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대기 중입니다
턱밑에 눌러두었던 말을 토하듯이 꺼내버린 그날은 1월 말이었다. 구정연휴가 끝나던 날. 가족들과 둘러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연휴 내내 속이 달달달 떨렸다. 어떻게 말할까, 지금이 순간인가, 아니 지금인가? 내일 아침인가? 내내 고민하다가.
"나 지금 남자친구랑 결혼하고 싶어"
나와 동생은 부모님 앞에 이 말을 꺼내는 순간을 두고 이렇게 불렀다.
'드랍 더 밤'
그러니까 나는 방금 폭탄에 불을 붙인 것이었다.
엄마아빠의 표정은 내가 가장 머릿속에 그려본 시나리오 그대로였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 살벌한 표정.
수 백번을 이 상황을 상상하고 이미지화했다. 어떻게 남자친구에 대해 이야기할지, 내가 어떤 판단을 했는지, 우리가 함께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설득하고자 잠을 못 이루고 고민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렇게 말하자. 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을 꺼내는 순간 나는 불같이 화가 난 엄마 앞의 초등학생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목소리가 떨리고 심장이 제멋대로 뛰었다. 차분히 생각했던 말들을 꺼내보자 했지만 머릿속이 하얘졌다. 눈물부터 났다. 뭐, 애초에 청자들은 내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다.
엄마는 이미 1년 전부터 내가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할 때마다 엄마는 듣기 싫다는 태도였다. 말이라도 꺼내야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텐데. 관심 없으니 입도 뻥끗하지 말라는 그 몸짓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죄인가? 나와 일상의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니 나는 점점 집에 가서도 말이 없어졌다. 그 사람을 뺀 다른 일상이야기는 더 이상 나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서운함이 커졌고, 답답함과 스트레스가 늘어갔다.
그러다 내 속에서도 결국 터져 나온 말이었다. 나이도 들만큼 들었고,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해져서, 가장 두려워하던 순간을 직면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굳어진 날.
드라마 속에서 들어본 대사들이 부모님 입에서 쏟아졌다. 아니, 아주 평범한 결혼 반대의 이유들이 쏟아졌다. 인서울 아닌 지방대 출신이라서 싫고, 나보다 더 많이 벌지 못해서 싫고, 특정 지역 출신이라 싫고, 모아둔 돈이 별로 없어서 싫고, 월세 50짜리 집에 살아서 싫단다. 나보다 더 잘난 사람이 아니라서 싫단다. 다르게 말하면 스카이는 나와야 하고, 나보다 더 많이 벌어야 하고, 특정 지역 출신이 아니어야 하고, 모아둔 돈이 많거나 집에 돈이 많아야 하고, 부모님이 지원해 주는 집에 살거나 자가가 있어야 하나보다.
그러나 결국 사람은 끼리끼리다. 내가 평범한 만큼 그도 평범하다. 비슷한 월급을 받고 같은 업계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회사원이다. 어린 시절 넉넉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그 어떤 집보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사랑과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사람이다. 자라온 배경이 어떻건 지금의 사회경제적인 상황은 나와 비슷하다. 동갑이라 사회생활 시작이 나보다 늦었고, 지방에서 일을 시작해 서울로 올라오느라 나보다 모은 돈이 적더라도 씀씀이가 큰 사람도 아니다. 지금의 우리 능력 가지고 미래를 함께 계획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했다. 나에게 그것이면 충분했다. 어딜 가든 이렇게까지 닥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사람, 실행력과 재치가 넘치는 사람, 나와 잘 맞는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라면 나는 오랜 시간 서로에게 의지하며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호르몬의 화학작용이 끝나 사랑의 설렘이 사라져도 오랜 시간 인생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짝꿍을 찾는 것이 나의 배우자를 만나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이 너 때문에 불행해졌다."
내가 터트린 폭탄 때문에 엄마는 불행하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화가 났다. 엄마는 엄마아빠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해야 하는 것 아니냐 했다. 나는 미안하지는 않았다. 미안하지 않은 것에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고성이 오가는 통화가 이어졌다. 나를 남자친구가 뜯어말렸다. 부모님 입장에선 얼마나 딸이 아깝겠냐며. 당연히 더 좋은 미래를 기대하지 않겠냐며. 맞는 말이었다. 어느 정도는 이해했지만 납득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결혼하기 위해 대학에 간 건 아니잖아. 스스로 결정하고 살아나갈 능력을 위한 거지, 결혼하려고 대학 나온 거 아니야."
라고 출신 대학 왈가왈부하는 부모님께 말했다.
나는 내 결정을 번복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모적인 대립이 지속됐다. 감정만 상해 가는 시간이었다.
나의 이유와 계획으로 설득하기보다 공격에 방어만 하기 급급했다. 울지 말자, 화내지 말자 했지만 마음이 다치는 데 감정을 다스릴 방법이 없었다. 언젠간 이런 순간을 위해 대화법 관련 책들을 읽었던 기억이 났지만 나는 말려들기만 할 뿐이었다. 소모전을 끝내기 위해서는 내가 더 명확해져야 했다. 독립을 해야 했다.
부모님에게 드랍 더 밤 한 이후 6개월이 지났다. 다음 글에서 이야기를 더 풀어나가겠지만 지금도 오케이 사인은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다음 달 함께 살 집에 들어간다. 지금 우리는 어떤 상태일까. 생각해 보니 가벼운 동거도 아니고 아직 결혼한 부부는 아니고, 결혼 대기 중 상태가 좋겠다. 언제라도 우리는 부부로 전환 가능한 상태이다.