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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Oct 26. 2023

어떤날 - 고요한 울림, 조용한 파장

[너.들.이 01] 뮤지션들의 뮤지션, 이정표가 된 듀오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01 - 어떤날


지난 시간 속의 음악을 소환하는 일은 그저 '추억 여행'일 뿐이다. 그 이상의 의미를 붙여 놓아 괜스레 성급한 젊은이들의 심기를 건드릴 이유는 없으니까. 그 기억 속의 음악은 그 시절의 어떤 장소를 떠 올리게 해 주고, 그 장소 안에 있었던 누군가를 생각나게 해 준다. 반대로 공간과 사람에 대한 기억이 귓가에 자꾸 맴도는 음악을 소환하기도 한다. 귓가에 맴돈다 표현하지만 실상은 머릿속에 가득한 휴면 메모리 조각을 활성화하는 작동이었을 것이다.


내 지난 젊은 날의 음악들은 어느 순간 불쑥 찾아들어오곤 한다. 애써 해낸 의도된 기억이 아니라 부지 불식 간에 찾아든 멜로디와 가사에 주춤 당황하다가도 이내 기억들을 소환하게 되는 일은 신비롭다. 그 기억 속의 음악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너.들.이>는 이런 지나간 시간 속의 음악에 이야기를 씌울 것이다. 그 시간과 공간과 인물을 그려 내며, 들려주고 싶은 음악을 이야기로, 이야기로 전해 들은 음악을 결국 찾아 듣는 그런 기분 좋은 상상으로 적어 본다.



조용한 등장, 그러나 묵직한 영향


8090 시대의 대중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챕터 찻장은 <어떤날>로 정해져 있었다. 중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던 1985년과 86년 사이 겨울에 기타를 만났다. 기타를 손에 쥔 사연은 뜬금없었다. 사춘기가 짙어 가던 내게 모친이 지난 중간고사의 성적을 기말고사로 만회해 주면 원하는 것 하나를 사주겠다고 했다. 깊고 긴 생각 없이 "기타!"라고 답한 결과 내게 기타가 생겼다.


당시 통기타라 부르는 어쿠스틱 기타는 '독학'이 대세였다. '그깟 기타'를 배우기 위해 학원이나 교습에 돈을 쓰던 시대가 아니었다. 내게 기타 선생은 기타 사러 함께 동행해 준 앞집 사는 대학생형의 최초 2시간 수업, 그리고 대한민국 만인의 기타 교본 '이정선의 기타 교실'이 전부였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비기, 성당 지하 교리실에 죽치고 있었던 당시 노래 좀 한다던 한 학년 위의 형들이 있었다. 쉬이 가르쳐 줄 일 없는데, 그들의 연주를 열심히 머리로 외워 집에 돌아와 가물대는 기억을 끄집어내어 채보하는 일이 레슨이자 자습이 되었다.


그때 기타 실력을 한 뼘 이상 늘려 줄 음반을 만났다. 앨범 재킷에는 뮤지션의 얼굴대신 왼손으로 쓴 것 같은 크레파스 글씨만 있었다. "어떤날 1, 1960. 1965"라는 글씨만 있었던 <어떤날> 1집이었다. 당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 음반의 곡들에 대한 채보와 연주는 그야말로 '고수 인정'의 레벨테스트가 되곤 하였다.

어떤날 1집 앨범 재킷 (사진=예스24)


1986년 데뷔 당시 20대인 청년 듀오의 등장은 조용하기만 하였다. 방송 출연, 라디오 소개 한번 없이 콘서트도 없던 이 뮤지션 듀오의 등장은 그야말로 고요했다. 다섯 살 터울의 조동익과 이병우는 그때까지의 포크 듀오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베이시스트이자 편곡자인 조동익과 언더에서 이름난 약관의 기타 천재 이병우는 가수인지, 세션인지, 작곡가인지 구분 어려운 모습으로 잔잔한 충격을 주었다.



고요한 혁명가들


<나뭇잎 사이로>, <제비꽃>으로 유명한 포크 가객 조동진의 친동생인 조동익은 기타리스트 이병우와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고 두장의 정식 앨범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의 등ㆍ퇴장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의미가 되었다. 장르를 규정 불가하게 만든 이 듀오의 음악은 향후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고요한 울림'과 '고요한 파장'이 그들의 장르라고 한 김학선 평론가의 말처럼, 그들의 음악은 고요하기 끝이 없다. 그 고요함이 지금 대중음악 작곡, 편곡, 작화의 큰 줄기를 만들었으니 이들을 "음악인들의 뮤지션"이라는 찬사는 당연지사일지도 모른다.


유희열은 무인도에 간다면 들고 갈 것이 이 어떤날의 1,2집 앨범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김현철도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어떤날의 앨범 때문이고, 데뷔하자마자 떼쓰고 부탁해서 <어떤날 2집>에 키보디스트 세션으로 참여한 것은 음악계에서 유명한 일화이다. 한국의 대중음악의 질적, 양적 분기점을 말할 때 유재하와 함께 늘 언급되는 뮤지션이 어떤날이다. 일상의 시어를 가사로 쓰고, 편곡과 후반 작업인 리코딩에서 한 단계 도약한 작업을 수행했고, 꽉 채우지 않아도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현해 낸 결과를 내었다. 후배 뮤지션들에게 명확한 이정표를 주었던 것이다.

어떤널 2집에 끼워진 사진, 둘의 사진은 정말 없다 (사진=알라딘)


가난과 부족을 벗어난 시대였다. 1980년대는 그 도약의 시간에 청춘은 늘 불안했다. 그 불안한 길고 긴 겨울밤 같은 날들에 어떤날의 존재는 특별했다. 어떤날 듀오들은 자신들이 받고 자란 음악적 태교인 퓨전 재즈, 포크, 록이라는 장르를 묘하게 골고루 섞어 담았다. 그들의 장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늘 곤란하다. 영화에서 봉준호의 장르가 무엇이냐 단답을 요구하는 격이다. 모든 장르가 들어 있으면서도 어떤 장르도 아닌 것이 어떤날의 음악이다.


차라리 조금 억지스럽게 말한다면 그들의 장르는 ‘고요한 전율’이나 ‘고요한 파장’ 같은 것들이었다. 그들은 사춘기 소년 같은 감수성으로 “창밖에 빗소리에도 잠을 못 이루는 너, 그렇게 여린 가슴”이라 노래하기도 하고, “너무 아쉬워하지 마, 기억 속에 희미해진 많은 꿈”이라며 조용조용 위로해주기도 하지만, 그 조용한 소곤거림 속에는 말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힘 같은 것들이 담겨있었다. - 평론가 김학선 -


이전의 음악이 '노래'가 중심이었다면 어떤날의 음악은 음악 전체가 유의미로 가득하다. 상투적 표현이 아니면서도 일상의 언어도 아닌 모더니즘 시어가 모든 소절이 되었고, 작고 낮은 보컬 믹싱에도 그 가사는 긴 밤을 패는 젊은 영혼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기타가 중심을 잡지만 다양한 음률이 곡의 전반의 분위기를 이끌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조응을 전달한다. 기승전결의 뻔한 상승구조 없이도 가슴속의 무언가를 쥐었다 놓았다 하는 그들의 음악은 금세 대중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해체 이후의 약진, 명성, 그리고...


이 듀오가 전설이 된 이유는 공연 한 번, 방송 출연 한 번 없는 신비주의 탓이 아니다. 1989년 2집을 내고 조용히 해체한 그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대가'의 준비를 마치고 나타났다. 미소년의 미성 같은 보컬로 햇살이 아프도록 따가운 날과 비가 슬프도록 쏟아지던 날을 부르던 조동진은 '편곡의 마스터'가 되었다. 1990년대 음악 중 그의 편곡을 거치지 않은 음악과 아닌 음악으로 나뉘었다 해도 넘치는 말이 아니다.


형 조동진과 '하나음악'이라는 기획 레이블을 만들고 수많은 명반들을 프로듀싱했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는 그가 뮤지션으로 발표한 앨범 중 세 작품(어떤날 1/2집, 조동익 1집) 모두 목록에 있다. 또한 그가 프로듀싱 및 세션으로 참여한 앨범들(장필순 5집/6집, 안치환 4집, 김현철 1집, 우리 노래전시회 1집, 시인과 촌장 3집, 김광석 4집/다시 부르기 2) 역시 포함되어 있다. 형과 동생과 함께 다락방에 있던 낡은 턴테이블 전축을 틀고 놀며 어린 시절부터 '음악'이라는 세례를 받고 자란 영재의 업적들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긴 시간 후에 그의 아내 정필순의 응원으로 제주에서 음악을 이어가는 그의 말년도 그의 목소리답다.

조동익, 장필순 부부 (사진=한겨레)


기타리스트 이병우는 사실 개인적으로 아픈 손가락의 뮤지션이다. 한 때 그의 기타를 들으며 기타리스트를 꿈꾼 적도 있었고, 모든 소년의 꿈을 꺾고 사회인이 되어 부러 그의 기타 가게에 찾아간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의 기타는 무어랄까 그의 몽환적이고 낮지만 여린 음성과 닮아 있다. 1집 <너무 아쉬워하지 마>의 퓨전 기타의 선율, <하늘>의 청아한 수줍음이 있고 <그날> 같이 하드 하게 찌그러진 디스토션의 폭주도 있다. 사람의 모든 일상의 감정이 있다.


그룹 이름처럼, 이병우는 '어떤날' 활동을 중단하고 갑자기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이후 들려온 소식은 더 놀라웠다. 빈 국립음악대학에 진학하여 대학에서 클래식 기타를 전공, 수석 졸업했다. 이후 미국 존스홉킨즈대학 피바디 음악원에서 전문기타 연주자 과정을 거쳐 1998년 예일 콩쿠르에서 클래식 기타 연주자로는 처음 우승하는 역사를 쓰기로 했다. 그리고, 연주곡만 담긴 솔로 1집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항해>를 내고 음악계에 충격을 던졌다. 그 속에 있는 <새>라는 곡은 전설의 어쿠스틱 독주곡이 되었고, '기타-신시사이저'를 이용한 곡들은 이병우 보유국임이 자랑스러워지기도 했다. 기타리스트 입장에서 말이다.


이후 유명 영화음악가의 길로 들어섰다. 1996년에 영화 <그들만의 세상>의 음악감독을 시작으로 <마리이야기>, <장화, 홍련>,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왕의 남자>, <호로비츠를 위하여>, <괴물>, <그놈 목소리>, <놈놈놈>, <마더>, <해운대>, <국제시장> 등의 인지도 높은 국내 영화의 음악을 총괄하였다. 보통 넓은 스펙트럼을 기반으로 크로스오버의 그의 음악이 대중문화 곳곳에 스며든 것이다. 그리고,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80위인 양희은의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 '양희은 1991'을 프로듀싱했다. 타이틀곡은 바로 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이고, 훗날 아이유가 리메이크해서 유명해진 <가을 아침>도 이병우의 곡이다.

기타를 칠 때가 가장 빛나는 "기타 중독자" 이병우 (사진=지니뮤직)


2013년에는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개폐막식의 예술감독을 맡았다. 이것이 사달이 되었다.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에 나경원 의원의 딸 김 모 양의 부정입학 여부와 관련한 논란이 발생하였다. 나경원 의원의 딸은 잘 알려진 대로 다운증후군 장애를 지니고 있고, 이런 연유로 지금까지 스페셜올림픽 위원회를 사적 독점하는 오해와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사건 이후 플레이리스트에서 그의 음악을 찾아 듣기를 주저했다. 음악이 무슨 죄이겠냐마는, 추앙하던 그 음악마저 잡념이 찾아들어 듣기에 참 힘들어졌다.



길고  겨울밤, 초록색 웃음을 찾아


인생 음악을 이야기하라면 주저 없이 어떤날을 꼽는다. 그들의 노래 <그런 날에는>에 들어 있는 가사처럼 "길고 긴 겨울밤" 같은 날들이 있었다. 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자유롭지 못했던 내 억울한 시간에 유일한 위안이 되는 일이 어떤날의 선율들이었다. 머릿속에 기타 지판을 그리고 코드를 진행하고 음 하나하나 연주하는 그런 상상이 그 길고 긴 겨울밤 속에 "초록색 웃음"을 찾아내는 "내 마음속에도 따뜻한 바람"이 부는 희망을 주었다.


37년 동안 내 가슴에 남은 그들의 음악 중 추리고 추려 5 곡만 나누어 볼까 한다. 가장 대중적인 2집의 <출발>이 제외된 점은 스스로도 놀랍다.



1. 너무 아쉬워하지 


너무 아쉬워 하지마
기억속에 희미해진 많은 꿈
우리의 지친 마음으론
그 전부를 잡을순 없잖아 없잖아


B면 첫 번째 곡 <너무 아쉬워하지 마>는 위로곡이다. 애써 힘내라고 하는 염장의 위로가 아니다. "길 모퉁이 조그만 화랑에 걸려있던 그 그림처럼, 여행길에 차창밖에 스치던 풍경처럼" 그냥 그대로 기억 속에 남겨 두는 것이 삶이라며 위로한다. 이 조용한 위로 끝에 묘하게도 힘을 받는다. 이 위로 덕에 기타를 잡았다. 첫 서주의 기타 전개를 채보하는데 한 달이 걸렸고, 아직도 첨부터 끝까지 연주가 가능한 곡이다. 볼륨을 높이고 기타의 한음 한음을 들어 보자.


https://youtu.be/fwTb8-lsRTc​​



2. 취중독백

제법 붙은 뱃살과 번쩍이는 망토로
누런 이를 쑤시는 나의 고향 서울


어떤날의 1집을 2집 보다 더 좋아한다. 2집은 좀 더 힘이 들었다 할까. 그 풍성함이 소격효과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2집에 1집의 여운이 남아 있는 <취중독백> 은 하이라이트다. 이병우의 스산하고 몽환적인 음성의 이곡은 후반에 재즈 기타 솔로가 진행되는데, 무려 8분의 긴 노래이다. 가사는 서울을 고향으로 한 사람의 서울 노스탤지어를 부른다. 중간에 삽입된 아리랑이 어색할 틈이 없다. 술을 먹지 않아도 취할 수 있는 노래가 있다면 이 곡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https://youtu.be/eYxMsJZ2pxs​​



3. 오래된 친구

내겐 아주 오래된 기타가 있지
내가 그를 찾으면
비틀 술 취한 목소리로 내게 다가와 나
한번 가보지 못한 뽀얀 세상 데리고 가지


자유를 구속받던 시절이 있었다. 청춘에 한 번, 중년에 한 번. 음악도 맘대로 들을 수 없었던 시간에 입에 붙여 흥얼대던 노래가 <오래된 친구>였다. 마치 집에 두고 온 내 방 한구석을 그림 그리게 해주는 주문 같은 노래였다. 보사노바의 리듬은 생각과 달리 흥겹지 않고 애잔함을 준다. 신기한 경험이 되는 이 노래 이후, "빛과 소금"도 동명의 보사노바 곡으로 유명해졌으니 우연은 아닌 듯싶다. 지금은 멀어진 절친이었던 친구와 주거니 받거니 부르던 날이 저절로 떠올라 여전히 힘겨운 보사노바.


https://youtu.be/iVF4eanbvM8​​



4. 그날

수 없이 다짐하고 또 허물어온
푸르른 꿈 위해
오늘도 조용히 일어나 혼자 걷는 너에게
나는 이렇게 부르지
저 파란 하늘 위에 나는 법을 배우는 작은 새


임재범의 <비상>은 대표적인 다짐곡이다. <비상>이 고백으로 다짐을 한다면 어떤날의 <그날>은 내 곁의 동반자가 괜찮다고 응원하는 동반 다짐이다. 그 동반자는 곱씹어 볼수록 내면의 "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노래의 짧은 가사는 멈추고 기타의 독주가 시작된다. 이병우 기타 중 가장 좋아하는 부분인데, 조심스럽게 시작되는 기타는 마침내 표효한다. <비상>은 "날 수 있다"라는 용기의 다짐이라면, <그날>은 "나는 법을 알려 줄게"라는 희망의 다짐이다. 볼륨을 높이고 감기 걸린 기타의 쥐어짜는 다짐을 들어 보자.


https://youtu.be/3k6VUuCrcnY​​



5. 그런 날에는

길고 긴 겨울밤 그대의 한숨
오늘따라 창밖엔 아침이 더디오네
복잡한 이 마음을 텅비울수 있다면
좋은 시간들을 너와 많이 나눌텐데


한 편의 노래는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 노벨문학상이 있다면, 어떤날이 받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싱거운 생각이 드는 곡 <그런 날에는>이다. 정식 앨범이 아니라 <우리 노래 전시회>라는 옴니버스 프로젝트 앨범에 먼저 포함되었고, 이후 2집에 타이틀을 올렸다. "햇살이 아프도록 따가운 날"에 대한 묘사는 일상에 대한 찬가일지도 모르겠다. 해나 가고, 비가 오고, 바람 불고, 기차가 다니는 그렇고 그런 날이지만, 초록색 웃음을 찾아서 깨끗한 바람과 따뜻한 바람을 안고 싶은 일상의 위대함을 찬양한다. 한때 아이디가 "초록색 웃음"이었던 일상주의자의 주제곡.


https://youtu.be/hMt79zKl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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