해 버린 이 세상에서도 "담대하게" 마주하라고 주문하는지도 모른다.


희망은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바람이다. 희망은 어두 컴컴한 절망이라는 위기를 ‘담대하게’ 이겨낸 사람들에 주어지는 선물일 것이다. 희망은 불안한 어제를 완전한 내일로 이어주는 오늘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 희망은 정치의 참여로, 직업이라는 실천으로, 그리고 소중한 일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담대하게 절망을 마주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돌아" 보지 말고, "마주" 보라, 담대히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가족과의 시간? 광란의 파티? 못다 한 복수? 신에게 기도? 무엇이 되었든 한 가지는 잊지 않았으면 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듯이,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찾아내는 것,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의인"일 것이다. 그 의인은 아마도 담대하게 문제와 위기를 똑바로 응시하며 솟아날 구멍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담대해질 용기"가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이미 '아수라'같은 재난 중일지도 모르니까. 부당함과 부정한 것에 의심하고, 분노하고, 비판하는 일, 그리고 참여하는 일, 그것이 담대한 의인의 길이 아닐까 한다.


영화에서 과학자들이 말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단, 실현되기까지는
고민과 궁리 끝엔 "실행"이 와야 한다

사족)

영화 제목 don't look up도 생각을 해 보면, 재미있다. look up이라는 영어 표현은 참 다채롭다. "올려 본다"라는 뜻 외에 "응시하다", "살피다", "존중하다", "향상하다"라는 뜻도 있다. 골프에서 "헤드업"이라는 표현도 "look up"이라고 표현을 많이 한다.

특히 스프레드시트(엑셀)에서 vlookup이라는 함수도 있습니다.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에서 미리 작성된 테이블로부터 필요한 항목을 찾는 데 사용되는 함수인데, 사실과 진실을 위한 데이터 확보에 참 유용하다.
두 사람의 연기는 "경이롭다"
* 카메오도 제법 나오니 찾아보시길
** 영화에 한국어와 한국의 스케치가 제법 나오니 이 지점도 재미로, 의미로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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