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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Dec 10. 2023

글의 무게와 길이- 진실이 거짓에게 지는 이유

진실과 거짓, 그리고 장문 기피에 대해

사람들은 재미없는 진실보다,
위트 있는 거짓에 더 많은 점수를 준다.
두서없는 진실보다
논리적인 거짓에 고개를 끄덕이고,
침묵하는 진실보다 소리치는 거짓에,
더 깊이 귀 기울인다.
그것이 때로는
아주 당연한 진실이 아주 당연하게,
거짓에게 지고 마는 이유이다.

​- 김은주「1cm」


글에 무게가 있다면

'글의 길이' 대해  고민이다. 아니, 솔직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히, 인터넷 시대가 되어 블로그, 온라인, SNS, 그리고 브런치. 늘 '길이'의 고민을 달고 살고 있다.

라떼적 이야기하자면, 손으로 리포트를 적어 내던 시기에 대학을 입학하고, 복학하니 '컴퓨터 출'이라는 무시 무시한 '기계의 역습' 느낀  세대다. 정말 힘들었다. 가난한 고학생에게 PC 구입할 여유는 찾을  없고, 학교 컴퓨터실과 과방, 도서관의 공용 PC 찾아 유목민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디지털 노매드의 원조랄까...

손글씨 때에도, 컴퓨터 제출(온라인 아니고, 출력) 때에도 달라지지 않은 기준은 '양量'이었다. 리포트 10매 '이상', 원고지 20매'이상'처럼, 글의 양ㆍ길이가 1차 관문이 되었다. 한 때 모 교양과목은 리포트를 선풍기에 날려 제일 가까이에 떨어진 '무게'있는 리포트 순으로 학점을 준다는 소문이 있어, 무거운 종이와 시진 인화 후 첨부라는 꼼수도 유행이 되었다. 농반 진반으로 그때부터 '글의 무게'를 느끼지 않았나 싶다.

인터넷이 일상이 되고 펜보다 키보드를 먼저 찾게 되고, 손가락 중지의 굳은살과 휘어버린 마디가 말랑해지다 보니, 어느새 글들이 작은 화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노트북, 랩탑 모니터에서 스마트폰의  팩터까지  바닥에 표시되는 글의 길이는 점점 짧아지게 되었다. 신문도 그에 맞추어 기사는 짧아지고, 블로그에서 비평다운 비평은 없고 온통 '리뷰'만 가득한 '가벼운 글'의 시대가 되었다. 그러던 중 나름 동조가 되고 응원이 되는 칼럼이 눈에 띄었다.


https://v.daum.net/v/20220210030107171


[역사와 현실]
소풍 김밥과 사실, 그 너머 진실

과거는 늘 ‘찢어진 책’과 같다.
그렇기에 사실을 모으고 또 모으며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아무리 정보를 모아도 불완전하다. 이 불완전함에서 우리는 ‘다 알 수 없음’에 대한 겸허함을 배운다.
이것이 결론을 짓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를 신중하게 한다.

-칼럼 본문 중-

'진실'  당시의 당사자가 아닌 이상 바로 인지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실'을 파악하고 검증하면서, 그 검토된 사실들을 토대로 진실의 모습을 유추할 뿐이다. 그래서 '사실'의 전달이란 참 중요한 것 같다. 그런데, 이 사실이라는 것 자체가 '간단치'는 않아 보인다. 6하 원칙만 추려도 핸드폰 한 바닥은 되고도 남을 때가 있으니까. 진실은 이런저런 사실들 너머에 있기 마련이다. 절대로 진실은 사실의 총합이 아니다.

특히, 글은 '어조' '어투' 감지되지 않아 전언자의 뉘앙스도 캐치하기 어렵다. 물론 글을 엄청나게 잘 쓰는 사람들이야 짧고도 굵게 의미 전달을 해 주기도 하지만, 평범한 범인들에게는 참 어렵다. 사실이 진실에 근접할수록 설명과 묘사는 더 구체적이고 풍성해지는 경향도 있으니까.

나의 글이 길다는 핑계가 요란했다. 그런데, 인위적으로 글의 길이를 줄일 생각은 없다. 퇴고의 과정에서 '덜어 내는 것'의 기준은 우선 '중복'이고, 그다음은 억지 주장의 '중언', 그다음이 다소 변죽이 될 '부차 정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다만, 쉽게 읽힐 문장이 되도록 연마의 과제는 멀어 보인다. 여전히 숙제다.

글의 무게는  글의 진심의 무게가 아닐까 맘대로 정의해 본다. 길이와 문체, 주제와 상관없이 말랑해도 무거운 진실이 되는 글이 참 부럽다(첨부 칼럼 같은). 그런 듬성듬성 편하지만, 뻔뻔하게 긴 글을 자신 있게 써 내리고 싶다. TMI, too much information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enough information to reach truth가 필요한 시대 일지도 모르니까.

IT업계의 금과옥조 "less is more"라는 말을 잘못 받아들여, '덜어 내기'에 집착하다가 진실로 가는 경로를 이탈할 따가 있다. 요즘 '기사'들이 그런 경향이 있는 듯하다. 경로이탈로 '기레기', '가짜 뉴스'라는 지적은 어쩌면 진심의 변질보다, 이런 형식의 오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방에 들어가신 아버지"가 갑자기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셨다"가 되면 그로테스크한 왜곡이 되니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아직도 TIME, Fortune 같은 미국 잡지를 보면 작은 글씨로만 빼곡히 적어 내는 것을 보았다. 자존심이자 진실에 대한 추구노력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는 방으로 모시기로

팔불출 이야기이지만, 내 글의 첫 독자는 내 자신 이외에 아내다. 늘 먼저 읽어달라 부탁을 한다. 그리고, 좋은 접근이다, 주장이 너무 강하다, 오탈자가 많다, 어렵다, 하지만 잘 썼다고 즉평을 준다. 다만, 좋아요는 나중에 누른다. 다른 사람들의 공감이 우선되어야 제 글이 의미가 있다고 말이다. 이처럼, 50이 넘어서도 늘 배움이 있는 일상에 감사하는 요즘이다. 글쓰기는 늘 굉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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